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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도 방충망 하나 달았으면

벌레 들어오는 거 싫으니까

by 차돌


아침이면 이사 온 집의 창문을 열어 둔다.

전에 살던 이의 흔적은 하루빨리 내보내고 새 햇살과 바람만 들이려고 되도록 자주 그런다. 구석구석 환기를 시키기 위해 집 안 모든 창들을 살핀다. 이때 주의할 사항이 하나 있다. 방충망이 있는 방의 창문은 활짝 열되, 그렇지 않은 주방과 화장실의 창들은 살짝만 열어 두는 것이다. 낮에 숨어든 벌레들은 창이 닫힌 저녁이면 집 안에서 활개를 치게 마련이다. 덕분에 방충망 없는 창까지 크게 열어 두었던 이사 첫날엔 설렘 대신 모기와의 사투로 새벽을 보내야 했다. 그 이후로 방충망이 없는 창들은 마음껏 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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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방충망의 유용함을 떠올린다.

안과 밖을 마음껏 통하게 하면서도, 해충만큼은 크든 작든 차단해 주는 촘촘한 그물. 그 역할은 무더운 여름에 빛을 발하지만 어쩌면 요즘 같은 가을날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에어컨을 켤 날씨는 아니라 창을 열긴 해야겠는데, 만약 방충망이 없다면 모기에게 물릴 짜증스러운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근래 들어 유독 늦모기들이 극성이다) 집에서든 카페에서든 신선한 바깥 공기를 들이켜지 않고 머무는 데는 한계가 있기에, 실내 공간에는 이처럼 방충망이 필수다.


그런데 방충망(防蟲網)이라는 단어에서는 벌레를 막는 본디 효과의 '차단'적 느낌보다는, 그 결과로 가능케 되는 안팎 공기의 '통과'적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이는 그물망, 방충제 등의 단어들을 떠올렸을 때의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방충망의 성질은 망(網)보다는 창(窓)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방충망이 달린 창을 더러 '방충창'으로 부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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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의 창을 열고 환기를 하듯, 마음의 창도 활짝 열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러나 아무래도 쉽지는 않을 듯하다. 방충망이 없는 창문을 마음껏 열어둘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음에도 바람과 햇살만 들면 좋겠는데, 창을 열면 열수록 온갖 벌레들이 들어올까 두려운 것이다.


나이를 먹으며 마음의 창을 닫아 온 것 같다. 얼마간 한껏 열어놓고 이 사람 저 사람, 이런 일 저런 일 드나들게도 해 봤는데, 그때마다 불쑥 날아든 벌레 때문에 화들짝 놀라곤 했다. 뒤늦게 창을 닫아봐야 이미 들어온 벌레들은 또 마음을 어찌나 헤집던지. 그리하여 나는 언제부터인가 마음의 창들을 하나둘 닫고, 그도 모자라 창을 아예 없애기도 했다. 그저 혼자 편한 좁은 문만을 찾아 드나들다 보니 환기가 제 때 이뤄졌을 리 없다. 마음 어딘가에서 코코한 냄새가 날 때면 방향제 같은 걸 뿌리긴 했다. 헌데 그러다 보면 이런저런 잡다한 냄새가 뒤엉켜 머리가 다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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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도 커다란 방충망 하나를 달고 싶다.

우선 마음의 창 가장 중요한 곳에 달아놓을 방충만 하나만이라도. 다행히 창은 아직 남아 있으니, 그걸 다시 열어 환기를 시키기 전에는 반드시 방충망을 달고 한껏 열면 좋겠다. 방치됐던 마음 곳곳에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닿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스몄던 쉰내나 잡내 같은 게 차차 사라지겠지. 벌레들과 다투느라 새벽에 사투를 벌일 일도 없을 테고 말이다.


어제는 마침내 생활용품점에 들러 방충망 테이프를 하나 사 왔다. 간단히 뜯어 붙일 수 있는 형태라 자취방 작은 창문에 부담 없이 달아봄직하다. 일단 이렇게라도 해서 앞으로는 집 안의 모든 창을 마음껏 여닫을 생각이다. 이왕 더 미루지 말고 마음의 창에도 작은 방충망부터 하나 달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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