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도 재능이다

재즈 애니메이션 명작 <블루 자이언트> 리뷰

by 차돌

모처럼 인생작이라 부를 만한 애니메이션을 만났다. 바로 <블루 자이언트>다. 2023년에 극장판이 개봉한 이후 이듬해 재개봉까지 이어졌을 만큼 입소문을 탄 작품이다. 귀멸의 칼날처럼 오락성이 강한 흥행작과 비교하면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다. 하지만 재즈라는 장르를 매개로 한 이 작품의 밀도는, 그 어떤 대작보다 뜨겁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 특히 삶의 무게를 아는 성인들에게 이보다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드물 정도다.


개인적으로 재즈를 제법 좋아하는 편이다. 어린 시절 겉멋으로 찾아 들을 땐 미처 몰랐던 재즈의 매력이, 나이가 들면서는 서서히 삶의 배경음악처럼 스며들었다. <블루 자이언트>는 나처럼 뒤늦게 재즈를 좋아하게 된 이들은 물론이고 훨씬 깊은 조예를 지닌 재즈 마니아까지 사로잡을 만한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클래식의 시각화를 보여준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의 영상미가 떠올랐고, 음악을 듣는 순간순간에는 영화 <위플래시>가 겹쳐 보였다. 그만큼 이 작품은 영상과 음악 두 요소 모두에서 강렬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주인공 미야모토 다이는 전형적인 '노력하는 천재'다. 친구를 따라간 재즈 공연장에서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고 색소폰을 시작한 뒤, 집요할 정도로 혼자 연습한다. 더 큰 물에서 성장하기 위해 무작정 도쿄로 향하고, 그곳에서 동료를 만나며 음악가로서의 밀도를 높여간다. 애니메이션은 이 도쿄 시절까지를 다루고 있고, 원작 만화에는 이후 세계로 뻗어가는 다이의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한다.


노력도 재능이다.


영화를 보고 내게 강렬하게 남은 문장이다. 다만 이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자기합리화를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 내가 이 생각에 이르게 된 건 다이와 같은 또래의 청년이어서도, 어떤 분야에 막 발을 들인 사회 초년생이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2~30대를 통과하며 여러 사람의 성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결과에 가깝다.


이만큼 살아보니,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재능을 꽃피우고, 그 노력을 인정받는 또래들을 여럿 보게 된다. 예체능 분야에서 일찍이 길을 정해 멀리 나아간 친구도 있고, 입시와 취업을 거쳐 대형 조직 안에서 차장, 수석 같은 직함을 단 친구도 있다. 매체 속 유명인보다도,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본 친구들의 성장 서사는 훨씬 직접적으로 나와 비교되곤 한다.


<블루 자이언트> 속 다이는 세계 최고의 '뮤지션'을 꿈꾼다. '해적왕'같은 꿈에 비해서야 훨씬 현실적이지만, 그 이후의 전개는 역시 만화적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니까. 그만큼 작품 안에서 그려지는 다이의 재능과 노력은 독보적이고,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만약 학창 시절에 이 작품을 봤다면, 재즈가 아니더라도 어떤 분야에서든 나 역시 그런 인물이기를 꿈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냉소적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충분히 통과했기 때문이다. 의지만으로 재능을 뒤집기 힘들듯, 노력 또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체력, 정신력, 성향 같은 것들이 함께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을 보며 '만화니까 저렇지'라고 치부할 생각은 없다. <블루 자이언트>는 스토리의 흐름이 매끄럽고 캐릭터의 매력도 뛰어나 몰입감이 매우 높다. 보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이후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감상하는 순간의 감동뿐 아니라, 각자 삶의 위치에 따라 알맞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어느 분야에서든 재능의 결핍을 한탄만 할 필요가 없듯, 노력의 부족 또한 지나치게 스스로를 학대하며 채우려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노력 또한 재능의 영역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과의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 실패가 오로지 노력 부족 때문이라고 자책하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방향을 고민하고 체력을 돌보며 궤도를 수정하거나 나만의 속도를 찾는 편이 더 이롭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성공만을 좇으며 노력을 강요당하고,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는 일만큼 가혹한 선택도 드물다.


모두가 재즈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 다만 <블루 자이언트>를 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재즈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것 역시 타고난 성향의 문제다. 이 글을 읽고 굳이 재즈를, 혹은 이 작품을 억지로 좋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 누구라도 재즈의 뜨거움과 강렬함에 한 번쯤은 매료될 것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가진 '노력의 그릇'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조용히 돌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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