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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Jun 08. 2018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사회 리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아직 끝나지 않았나?

·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로 관람했습니다.

· 본문에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눈 앞에서 고무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순간의 긴장감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찰싹하고 고무줄이 얼굴을 때렸을 때의 따끔한 충격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봤다면 그 순간을 즐겁게 받아들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의 따끔함이 얼마만큼의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냐와는 별개로, 언제 날아들지 모를 고무줄의 탄성은 그걸 받아들여야 할 이에게 아슬아슬한 긴장을 안기게 마련이다.


각종 해외 영화제와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는 이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자비에 르그랑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고 한다. 신예 감독의 영화 치고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작품답게 전주 국제영화제에서도 전석 매진과 함께 호평을 받았다고 하니, 영화관에 들어서며 큰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총평은 이렇다. 

따끔한 통증이나 자극까지는 못 느꼈으나, 눈 앞에서 팽팽하게 당겨졌다 줄어들었다 하는 고무줄의 위협으로 90여 분 간 긴장을 늦추기 힘든 영화였다.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다분하고,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공포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그런 영화.


페이크 다큐라고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이었던 이 영화의 소재와 연출 기법은 신선하면서도 자극적이지는 않았다. 이혼한 부부와 그들 자녀의 관계와 시선을 통해 우리 주위에 충분히 있을 법한 공포를 다룬 스토리였기 때문이다. 흔히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사용되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라든지 심리전, 혹은 위협적인 BGM 같은 건 이 영화에 필요치 않았다.

 



누가 절박하며, 누가 위선자인지. 흐릿한 뒷모습만큼이나 판사의 판단력은 흐렸다.


시작부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의 영화가 아니었다.

과연 저들은 모국어로서 저 말을 온전히 알아듣는가 싶을 만큼 잔뜩 미끄러지는 프랑스어 발음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그래, 처음부터 대사가 굉장히 많기는 했다. 다짜고짜 작은 가정법원(?) 안에서 판사를 향해 각자의 진실을 알리려는 남녀 주인공이 낯선 배우들이기도 했다.


또각또각, 철컥. 영상과 함께 흘러나온 소리는 지극히 투박하면서도 사실적이었다. 뒤이은 변호사들의 쉴 새 없는 변론으로 처음부터 영화 깊숙이 이끌린 관객으로서 내가 이 영화를 페이크 다큐처럼 느꼈던 건 이처럼 극의 시작부터 펼쳐진 갈등의 상황 때문이었던 것이다.


제가 알 수 있는 건 둘 중의 한 명은 지독한 거짓말쟁이라는 사실뿐이군요


정확한 기억일런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깐깐해 보이는 여자 판사가 양측의 얘기를 듣고 자료를 훑으며 내뱉는 이 한 마디가 인상적이었다. 그렇다. 남녀는 어떤 절충이 필요해 보이는 법적 다툼을 하는 게 아니었다. 둘 중 한 명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 명은 철저하게 거짓을 증언하고 있는, 그런 대립적인 상황의 이혼한 부부의 모습이 바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의 출발이었다.

 


    

자녀들이 전 남편으로부터 느끼는 공포심을 근거로 아빠의 양육권 박탈을 호소하는 여인의 이름은 미리암, 이와 반대로 전 부인이 자신으로부터 아이들을 감추고 도망치려 한다고(이유 없이) 주장하는 남자의 이름은 앙투안이다. 그리고 영화는 금세, 그들의 아들 줄리앙을 등장시키며 그의 불안한 눈빛을 통해 미리암과 앙투안의 관계가 확실히 정상은 아님을 보여준다.

 


줄리앙의 뒷모습은 공식 포스터를 통해 이미 활용된(?) 영화의 긴장 요소였다. 무언가로부터, 혹은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는 듯한 금발 소년의 뒷모습은 확실히 평온해 보이지 않았다.


줄리앙은 자신의 아버지 앙투안을 향해 한 번도 따뜻한 눈빛이나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아이의 시선대로라면 분명히 앙투안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고 여겨야겠지만 관객들은 이를 확신할 수만은 없다. 영화 초반부터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이는 줄리앙의 모습을 통해 상황을 단정하기에는 가지고 있는 정보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아들을 데리러 와 이마에 키스해 주는 아버지. 하지만 줄리앙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거부 반응을 보이며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보일 정도다. 만약에, 만약에 아버지 앙투안이 아닌 보호자인 엄마 미리암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거라면 상황은 좀 복잡해질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다소 불안한 그들의 동행을 지켜보던 나였다.


적당한 의성어가 떠오르지 않는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음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한 번은 줄리앙이, 또 한 번은 앙투안이 급하게 차에 타느라 그 다급한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던 기억이다. 감독은 좁은 차 안에서의 이러한 폐쇄적인 상황을 통해 줄리앙의 불안한 심리를 일찍이 묘사하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심각해진 아이의 민낯

주근깨가 가득한 줄리앙의 얼굴. 내 인식의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꼬마 니콜라'의 니콜라가 얼핏 떠올랐으나, 이는 확실히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연상이었다. 대체 녀석은 왜 저렇게 아버지를 거부하는 것이며, 저런 상황에서도 결국 판결은 아버지에게 유리한 쪽으로 나는 걸 보니 '뭐가 더 있는 건가?' 싶었다. 관객들에게 이런 의구심과 긴장을 안긴 채 영화는 앙투안이 아들 줄리앙을 이용해 전 부인 미리암에게 집착하는 양상으로 흐른다.




앙투안의 시선의 방향이 의미심장하다


그렇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결국 집착과 광기를 다룬 영화였다. 

다만 그 안에 담긴 사연을 진부하게 설명한다거나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굉장한 차별성을 지닌 작품이기에 평단의 호평을 받지 않았나 싶다. 이혼과 양육권 분쟁이 우리보다 흔한 서구권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공감을 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지는 데이트 폭력 사건에 익숙한 우리이기 때문이다. 남녀 간 집착의 계기는 다양하겠지만 그 양상은 하나로 좁혀진다는 점을 이 영화는 잘 보여준다. 집착하는 이의 감정적인 폭주는 그것이 시작됐을 때 이미 통제가 어렵다는 사실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환기해 준다.


폭력성. 그중에서도 남성의 폭력성. 

그것이 sex의 차이에 의한 것이든 gender의 차이에 의한 것이든 남녀 관계에서의 집착과 폭력의 주체는 대개 남자들의 문제인 현실이다. 우리 주위의 데이트 폭력에 관한 소식들만 보더라도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건 관련 통계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되는 인식이자 현상이다. 나는 남성이지만 '여성은 모든 곳이 강남역이다'라는 다소 일방적인 선언 이면에 담긴 약자로서의 여성과 아이의 현실에 대한 경종과 피해 의식을 나름대로 이해하는 편이라 생각한다.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힌 여성을 다룬 영화도 흔치 않은 건 아니다. 너무 오래됐나 싶지만 영화 '미저리'로 대표되는 류의 스릴러들이 줄줄이 떠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더 희소한 여성의 집착을 다룬 영화는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극적인 요소를 지우기가 더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역시 우리 주위에 더 '있을 법한' 사실적인 영화다. 아버지에게만 극도로 불안했던 줄리앙의 심리 상태는 정직하고 당연한 반응일 수밖에 없었다는 인과 관계가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의 후반, 팽팽하던 고무줄은 결국 최대한으로 당겨졌다 놓이며 극적인 긴장감은 최고조에 다다른 후 사그라든다. 그럼에도 암전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지켜보며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나?'를 되뇌며 기다렸음을 고백한다. 극적 소재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이거나, 더 자극적인 스릴러에 익숙했던 탓이거나, 둘 모두일 지도.


그리하여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관객들이 화면을 지켜보는 어떤 '기다림'도 선사했다는 생각이다. 돌아보면 주로 줄리앙의 누나인 조세핀이 등장하는 신들(화장실, 생일 파티 무대)에서 그러했는데, 어린 줄리앙만을 통해서는 전달에 부족함이 있어서인지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의미나 영화적 연출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가만-히 조세핀의 행동과 눈빛을 지켜보는 동안 영화의 전개는 답답하리만치 더디게 느껴졌고 긴장의 해소는 멀어 보였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장면들이야말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관객들에게 고무줄을 당기는 방식이 아니었나 싶기는 하다만.


아무튼 이 영화, 관객을 '좌석에 못 박아버릴' 거라던 포스터의 당찬 선언이 과장만은 아니었음을 93분 동안 느끼고 왔노라고 감상을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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