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말은 에이닷이 듣고 밤말은 제미나이가 듣는다

by 차돌

언제부터인가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AI 통화 비서 앱을 이용하고 있다. 스팸 전화도 알아서 걸러주고, 통화 내용을 요약까지 해주니 여러모로 편리하다. 뿐만 아니라 미처 저장하지 못한 번호로 연락이 오더라도 예전 통화 기록이 있으면 상대가 누구일지 추측해 알려주기까지 한다. 가히 손 안의 비서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다.


이뿐만이랴, 주위를 보면 이제 우리 부모님 세대도 챗GPT며 제미나이 같은 AI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남녀노소 누구든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언제 어디서나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막연히 상상하던 AI의 시대가 이렇게 훌쩍 우리 곁으로 다가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들의 정보 유출 사고는 늘 사회적 문제로 다뤄지는데, 정작 이렇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수집되는 정보들은 괜찮은 걸까 하는 의문 말이다. 신원 정보를 직접 발설하지 않아도, 어쩌면 평소에 나누는 대화야말로 더 민감한 사생활 정보일 수가 있다. 게다가 이 모든 대화가 어딘가의 서버에 기록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더욱 무섭다.


제미나이, 챗GPT와 나눈 대화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기업의 채용 면접에서 지원자에게 챗GPT 대화 내용을 공개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만큼 AI 사용 기록이 개인을 파악하는 데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뜻일 테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단순한 정보 검색을 넘어 꽤 사적인 고민들을 AI 채팅창에 털어놓은 적이 많다.


갑자기 두려워진다. 이제는 이름이나 전화번호, 주민번호 같은 정보 유출만이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다. 편의에 길들여져 무심코 허용해 온 나의 사생활이 수많은 AI 서버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그 유명한 조지 오웰의 소설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과거에도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사람들은 빅 브라더, 감시 사회를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최근 AI 기술의 가파른 성장을 보고 있자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차원이 다른 세상이 성큼 다가온 듯한 느낌이다. 많은 빅테크 기업의 수장들 역시 앞으로 판이하게 달라질 미래를 예견하지 않았는가.


오래된 속담 하나가 이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차라리 낮말을 새가 듣고 밤말을 쥐가 듣는 편이 다행일 지경이다. 이제는 낮말은 AI 통화 비서가 듣고, 밤말은 AI 채팅창에 전부 기록되는 세상이다.


어쩌면 우리는 더 편리한 세상을 위해, 조금씩 우리의 자유를 내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선택이 결국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갈지는 누구도 속단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기술을 '무심코' 사용할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편의를 위해 무엇을 허용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AI가 우리의 말과 생각을 알아서 저장하는 시대라면, 무엇을 노출하면 안 되는지는 결국 우리가 알아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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