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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혐의 시대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는 결국 읽다가 말았습니다만.

by 차돌


여기저기에서 충, 아니면 혐으로 끝나는 단어들을 쏟아내며 분노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현상 자체로도 문제인 데다 이런 풍토를 분석하고 조명해야 할 언론들 중 일부가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는 프레임을 양산하며 사회적인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 갈등의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이렇게 조장된 여론에 발끈해 더욱 분열하고 반목하는 악순환으로 사회 전체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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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혐'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지인들이 떠오른다.

대부분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잘 사는 이들이다.(그냥 일반적으로 보기엔 그렇단 말이다) 그래서 한 발짝 더 멀찌감치 떨어져서 결핍투성이의 사람들이 쏟아내는 한탄과 자조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둘러싼 평온하고 안정적인 세상을 위협하는 외부의 위험 요소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불안감, 개인의 좌절과 실패를 온통 사회 탓으로 돌리는 이들에 대한 한탄과 냉소. 오래 알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짙게 보이는 보수적 성향을 곁에서 바라보건대, 이는 오히려 '잘 살고 있다'는 방증에 다름없어 보이는 게 불가피한 현실이라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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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보수성을 논하며 섣불리 정치색이라든지 좌우 논리를 들이댈 생각은 결코 없다.

개인 에세이에서나마 '보수'란 단어를 사용하며 이런 말을 굳이 덧붙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굴곡진 한국 사회의 정치 지형에서 21세기에도 여전히 좌파와 빨갱이 운운하며 자칭 '보수'를 칭하는 세력들 때문에 '보수적'이라는 말에서 많은 이들이 어떤 '올드한 정치색'을 떠올릴 수밖에 없음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치적 의미에서의 보수가 지닌 부정성을 소거했을 때 내가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보수란 '안정 추구의 성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지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지기에 이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안정을 위협하는 것들은 멀리하려는 평화주의적인 성향. 그게 바로 보수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리하여 보수적인 것에 좋고 나쁘고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의 안정성만을 위해 구성원 모두가 보수적이 되기에는 세상의 자원이 유한하다는 것 또한 중요한 사실이라고 본다. 이에 권력을 위임받은 공동체(보통은 '국가'로 통칭되는)가 사람들의 보수화, 기득권의 카르텔을 행여 방치한다면 계급의 분열은 더욱 공고해지고 사회 구조의 유연성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약자와 소수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진보의 가치는 일상의 영역에서부터 정치(혹은 통치)에 이르기까지 보수의 안정성 못지않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기 자신도 약자이면서 같은 처지의 약자들과 연대하는 용기와, 자신은 비록 사회가 규정한 약자에 속하지는 않을지언정 (사회적인) 소외된 이들을 위해 자기 것마저 기꺼이 나누는 배려. 이야말로 생태계 다른 모든 생물들을 뛰어넘어 공동체를 구성하는 인간으로서 추구할 수 있는 사회화 행위의 가장 적극적인 발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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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얘기를 꺼내면서부터 거창해졌나 보다. 원래 하려던 '극혐'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자. 극렬한 보수는 흔히 '수구'로 표현되며, 이는 부정적인 의미('꼰대' 문화가 쉽게 떠오르는)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뒤에 반드시 '꼴통'이란 단어까지 붙이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수구라는 표현에서 긍정성을 찾아보기는 힘든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극혐'도 이와 비슷하다. 좋아하는 게 많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싫어할 권리 또한 지니고 있지만, 이것이 어떤 특정 대상을 '혐오'하는 수준으로까지 과격해지며 돌연변이처럼 생겨난 표현이 바로 '극혐'인 것이다.


보수가 평온한 상태를 위협하는 것들을 불안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보는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기는커녕 위협하는 '혐오'의 프레임과 세력들에게서 불안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어머님들을 욕보이는 '맘충'이라는 표현도, 수많은 한국 남성들을 깎아내리는 '한남충'이라는 표현도 그래서 나는 되도록 쓰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자신과 반대의 성별을 지닌 모두를 일반화하여 적대시하는 '남혐'과 '여혐'이라는 말은 얼마나 편협하기 짝이 없는 인식의 표출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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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극혐의 시대라 일컬어질 만한 오늘날,

세상에는 좋은 것들 못지않게 싫은 것들도 참 많은 게 사실이지만 난 아무래도 '극혐'이라는 말만큼은 입에 담고 싶지가 않다. 극혐을 극혐 한다고 하면 그건 또 다른 극혐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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