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털어놓는 건 가난해지는 일일까.

그런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

by 차돌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

-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中


인상 깊었던 책의 글귀들을 끄적여 놓은 노트를 펴 보았다.

책의 내용은 희한할 정도로 생각나지 않는데 그 문장의 울림만은 여전한 메모 하나가 눈에 띄었다. 신경숙의 소설에 나온 한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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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탁 치며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던 공감의 순간이 얼핏 생각났다. 그리고 이내 그때 떠올렸던 과거의 과거가 꼬리를 물고 뒤이었다. 신경숙 선생의 말마따나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이 나를 가난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돌아봤던 결정적인 기억이다.




대학 졸업 후 얼마 간의 공백기 무렵이었다.

진로 변경으로 한창 고민이 많았다. 취업에 대한 막연함 못지않게 이래저래 안 풀리던 일들로 심신이 상당히 지쳐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연애사마저 복잡하게 꼬여, '뭘 해도 안 풀린다는 게 이런 건가'라고 자조할 정도였다. 당시에 유행하던 표현을 빌리자면 '메롱'인 상태였다고나 할까.


그 와중에도 취업 준비의 팍팍함만으로는 견디기 힘들어 사교적 만남이 주인 스터디에도 참석하기 시작했다. 아는 동생의 소개로 나가기 시작한 모임이었는데, 책을 좋아하는 또래들이 모여 독서 토론도 하고 이따금 술도 한 잔씩 하는 그런 자리라 부담이 없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새로 사귀는 이들에게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쉽게 친해졌다.


70fb832d406ec0c5f300a6bedfad977e_freepik.jpg 출처 : freepik.com


그러던 어느 날의 술자리였다. 2차, 3차로 이어진 호프집에서 오가던 대화에는 흥이나 즐거움은 어느덧 줄어들고 제법 진지한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우리는 각자의 장단점을 돌아가며 한 마디씩 주고받기로 했다. A의 차례가 되면 B, C, D, E가 그의 장단점을 반드식 한 가지씩 말하고 나서 주인공의 차례를 바꾸어 가는, 서로에 대한 일종의 '품평'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 것이다.


내가 평가받는 차례였다. 다른 언급들은 생각나지 않는 반면 한 후배가 얘기한 단점 하나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나 스스로가 그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 깊이 마음을 파고든 지적이었다. 그의 얘기인즉슨 형은 친해진 지 얼마 안 됐는데 사실 처음에 좀 놀랐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개인적인 고민들을 털어놓는 모습이 다소 당황스러웠다는 뭐 그런 말이었다. 말하자면 '훅 들어왔다'고나 할까, 아무튼 주위의 몇몇이 그의 말을 거들며 나의 그런 면은 인간적이기는 하지만 사회생활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막 친해진 사람들에게 '앓는 소리'를 자주 했던 것 같았다. 취업 스터디니 면접이니 하는 모임들에 질려버린 마음을 달랜답시고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 너무 쉽게 마음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자책의 마음이 들었다. 물론 이어진 나에 대한 평가는 솔직함이 큰 매력이라며 제법 훈훈하게 마무리지어졌으나, 당사자인 나로서는 단점에 대한 지적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건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말과 동의어에 다름없다.

좋은 일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타인에게 고백하는 일이야말로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기쁜 소식이나 자랑보다야 고민 같은 걸 털어놓는 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을 믿고 마음을 연다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렇다. 굳이 변명하자면 나는 고민 자체의 해결보다는 이를 털어놓고 경험을 나눌 상대와의 교감을 기대하며 타인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사람들을 새로 사귀며 마음을 털어놓다가 스스로가 가난해진 듯한 느낌을 받은 건. 고민을 '나누었다' 고 생각했는데 '덜어지기'는커녕 '알려지기'만 하여 창피해지는 그런 기분. 그에 더해 나의 마음을 쉽게 드러내는 것이 타인에게는 단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걸 확인했을 때의 부끄러움까지. 고민을 털어놓는 순간 이미 내 마음의 일부는 상대방의 것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 원래의 고민에만 모아져야 했을 관심의 초점은 상대와의 관계로 옮겨졌고, 역시나 내 마음 같지만은 않은 타인의 반응과 그와의 친밀도에 따라 나는 쓸데없는 마음의 헛헛함마저 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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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인용했던 신경숙의 문장을 읽은 건 그로부터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힘든 시기는 극복한 후였으나 과거의 '가난해지는 듯했던' 마음이 생생하게 떠올라 그 문장이 적힌 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렀던 기억이다.


만약 작가가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난해지는 일'이라고 단정했다면 내가 그토록 깊이 공감하지는 못했을 테다. 소설은, 화자는 분명히 '그러할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이면에 자리 잡은 마음의 복잡함 내지는 추측의 심정까지도 잘 드러내었기에 나는 그 문장이 참으로 와 닿았다.


나 역시 소설 속 주인공의 중얼거림과 마찬가지였다. 나의 단점이라든지 마음의 가난함을 인정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저 내 마음이 왜 그러했는지를 가만히 살피며 '그랬던 것 같다'라고 여겼을 뿐이다. 하나의 경향성은 그걸 바라보는 관점이나 상황에 따라 장점도 될 수 있고 단점도 될 수 있다. 요컨대 내가 친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쉽게 털어놓는 성향(?)은 제법 자신감이 충만한 시기에는 '진솔함'이라는 장점으로 부각됐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스스로의 마음을 가난하게 만든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그 시절 유독 마음의 가난함이 느껴졌던 건 결국 타인에게 마음을 쉽게 털어놓는 내 성향의 탓이 아닌, 상황의 영향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아서 가난해졌던 게 아니라, 이미 내 마음이 가난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그러한 기분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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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내 글들 중의 하나인 '결핍이 있는 사람이 더 좋다'(https://brunch.co.kr/@hyuksnote/84)의 내용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해 보고자 한다. 내가 결핍을 드러내는 사람을 좋아하기에 타인 역시 내가 그러할 때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마음을 털어놓은 상대가 내게 응해준다면 그와는 친해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가까워지지 않는, 그런 단순한 관계의 이치를 지금껏 이토록 장황하게 중얼거렸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털어놓고 가난함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마음을 닫아본 경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 정말 가난해지는 일인지는 감히 내가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소설가의 말을 다시 한번 빌리자면,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것.도.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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