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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Jun 28. 2018

노을과 시와 랩을 담은 영화,<변산>

렛츠기릿



· 무비패스 시사회로 감상했습니다.

· 영화 공식 홍보 내용 이상의 스토리에 대한 노출은 없습니다.



랩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강렬한 힙합보다는 적당한 멜로디와 후렴구가 있는 이른바 '감성힙합'을 좋아한다. 

'feat.유명보컬' 이런 식의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음악이라야 비로소 랩도 적당히 흥얼거리며 반복해서 듣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정작 곡의 장르는 힙합인데 후렴 부분만 외우고 랩은 기억하지 못해 마치 발라드 곡처럼 여기는 일이 생긴다. 따로 연습이라도 했으면 모를까, 노래방에서 힙합 노래를 틀었는데 막상 랩 부분에서는 벙쪄 있다가 후렴구에 이르러서야 몇 소절이나마 따라 부르는 일이 종종 생기는 이유다.


영화 <변산>을 보고 난 후의 느낌이 딱 그렇다. 빠른 비트의 랩이 쏟아지는 '쇼미더머니'의 무대를 빌려 배우 박정민이 래퍼 심뻑으로 열연했으나 지금 내게 맴도는 건 심뻑의 힙합이 아닌 학수(주인공의 본명)의 감성 뿐이니 말이다. 아픈 과거와 팍팍한 현재의 삶을 극복해 가는 학수의 이야기야말로 영화를 관통하는 감성코드의 변주다. <왕의 남자>로 유명하고 <동주>, <박열>로 친숙한 이준익 감독, 그가 이번에는 청소년들의 대세 코드인 '힙합'을 앞세운 영화를 선보였으나 역시 그 안에서 내가 본 건 멜로디 가득한 드라마의 '감성'이었다.  

 



1. 심뻑 vs 학수



<변산>의 주인공 학수(박정민 역)는 래퍼다. 

홍대의 언더 세계에서는 꽤나 실력을 인정받은 그이지만 정작 '쇼미더머니'에는 6년째 본선에서 고배를 마신, 소위 비주류 인생을 살고 있는 청년이다. 전라북도 부안을 떠나 서울의 망원동 고시원에서 살며 편의점 알바와 발레파킹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에게 있어 고향은 '잊고 싶은 과거'이지 환영받을 안식처가 아니다.


님이 식빵! X도 해준 건 없으면서 발목만 X나 잡네!


어릴 때 자신과 어머니를 버려두고 떠난 아버지를 증오하는 학수. 그런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10년 만에 돌아온 그는 그러나 분노한다. 가뜩이나 억지로 찾은 고향이건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당분간 변산 어귀에서 지내야 할 상황에 처하자 지난 슬픔 모두가 현재의 분노로 치밀어 오른 것이다.



학수와 같은 병실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간호하고 있던 또 다른 주인공 선미(김고은 역)의 역할은 이때부터 빛난다. 학창 시절의 짝사랑이라는 다소 진부한 소재에서나마 영화는 학수의 첫사랑 미경을 연달아 등장시키며 이들의 재회를 코믹한 이야기로 풀어간다. 여기에 학수의 단짝 친구들과 건달 친구 용대, 얍삽한 선배 원준의 등장까지 더해져 변산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진다. 영화의 초반에는 래퍼 심뻑의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보던 관객들이 점차 학수를 둘러싼 삶의 이야기에 느슨하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2. 학수 vs 세상


잘 사는 거, 그게 복수인 것이여


눈을 부릅뜨고 대드는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해하면서도 자기 할 말은 다 하는 학수 아버지의 진심이다. 그는 비록 잘못된 과거를 후회할지언정 어떻게든 현재를 살아내는, 병상에서도 금목걸이는 결코 안 풀지만 병세만큼은 아들에게 절대 알리지 않는 고집 센 옛 건달이다.



니는 정면을 안 봐. 언제까지 피하고만 다닐 것이여


과거의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현재를 직시하지 못하는 학수에게 선미가 작정하고 던지는 팩폭이다. 그녀의 과거는 학수에 비해서 오히려 찌질했으나 현재는 누구보다 신랄하게 학수를 꾸짖을 수 있다. 그에게서 첫사랑을 느꼈고, 그의 작품에서 '노을'이라는 매개적 영감을 얻은 선미는 꾸준히 글을 써서 성공적으로 등단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슬픔과 고통을 랩으로 쏟아내던 학수가 지금껏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바로 그 근원인 고향을 이용하면서도 제대로 마주하지는 않았기 때문임을 선미는 일깨워 준다. 선미야말로 학수의 뮤즈라고 할 만하다.

 



3. 진흙탕 싸움 vs 배우 박정민



건달 아버지를 부정하며 강한 척하다가 결국에는 건달 친구 앞에서 약해지고 만 학수. 

그런 그가 선미의 가르침을 통해 과거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현실을 극복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감독은 어찌 보면 가장 원초적인 방법을 택했다고 보인다. 더는 비틀거나 풀어낼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더 웃기기에도, 더 심각해지기에도 애매한 지점에서 그렇게 학수와 용대의 진흙탕 싸움은 전개된다. 


아쉬웠다면 아쉬웠달까, 대단찮은 리뷰어이지만 나름대로 솔직한 감상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덧붙인다. 잊을만하면 심뻑(학수)의 랩이 흘러나오던 영화 내내 어떻게든 맞아가던 라임이 영화의 후반에 이르러 살짝 그 리듬을 잃고 방황하는 듯 느꼈던 나의 감상을. 물론, 이 또한 감성힙합에 익숙한 나의 취향에 따른 주관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듣기 좋은 운율의 랩과 같은 매끄러운 전개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주연 배우 박정민은 전작인 <그것만이 내 세상>을 통해 팬이 됐고 브런치 작가로서도 활동하는 그의 글을 접하여 친숙한 터였다. 영화 <변산>에 대해 쓴 그의 브런치 글 세 편 중 첫 번째만 보고 나머지 둘은 일부러 보지 않다가 마침내 영화를 본 뒤에 쭈욱 읽었다. 영화배우로서의 입장을 브런치 작가로서 재치 있게 풀어낸 그의 글들 덕분에 영화가 감상 이후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 이유다. 요즘 청년들의 트렌드인 힙합 문화를 통해 영화를 풀어낸 이준익의 시도만큼이나 글로써도 관객들과 소통하려고 한 박정민의 시도가 참신하게 느껴졌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 영화를 관통하는 학수의 시


개인적으로 <변산>은 지금껏 리뷰를 작성한 작품들 중에서도 간단히 말하기 어려운 영화였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본 그대로를 써냈다. 쓸 당시에는 고민스럽고 불완전한 언어일지언정 막상 운율을 맞추고 리듬을 입히면 그럴듯한 랩이 완성되듯, 내 글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멋진 작품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는 극 중 학수에게 정면을 보라는 선미의 일갈이 결코 영화 속 일로만 여겨지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감독이 자신의 의도를 영화로 풀어내고 배우가 자신의 재능을 연기로 쏟아내듯, 우리 모두는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면을 똑바로 마주한 채 마음속 응어리를 해소할 수 있는 존재이지 않겠는가.


고로, 영화답게 <변산>에 대한 평을 리듬있게 읊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Yo, 변산이란 영화 속에 노을이란 영감 있고
노을 속을 들여다 보면 학창 시절 그가 있네
흑역사가 웬말인가 과거는 현재로 바꿀 수 있네
그 시절 시 한 편을 이제는 랩으로 노래하네
렛츠 기릿.


아.. 이런 걸로 마무리한 글을 나중에 보면 이 또한 나의 흑역사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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