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민의 손을 잡기까지, 나는 지독할 정도로 많은 사람을 만났다. 휴대폰 화면 속 낯선 이름만 해도 일일이 세자면 오십, 아니 육십은 족히 넘을 것이다. 혹시 나를 난봉꾼으로 오해한다면 곤란하다. 그들 대부분과는 그저 채팅을 하거나, 한두 번, 많아야 세 번 정도 만난 게 전부였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 몇 년 동안 연애에 있어 정말로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인영아, 잘 지내지? 정말 오랜만이다. 이번에도 너가 이 메시지를 읽을지 안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연락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새벽 세 시를 조금 넘긴 시각, 나는 칵테일 바에 홀로 앉아 카톡 메시지를 쓰다 지우길 반복했다. 영업이 끝난 바는 온전히 내 차지였다. 손님들이 앉던 기다란 테이블 위로 쏟아지는 조명이 내 손을 노랗게 비추었다. 결국 메시지 전송을 포기한 손가락은 이제 천천히 휴대폰 전화 화면을 훑고 있었다. 0,8,3,4... 그 번호가 맞던가? 뒷번호 네 자리를 입력해도 연락처가 뜰 리는 없었다. 이미 지운 번호였으니까. 입으로 몇 번이나 중얼거리며 잊고 있던 번호 앞자리를 더듬어 기억했다. 그러다 겨우 여덟 자리 숫자를 완성하자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몇 번의 신호 끝에 스피커를 뚫고 나온 안내 멘트가 참 무심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놨다.
"아... 이 시간에 또 뭐 하는 짓이냐 나는."
조그맣게 새어 나온 혼잣말이 아무도 없는 가게에 울렸다. 나는 스피커 볼륨을 다시 높였다. 끈적한 재즈 음악이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손을 뻗어 위스키 병을 들어 올리고, 잔 위로 술을 천천히 부었다. 진갈색 위스키가 둥근 얼음을 타고 흐르며 쩌저적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내 마음에도 이런 금이 생겼을 테지, 괜히 쓴웃음이 났다.
그 바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넉 달째였다. 작고 아담한 가게에서, 사장도 없이 나 혼자 새벽을 책임졌다. 가끔은 이렇게 문을 닫고 나서도 집에 가지 않았다. 내가 마시려고 따로 마련해 둔 술을 홀짝이며 음악을 들었다. 그러면 취기가 도는 머릿속엔 늘 같은 이름이 맴돌았다. 인영. 4년을 만나고 1년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였다. 이별 뒤의 나는 바보 같았다. 열 통 넘게 부재중 전화를 남기고, 집 앞까지 무턱대고 찾아가 만나자고 연락한 적도 있었다. 혼술에 취해 괜히 울적해졌다가, 다음 날이면 그런 내가 더 구질구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가 서른 중반이었다. 남들 다 결혼하고 애 낳는 그런 시기. 친구라도 붙잡아 한 잔 하려고 연락하면, '아직 애를 못 재워서', '와이프 허락을 못 받아서' 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아무리 봐도 그들이 정상이었다. 혼자인 나만 예외 같았다.
자취방을 구한 건 그해 가을이었다. 더는 부모님 댁에 머무를 수 없었다. 윗집에서 쿵쿵대는 발소리가 날마다 내 머릿속까지 울려댔다. 사실 그게 아니어도 내 삶은 이미 충분히 시끄러웠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줄어들기만 하던 통장 잔고는 바닥을 향해 달렸고, 퇴직금으로 사둔 주식도 속절없이 곤두박질쳤다. 밤이면 홀로 술을 마시곤 했다. 낯선 동네, 새로운 방, 새로 산 1인용 책상 위에 놓인 위스키 잔. 텅 빈 방에선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만 괜히 더 크게 들렸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아무도 내 울적함과 찌질함을 들여다보지 않는 곳. 윗집 발소리도, 부모님의 잔소리도 없는 곳. 낮에는 가끔 들어오는 외주 일로 겨우 생활을 이어가고, 밤이면 바에 나가 사람들을 상대했다. 일부러라도 번화가 가까이에 살길 잘했다 싶었다. 그 덕에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그 바의 구인 공고를 보고는 바로 지원했다. 방에서 혼자 궁상떠느니 차라리 사람들을 마주하고 돈이라도 벌자는 심산이었다. 문 닫은 바에 홀로 남아 위스키를 마시며 음악을 크게 틀어두는 건, 그나마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보상이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다. 내 서른 중반이 딱 그랬다. 연애도, 커리어도, 평온한 생활도, 하나같이 내게서 멀어졌다. 20대엔 불운이 와도 언젠가 다른 행운이 올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니 기대보다 불안이 더 컸다. 멀어지는 건 그저 멀어질 뿐이었다. 다시 예전처럼 사랑할 자신도, 일에 매달릴 열정도 쉽게 생기지 않았다. 숙취와도 같았다. 전에는 하루면 괜찮던 몸이, 서른 중반을 넘기자 며칠이고 괴로웠다. 나는 지독한 마음의 숙취를 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