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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Apr 16. 2024

나는 타인에게 관대한가

새벽 문자에 문득 든 생각



  

"띠리링~"


  휴대폰 알람 소리에 퍼뜩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십 분 넘게 더 잘 수 있었는데 잠에서 깨 버려 적이 언짢은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 시간이면 쿠팡도 아닐 거고, 스팸이겠지. 7시에 집을 나서려면 그리 여유로운 편이 아니므로 폰은 뒤로 한 채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 반품할 물건 1층 공동현관에 부탁드립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아까 온 문자를 확인해 보니 택배 메시지였다. 오잉, 반품 물건을 문 앞이 아닌 공동현관에? 전날 반품 신청해 놓고 현관문 앞에 두고 나왔는데, 1층 공동현관에 뒀어야 했나? 이른 새벽에 기사님이 왔다 그냥 간 건가? 문자 메시지 발신처를 보니 휴대폰 번호였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새벽에 온 문자 이제 확인해서 연락드렸는데요. 반품할 거 공동현관에 없었을 텐데, 돌아가셨나요?"

"아 그건 아니구요... 출근 시간에 문자 보내 놨었어요. 편하실 대로 문 앞에 두시면 이따 가져가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들 나보다 빨리 출근하는 건가? 7시도 충분히 이른 것 같은데... 전화를 받은 아주머니는 기사님일 수도, 접수 담당자일 수도 있어 보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피곤이 잔뜩 묻어 있었다. 보아 하니 반품 신청자를 대상으로 일찌감치 문자를 보낸 모양이었다. 물건을 내놓지 않고 집을 나선 이들이 많으면 수거 못 하고 헛걸음을 할 테니.





'왜 문 앞이 아닌 공동현관에 두라고 하신 거죠?'

'수거 예정 시각이 언제길래 새벽에 연락하셨죠?'


  전화 걸기 전 내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을 고백한다. 일단 나는 택배를 공동현관에서 받거나 내보낸 경험이 없고, 새벽 6시에 안내받은 적도 없기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전화받은 분의 음성을 듣는 순간 그런 말들을 뱉을 순 없었다. 그녀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으리라. 일부러 잠을 깨운 것도 아닌데 내가 따질 일이 아니리라. 피곤하단 이유로, 처음 겪는단 이유로 날카로운 생각을 품고 있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요새 나는 타인에게 관대한가? 원래 관대했던가? 


  출근길 버스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걸로 시시비비를 가리느라 남과 다퉜던 과거가 떠올랐다. 한편으론 제법 의젓하게 타인의 실수나 잘못에 눈감았던 순간도 떠올랐다. 이 모든 기억이 엉켜있는 지금의 난, 자칫 관대하지 못할 뻔했으나 이내 상대방을 이해해 다행인 그저 그런 사람 같았다.


  살다 보면 별 거 아닌 일로 날카로워질 때가 있는가 하면, 꽤나 큰 일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때가 있다. 다양한 사람과 부대끼다 보면 작은 일에 쉽게 흥분하거나 열 내는 사람일수록 다툼이 잦아 각박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거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상식이란 게 법으로 규정된 것만은 아니므로 우리는 그때그때 내 입장과 상대의 입장을 견주어 양보하기도, 양보받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부디 기사님이 일정대로 모든 택배를 무사히 배달하고 수거했길. 참, 이제 자기 전에는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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