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음악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노래들로만 채워진 소중한 기기였다. 요즘같이 휴대장치의 용량이 어마무시한 시절이 아니었다. 신곡을 넣기 위해 오래된 음악이나 잘 듣지 않는 음악은 지워야 했다. CD를 골라 넣어 선곡을 하듯, MP3에 넣을 파일들은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선택하기 마련이었다.
스트리밍의 시대가 도래한 지 오래다. 파일을 저장해 다니지 않고도 실시간 데이터로 고화질 영상을 재생하는 데 무리가 없다. 그보단 용량이 훨씬 적은 음악 수백 곡쯤은 말할 것도 없다. 월정액 요금제가 대중화된 음원 시장에서 사람들은 휴대폰 요금이나 카드값을 지불하듯 자연스레 사용료를 내고 음악을 듣는다.
무슨 음악 좋아하세요?
이것저것 좋아해서 가리지 않고 들어요~
간혹 듣는 질문에 언젠가부터 두루뭉술한 대답을 한다. 특정 취향을 내세우는 것보단 만나는 사람과 상황에 맞는 대답과 역질문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게 편해서다. 발라드곡을 말하면 너무 말랑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댄스나 아이돌 노래를 말하면 덜 진중해 보일까 봐 괜히 주저한다. 최신 유행곡을 말하면 그저 그런 사람처럼 비칠까 봐, 오래된 곡을 말하면 자칫 고루한 사람으로 비칠까 봐 주저하기도 한다.
남을 너무 의식하나 싶어 실제로 요새 뭘 즐겨 듣는지를 자문해 봐도 어쩐지 뾰족한 대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엔 스스로 DJ가 되어 음악을 고른 일이 드물어 기억에 남는 가수나 곡목이 예전 같지 않아서다. 최신 유행곡이 듣고 싶으면 TOP100 실시간 차트를, 특정 장르나 상황에 맞는 노래가 당기면 누군가 올려놓은 플레이리스트를 골라 들은 지 오래다. 원래 주체적으로 고르고 선택한 것들은 기억에 잘 남고, 남을 따르거나 흘려들은 것들은 쉽게 잊기 마련이다.
이 노래 혹시 제목 알아?
아, 나도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 제목은 모르겠네~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쉽게 듣고 쉽게 소비하는 스트리밍의 시대, 고르기 편한만큼 잊기도 편한 세상에서 취향을 지켜가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다양한 음악을 언제나 들을 수 있지만 정작 사람들의 선택은 특정 차트와 리스트에 쏠리는 현상. 이는 비단 음악의 영역에 한정된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편한 게 편한 거라 오늘 아침 버스에서도 난 '기분 전환에 좋은 상쾌한 POP' 리스트를 선택했다. 좋다고 하트를 눌러놓은 사람의 수가 1천 명에 다다르는 인기 리스트였다. 어떤 DJ인지 골라놓은 노래마다 과연 신나고 경쾌하여 찌뿌둥한 기분을 상쾌하게 전환할 수 있었다. 폰으로 노래를 골라가며 듣지 않았기에 양손 편히 창 밖을 구경하며 이런저런 생각에도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