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들 중 누구일까
*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는, 영화를 보고 난 이들과 함께하는 리뷰입니다.
최근 한국 영화들이 줄줄이 초라한 성적표를 보인 가운데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인기가 특별하다. 흥행은 물론이고 <기생충>의 뒤를 이을 만한 계급우화라는 평가와 더불어 영화제 진출에 대한 장밋빛 전망까지. 평단의 호평은 물론이고 대중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비결은 뭘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철저히 재난 이후를 다룸으로써 꼭 필요한 서사에만 힘을 실었다. 상당수의 국내 재난 영화가 불필요한 서사와 지루한 신파로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던 사례를 떠올려 보면 이러한 선택은 옳았던 듯하다. 영화가 집중해야 할 지점을 명확히 하고 쏟아내는 스토리에 관객은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할 수 있다. 배우들의 열연이 뒷받침하는 탄탄한 스토리야말로 '모든 지형지물이 파괴된 가운데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라는 독특한 설정을 흥미롭게 풀어낸 비결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라는 의문을 마주하게 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밀도 있게 연출했기 때문에 관객은 극중 인물의 상황에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하며 깊은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쏟아내는 감상평이 영화에 대한 평가요 입소문이다 보니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주민 대표로 선출된 초기에는 쭈뼛거렸지만 계급 완장에 적응하며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란 구호에 앞장서는 영탁(이병헌 역). 선한 품성 때문에 사람들과의 갈등에 어려움을 겪지만 자신과 아내를 지키려는 과정에서 변화해 가는 민성(박서준 역).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 해도 인간의 도리는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명화(박보영 역)와 도균(김도윤 역). 그리고 이들의 주위에서 다채로운 모습을 보이며 생존에 힘쓰는 아파트 주민들. 전형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분투야말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니라 웰메이드 계급우화로 만들어 낸 힘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두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하나는 '과연 영탁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면 황궁 주민들의 갈등은 어떠한 형태로 터졌을까?'이다. 아파트 주민과 외부인 사이의 갈등이라는 극의 주요한 대립 구도가 아파트 내부에서 붕괴되는 역설이야말로 작품의 킬 포인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의 끝에서 은근히 표현한 인간 본성에 대한 희망의 측면에서 본다면 영탁에 대한 설정을 바꾸어도 결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의문은 '명화가 마지막에 정착한 마을 사람들의 이후는 어떠할까?'이다. 나는 황궁 아파트와 다른 지역 주민들의 상황을 단선적으로 비교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어떤 집단, 무리의 성격은 다수의 평균으로 정해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목소리 큰 인물과 주변인들의 선동, 집단이 처한 상황에 따라 힘없고 소심한 다수는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의견을 수용하고 따른다고 보는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그려낸 황궁 주민들의 상황이 그러하지 않았는가. 명화처럼 남을 배려하고 돕는 이들이 결국 살아남는다는 식의 착한 교훈으로 이 영화를 마무리 짓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밖에도 결말에서 그려낸 민성-명화 부부의 애틋한 스토리와 연출 - 머리핀과, 폐건물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 은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차라리 다 죽는 디스토피아적인 결말이 깔끔(?)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보면 내 안에 명화는 사라진 걸까?
한국형 재난 영화의 업그레이드를 확인한 듯하여 반갑고 즐거운 마음 한편에는 생존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무거움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황궁 아파트의 주민이었거나, 주민이거나, 주민이고자 하는 누군가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