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홍수>를 보고 느낀 점

OTT의 대홍수 속에서, '기시감'은 치명적이다.

by 차돌

* 내용보다는 영화 전반에 대한 일부 스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 한국 영화 <대홍수>를 결국 보았다. 사실 처음엔 관심이 없었다. 공개 직후 쏟아진 혹평을 보며, '그러면 그렇지, 또 한 번 한국 재난영화의 한계가 드러났구나'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몇몇 평론가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걸 보았다. 사람들의 표현이 지나치게 과격해졌고, 이 정도로 극악의 평가를 받을 영화는 아니라는 주장들이었다. 실제로 영화를 본 한 친구는 '이건 재난영화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신선하다고 했다. 그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보지도 않고 판단한 내 태도 역시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일부러 시간을 내어 챙겨보았다.


아닌 건 아니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재난영화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초반, 주인공 안나(김다미 역)가 홍수 상황에서 다급히 대피하는 장면은 영화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의미가 연결된다. 인물의 서사가 거의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대재난부터 들이닥치는 이 출발점에서, 관객이 기대했을 법한 건 크게 두 가지였을 것이다. 하나는 압도적인 볼거리로 초반 기선을 제압하는 방식, 다른 하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처럼 재난 이후의 인간 드라마를 치밀하게 쌓아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영화는 전개될수록 이 두 기대를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고, 관객은 서서히 지쳐갈 가능성이 크다.


영화 전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회상 씬은 서사적 설명 장치로서도, 리듬 조절 장치로서도 오히려 흐름을 방해한다. 재난 상황과는 어긋난 방향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던 내내, 묘한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았던 이유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대홍수>는 전형적인 타임루프 구조를 따른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처럼, 주인공이 어떤 방식으로든 '종료'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구조다. 다만 이는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생존의 반복이라기보다는, 주인공이 특정한 과학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감내하는 실험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재난물이 아니라, 명백히 SF 영화다.


요즘의 관객, 시청자는 말 그대로 OTT의 '대홍수' 속에 살고 있다. 재난물, 타임루프, 기억 이식, 디스토피아 같은 소재들은 더 이상 영화관에서만 접하는 특별한 설정이 아니다. 이제는 드라마에서도 흔하게 소비된다. 아마 감독의 머릿속에도 언젠가 보았던 인기 헐리우드 영화들의 설정이 무의식적으로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영화로 구현되었을 때, 관객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그 기시감을 알아챈다. 올해 유독 한국영화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많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OTT의 폭발적인 성장 속에서 한국 시청자의 경험치는 높아졌고, 눈높이 역시 확실히 올라갔다.


어릴 적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드래곤볼에 열광하던 시절, '돌아온 영웅 홍길동'에서 분노하는 홍길동의 모습은 어딘가 사이어인을 연상시켰고, '슈퍼차일드'는 거의 노골적인 차용처럼 보였다. 슬램덩크에 감탄하던 이들에게 '헝그리 베스트5'의 작화와 스토리는 아쉬움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아류'는 '본류'를 넘어서기는커녕, 흉내조차 쉽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한국영화가 헐리우드 영화의 아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오리지널리티에 익숙해진 시청자에게,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의 짜깁기는 더 이상 신선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때 그것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건 결국 서사의 치밀함과 완결성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대홍수>는 이 지점에서도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영화 후반부에 그래픽으로 반복적으로 표현된 '시스템' 장면은 이미 20년도 더 전에 <매트릭스>가 관객에게 선사했던 충격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지금에 와서 새로울 리가 없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남들의 평가에 휩쓸려 판단하는 건 분명 경계해야 할 태도다. 모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고 재창조하려는 시도를 무작정 폄하해서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홍수>는 결코 '볼 가치가 전혀 없는 영화'는 아니다. 일부 평론가들이 대중의 지나치고 원색적인 비난에 제동을 건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도 있다. 국내 시청자의 수준은 이미 상당히 높아졌고, 혹평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홍수>의 김병우 감독은 <더 테러 라이브>의 성공이 독특한 설정이나 CG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 탄탄한 전개와 서사에 있었음을 <전지적 독자 시점>과 <대홍수>의 연이은 실패를 통해 더욱 절실히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 결국 관객을 끝까지 붙잡는 힘의 원천은 언제나 하나다. 콘텐츠의 중심에는, 여전히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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