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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바이, 스텝바이(스텝), 웬디!

무비패스 여덟 번째, 다코타 패닝의 <스탠바이, 웬디>

by 차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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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Sam의 다코타 패닝과, Stand by Wendy의 다컸다 패닝.


명작 <I am Sam> 은 숀 펜의 영화였던 동시에 다코타 패닝의 영화이기도 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버지 샘의 부정(父情)을 탁월하게 연기한 숀 펜에게 많은 찬사가 쏟아졌던 동시에,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그의 딸 루시를 연기한 아역배우 다코타 패닝의 깜찍함이 눈부시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녀가 이번에는 자폐를 지닌 성인 연기를 선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스탠바이, 웬디>는 주목해 볼 영화임에 분명하다. 아이엠샘 이후로 차곡차곡 필모를 쌓아온 그녀이지만, 발달장애를 겪는 20대 초반 여성의 성장통을 연기한 이 영화야말로 그녀 인생의 또 다른 변곡점으로 삼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보기에 앞서 <아이엠샘>의 숀 펜이나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깊이나 연륜의 문제가 아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지닌 증상이 자폐이든 다른 발달 장애이든 휴머니즘과 가족애를 부각시키는 어떤 소재로서의 장애에 주목한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극 중 웬디는 스스로를 심하게 학대한다거나 주변인들과의 소통이 어려울 정도의 자폐를 지니지 않았다. 주위 환경에 남보다 예민하고, 타인의 눈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하며, 간혹 감정 통제에 어려움을 겪는 - 이렇게 써놓고 보니 꼭 자폐를 지니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지닐 수 있을법한 성격의- 스무 살 여성 웬디의 일상은 평범한 삶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아 보일 정도다.


아니, 오히려 웬디의 재능은 특출나다. 흔히 자폐증세의 반대급부로 발휘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천재성으로, 그녀는 SF시리즈 <스타트렉>의 방대한 세계를 외우다시피 하며 심지어 새로운 시나리오 몇백 페이지를 글로 써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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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웬디의 재능만을 보여주는데 그쳤다면 영화는 관객에게 소구할 스토리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주인공 웬디는 사랑하는 언니 오드리와 함께 지내지 못하는 생활의 제약을 타개하기 위해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에 도전하는 의지의 여성이다. 비록 사회성이 다소 부족하고 새로운 버스를 타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 그녀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더욱 그녀의 용기에 응원과 격려를 보낼 수밖에 없다.


요일마다 색깔별로 스웨터를 바꿔 입고, 정해진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글도 쓰는 웬디의 일상은 얼핏 웬만한 정상인(?)의 삶보다 나아 보인다. 여러 가지 것들에 쫓기고 치이느라 이른바 '루틴한' 일상이 성실함의 표본이자 모범적인 삶의 패턴으로 여겨지는 현대 사회이기에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불규칙과 불확실성의 삶을 살아가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현실에서, 평범한 일상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성취로 인식될 지경인 것이다


"글을 더 쓰고 싶어요"


그러나 이 영화는 웬디의 입을 통해 말해준다. 타인이나 사회로부터의 제약은 아무리 그것이 질서를 위한 것이라 한들 너무나 쉽게 개개인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의지를 억압할 수 있단 사실을.


타인의 심신에 위협을 줄 정도의 장애라면 얘기가 또 다르겠지만, 적어도 영화 속의 '나아지고 있는' 웬디는 보호자의 지시에 잘 따르며 자신이 외우는 규칙을 준수하는 그런 사람이다. 아늑한 주택형 시설에서 보살핌을 받는 그녀의 생활을 격리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가족들과 함께 살지 못하는 생활을 그녀가 점차 견디기 힘들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는 일도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만 해야 하는 타임테이블까지 얹어져 있다 보니 웬디는 '안주'가 아닌 '도전'을 결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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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여 웬디의 머릿속에 가득한 공상 세계를 나타내는 <스타트렉> 이야기는 그래서 단순한 매개체가 아니다.


흔히 '덕후'라고 일컬어지는 열혈 마니아로서 웬디가 스타트렉에 몰두하는 이유는 그 세계관 속의 반인반외계인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고뇌, 새로운 문화를 일구는 개척 정신에 자신의 감정을 깊숙이 대입할 수 있는 덕분인 것이다.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한 계기인 시나리오 응모를 통해 웬디가 일상에서 탈출하는 과정은 그래서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스탠바이, 웬디>에서는 자필 시나리오 제출을 목적으로 하는 웬디의 여정 자체가 중요할 뿐이지 그녀의 작품이 다른 사람들과 견주어 어느 정도인지, 결과물이 어떠한지는 평가하지 않는다. 스타트렉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웬디이기에 그녀가 이따금 내뱉는 문장들은 맥락이나 조합에 상관없이 빛나는 의미를 획득한다. 극 중 웬디가 여러 고난을 겪을지라도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이 크게 마음 졸이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에피소드들을 지켜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도전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느냐에 상관없이 웬디는 성장했다. 그동안 한 번도 벗어나지 않은 세상으로 홀로 나아갔으며,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행위(스타트렉 시나리오 집필)에 충실했기에 이미 그 전까지와는 다른 삶을 개척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녀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조력자들의 숨은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웬디는 충분한 사회성마저 확보했으며, 영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도 마침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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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원제는 'Please stand by'이다.


앞에 경어를 붙이든, 뒤에 이름을 붙이든 제목의 핵심은 'Stand by'임에 분명하다. 영화를 보면 왜 이 단어가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결국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Stand by는 바로 웬디의 Step by step을 위한 인내의 언어였던 셈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한다는 것. 좋아하는 무언가를 위해 그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는 것. 이 두 가지야말로 영화 <스탠바이, 웬디>가 웬디의 장애에 천착하지 않고 관객 모두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누구나 저마다의 '스타트렉'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있을 테니까. 평범하게 길들여지는 사람만을 원하던 획일적인 시대를 지나 저마다의 개성을 존중하고 장려하는 사회로 바뀌어 왔으니까. <스탠바이, 웬디>는 다른 수많은 영화들에 비한다면 극적인 스토리는 아니지만 주인공 웬디의 극적인 한 걸음을 통해 많은 이들을 격려하고 응원한 그런 소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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