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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Jul 09. 2018

누구나 스타는 아니지만 모두는 마음에 소용돌이가 있다.

<잉글랜드 이즈 마인> 시사회 리뷰


· 무비패스 시사회로 감상했습니다.

· 스포 같은 건 없으나, 대략의 내용은 담았습니다.


영화의 장면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 영화, 화면 가득 소용돌이치는 물결로 시작하여 그와 비슷한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잉글랜드 이즈 마인>은 '브릿팝의 셰익스피어'로 불릴 정도로 문학적인 가사를 직접 쓰고 노래한 스티븐 패트릭 모리세이의 청년 시절 방황기를 다룬 영화다. 영국의 유명 락밴드 '더스미스'에서 보컬과 작사를 맡았던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영화관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어김없이 기대할 법한 성공 스토리 같은 건 그러나 없었다. 스타가 되기 전 자신의 재능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현실의 벽 앞에 번번이 좌절했던 한 청년의 고뇌와 방황이 우울할 정도로 가득했을 뿐. 


하지만 영화 속 모리세이의 미래는 스크린 밖 현실에선 이미 지난 과거다. 게다가 아직 살아있음에도 거의 '전설적인' 인물의 반열에 오른 그의 삶이기에, 관객들은 적이 안심하며 청년 모리세이의 방황을 지켜볼 수 있다. 물론 그의 불안정한 정서와 말 많고 탈 많은 인생사 전반을 놓고 봤을 때 단지 스타라는 이유로 삶을 성공이라 일컫는 건 굉장히 단순한 평가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생이란, 흔히 일컫는 우리들의 현실이란 때로는 단순한 분류만으로도 쉽게 타이틀을 획득하는 법이니, 모리세이 본인으로서도 굳이 꼽으라면 데뷔 이전의 방황 보다야 이후의 치열한 밴드 생활을 성공으로 분류하지 않겠는가. 


물보라처럼 온통 부딪혀서 흩어졌다가도 어느샌가 거대한 조류의 흐름에 섞여 흘러가는 혼돈의 청춘기. 예민하고 소심한 청년 모리세이의 과거를 일종의 소용돌이라고 본다면, 성공적인 밴드 생활로 우뚝 선 락밴드 더스미스의 보컬 모리세이의 삶 또한 어떤 면에서는 또 다른 소용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느 쪽이 더 낫냐고 묻는다면 단정하기 힘들겠지만 어느 쪽에 더 공감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를 택할 듯하다. 청춘이 누구나 저마다의 방황과 고뇌에 휩싸이는 시기인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이후의 삶을 대스타로 꽃 피우는 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스타가 되기 이전 음악과 문학에 심취한 청년이었던 모리세이의 소용돌이를 들여다본 나는 일종의 위안마저 얻었다. 비록 첫 소용돌이 이후에 펼쳐진 내용의 전개가 기대했던 방향과는 달랐을지라도 영화의 마지막 소용돌이를 보며 여운을 음미할 수 있던 건 아무래도 내 마음의 소용돌이가 여전한 걸 확인해서가 아니었을까.




#1. 문학과 음악과 삶



작은 방 안 가득한 음반과 서적, 책상 위에 놓여있는 타자기.

80년대 맨체스터라는 시대적 배경이 아니더라도 레트로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더욱이 방의 주인은 비틀즈의 멤버들을 연상시키는 곱슬 장발 머리를 하고 열정적으로 글을 쓰며 노래하는 청년이다. 그(배우)의 외모가 뛰어나다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매우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시인 혹은 음악가의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단 하나 그다지 멋지다고는 할 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그가 현실을 마주하는 '태도'다. 사람들과 쉽게 관계를 맺지 못하는 소심함, 곧잘 냉소와 비관에 휩싸이는 우울함 쯤이야 성격의 일면으로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치더라도 그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결코 누군가가 동경할 만한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예술과 현실은 갈린다. 

흔히 위대한 업적을 남긴 예술가의 덕목(?)으로 여겨지곤 하는 내성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은 예술성을 부각시키고, 밥벌이를 위해 억지로 세무서 직원으로 일하며 보이는 엉망인 근태로 상사와 동료들에게 괄시받는 모습은 현실성을 일깨운다.


더스미스의 모리세이를 아는 관객들은 당연히 현실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존중할 수 있지만, 영화 속에서 정작 본인은 그럴 수 없다. 보장되지 않은 길, 남들과는 다른 감수성. 예술의 가장 대표적인 장르인 문학과 음악을 모두 추구하는 모리세이의 삶은 그래서 괴롭기만 하다.




#2. 그럼에도 그들이 있기에



사람들은 누구나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성적인 성격의 모리세이도 마찬가지인데, 적어도 영화에서 그는 우정이나 사랑을 갈구하느라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는다. 타자기 소리가 시끄럽다는 누나의 구박에도 오히려 음악을 더 크게 틀고, 밴드를 모집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는 못할지언정 그걸 두고 자신의 성격을 탓하며 괴로워하지는 않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일들에 대한 주인공의 내적 갈등에 영화의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게 하나 있다고 나는 느꼈다. 마음을 다해 무엇을 바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삶의 만족도의 차이가 바로 그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모리세이는 음악과 문학에 심취하느라 세상의 벽을 느낀 것이지,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이 나아지길 희망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애쓰다가 좌절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런 면에서 그는 세상 앞에 당당하다. 자신을 진정 이해해 주는 린더 외에 다른 친구나 여자에게서 어떤 만족을 찾으려 들지도 않고, 그 자신이 현실과 최소한의 타협점으로 택한 사무직 업무에 미련이 없기에 뻔뻔할 정도로 나태한 데다가 심지어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까지 한다.


중요한 건 이 모두가 결국에는 진정으로 그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는 엄마의 존재다. 폐인이 되다시피 바깥세상과 담을 쌓은 모리세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일 때조차 그에게 용기를 주고 따스하게 다독여 주는 엄마의 존재는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이라든지 타인과의 비교로 다 큰 청년의 무능을 질책하는 게 쉬워보이는 상황에서 그녀가 아들에게 보이는 태도야말로 헌신적인 믿음의 표본이라 할 만한 것이다.


두 번째는 린더의 존재다. 분야는 다르지만 어쨌든 같은 예술을 추구하는 그녀가 보기에 모리세이의 잠재력은 충분했고, 이를 통해 둘은 마음으로 소통한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로 둘이 나란히 성공을 향해 경주하지는 못했으나, 그것이 진짜 현실이든 영화 속 현실이든 오히려 그 정도의 우정으로만 그려졌기에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어쨌거나 모리세이의 글을, 음악적 취향을 존중해 주며 본인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예술의 추구를 독려하는 그녀의 등장이야말로 다른 친구 한 트럭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운으로 보였다.

    



#3. 영화 밖에 남겨진 우리


누구나, 거의 누구나가 이런 허세 사진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앞선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일반적인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며 모리세이 위주로 생각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세무서 직원의 입장에서는 타인의 태만이 곧 자신의 업무 부담이 되니 싫을 테고, 마트 근무에서 돌아와 휴식을 취하려던 누나의 입장에서는 동생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괴로울 게 뻔할 테니 말이다. 사회생활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여기서 주인공의 입장만이 아닌 정황 전체의 객관성을 한 번쯤 떠올려 보게 될 거라 생각한다.


세상의 때라면 때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게 세상의 이치라면 또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의 예술을 추구할 수 있을 만큼 녹록한 세상이 아니기에, 아무리 영화라 한들 어느 일방의 시각으로 모든 걸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관객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저마다의 결론을 얻을 테고 말이다.


그런데 개개인이 추구하는 바가 예술이든 아니든, 현실을 헤쳐나가는 태도가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지 간에 관객들은 <잉글랜드 이즈 마인>을 통해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히 볼 수 있다.

그건 바로 자신 안에 소용돌이치는 무언가에 몰두했을 때 얻어지는 마음의 평온함이다. 영화가 결국 모리세이의 데뷔 이전에서 멈추었음에도 그의 얼굴과 태도에는 결국 확신과 자신이 묻어났다고 나는 느꼈기에 그렇게 생각한다.


고로, 청년 모리세이의 방황은 곧 나의 방황이기도 했다. 우리는 누구나 락 밴드의 스타가 될 수는 없지만, 모두가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무언가를 위해 고군분투할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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