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말로도 존중할 수 있는 사회를 한 번쯤 생각해 봤다면.
가끔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도 존댓말이 사라지면 어떨까 하고. 딱히 곁에 나를 괴롭히는 꼰대가 있어서는 아니고, 나란 놈이 웃어른 공경의 예의범절을 모르는 건 더더욱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둡니다.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바꿔보는 상상은 때때로 꽤 재밌는 일이고, 존댓말을 없애는 가정도 그중의 하나일 뿐.
상상을 하게 된 계기는 수없이 있었다. 흔한 일상에서 누적된 경험들을 분류해 보다가 하나의 묶음으로 설정해 본 가정이기도 한 동시에, 특정 시점이나 관계에서 느끼던 바가 있을 때마다 떠올렸던 게 바로 존댓말이 사라진 한국인 것이다.
30대인 난 여전히 부모님께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사용한다. 어떤 때는 "아부지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하다가도 어떤 때는 "엄마, 나 그 바지 어딨지?"라며 살고 있는 것이다. 한창 인기였을 때 무릎팍 도사에서 안철수가 말한 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존댓말을 깍듯이 썼다는 일화라든지, 이렇게 부모 자식 간에 서로 높여 쓰는 말에 교육적인 의미가 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만 어쨌든 난 그렇게는 못 산다. 부모님이 어느 날 내게 진지하게 "아드님, 우리 서로의 인격 존중을 위해 존댓말을 사용하는 게 어떻겠어요?"라고 하신다면 모를까. 아니, 가만 생각해 보니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기면 난 나이 서른이 넘어 가출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간혹 그런 생각을 품어봤다. 가장 공경할 대상인 부모님, 혹은 친척 어른들께 이처럼 편한 어휘를 구사하면서도 존중의 태도를 키워가듯, 타인에게도 그럴 수 있지는 않을까 라고. 서구권에도 물론 존칭이나 기본적인 존대의 표현은 있지만 우리와 같은 엄격한 존대어가 없음에도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오지 않았나. 물론 애초에 그랬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라든지 기타 문화적 배경까지를 따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야 어디 발칙한 상상은커녕 "~한다면?" 이란 생각 따위를 품을 여유가 있겠는가.
가정(supposition)의 범위를 가정(family)을 뛰어넘어 사회적 관계로 확대해 보면 존댓말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진다. 한국 사람들이 초면인 사람에게, 혹은 직장 상사에게 사용하는 존댓말은 과연 '편하게' 그 순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존댓말이 타인에 대한 공경이나 존경을 드러내는 충분조건이자 필요조건이 돼 버린다면 그 순간 반말은 하대의 언어로 격하돼 버리기에 나는 언어 사용 자체가 곧 매너를 전제한다고는 생각지 않는 것이다. 보다 편한 어휘로써 아이와 어른 모두를 두루 존중할 수 있는 '적정 수준'에서의 반말 통일은 꿈꾸면 꿈꿀수록 부정적이라기보다는 이상에 가까워 보인다.
존댓말의 어색함을 느꼈던 건 대학생 무렵이었다. 평범한 중학교와 인문계 고교를 나온 나로서는 기껏해야 1~2년 차이 선후배 사이의 위계질서 같은 건 잘 몰랐다. 그러다 비로소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야 나는 선배들에게 매일같이 둘러싸여 언어의 단계를 설정하다가 불편을 겪었던 것이다.
그저 대학생이 됐을 뿐인데 서로 간의 호칭과 존칭은 뭐가 그리도 꼬이던지. 빠른 년생인데 재수를 해서 나와 같은 학번인 동기와, 알고 보니 그 동기와는 고등학교 친구였던 한 학번 위의 선배가 함께인 자리는 영 어색했다. 어느 과에서는 무조건 학번 질서라 차라리 '깔끔하다'고들 하던데, 이건 뭐 언제 어디서부터 정해졌는지 우리 과는 또 그렇지 않아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들 하고, 과연 무엇이 깔끔하고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고.
뭐 호칭이야 안 부르면 그만이라 쳐도, 때때로 선후배들 사이에서 느끼던 존대의 언어와 존중하는 마음 간의 이질감이란 처음으로 내게 '어른'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해 주었다. 기껏해야 서너 살 많은 선배들이 세상 풍파 다 겪은 듯 '어른'처럼 행동하는 게 영 어색했던 동시에, 한 두 살 어린데도 생각이나 행동이 정말 점잖은 후배가 내게 깍듯하게 존댓말을 하는 것 또한 어색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대학생활이란 그리 심각하기보다는 유쾌한 방향으로 흘렀던 게 사실이나,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일단 존댓말의 수준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말할 때 김 대리를 대리'님'이라고 불렀다며 화를 내던 부장님 앞에서 나는 그가 과연 압존법 때문에 그러는지 내 업무 퍼포먼스 때문에 돌려서 그러는지를 곰곰 생각해 봐야만 했다. '학점'에서 제아무리 자유롭던 나였을지언정 '성과'나 '월급' 앞에서는 좀처럼 기를 펴기 힘들었던 신입 시절에는 엄격한 언어만큼이나 마음도 답답하기 일쑤였다. 깍듯하게 대해야만 할 대리, 과장님들에게 존댓말을 쓰기란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존중의 마음이 커지긴커녕 줄어들기만 하던 게 사실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존댓말이 없어졌다는 가정을 했을 때 예상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좋은 방향에서 보자면,
1. 첫 만남에서 나이를 따져 형/동생을 가리는 관계 설정이 사라질 테고
2. 빠른 년생, 직장 상사와 아래 직원, 친인척 내 위계에 따른 호칭과 존칭 구분이 줄어들 테고
3. 1번과 2번에 따라 그동안 존대와 하대로 인해 애매했던 사이에 보다 많은 대화가 오갈 수 있을 테고
4. 3번의 결과, 사람들 간에 논의와 토론이 활발해져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활발해질 것 같고,
5. 이른바 '서구식' 문화의 대표적인 장점으로 꼽히는 수평적 인간관계가 우리 사회에도 자리 잡을
가능성을 점진적으로든 혹은 (우리 사회 특유의 역동성 덕에) 생각보다 빠르게든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반면 걱정할 수 있는 지점을 살피자면,
1. 존댓말이 갑자기 사라지면 벌어질 언어의 변화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 다양하게 나타날 테고
2. 그럼에도 바뀌어진 일상어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 사회 문화 전반의 변화가 뒤따를 테고
3. 오랜 시간 당연했던 위계질서들이 구태로 여겨지면 그것이 지켜냈던 관계의 틀이 깨지기 시작할 테고
4. 2번과 3번으로 위기를 느낀 그동안의 '윗사람' 들은 민주화의 성숙에 따른 탈권위조차 존댓말 폐지로 인한 역효과로 여기며 어떤 방식으로든 권위의 회복을 도모할 테고
5. 4번으로 벌어질 세대 갈등, 계층 갈등으로 인해 애초에 존댓말의 폐지로 기대한 수평적 인간관계가 현실화 되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껴서 결국 다시 존댓말을 찾을지도 모를
가능성이 서서히 대두되거나, 아니면 (우리 사회 특유의 역동성 덕에) 훨씬 거센 저항으로 불어닥치지 않을까?
혹시나 덧붙이자면 이미 존댓말을 없앤 모범 사례도 있고, 존댓말에 대해 토론한 유명인들도 있다는 사실. 히딩크 감독이 우리나라에 부임해서 혁신한 것들 중 대표적인 사항이 바로 수평적인 의사소통이라는 건 이미 유명한 일화다. 선수들이 소위 '고참'에게만 패스하는 기이한 현상을 본 그가 경기장 내에서 서로 이름을 부르게 하고 반말로 경기를 조율하게 한 지시가 2002년 성과의 주요 원동력이었음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 사실이다.
또한 인기리에 방영됐던 알쓸신잡 시즌1에서 패널들이 짧게나마 우리나라의 존댓말 문화를 놓고 토론한 내용도 내가 많이 공감했던 바다. 사람들 간의 모호한 호칭이 관계를 설정하고, 그것이 대화의 내용을 위축시킨다는 말이 특히 와 닿았다. 그날 방송의 주요 화제는 아니었기에 별다른 결론 없이 끝난 짧은 대화였다만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다.
까마득하게 어린 아이가 내 이름을 부르고 말을 짧게 끝내는 상상을 한들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내가 아직 별다른 권위를 지녀보지 못해서일까. 존댓말로 비아냥 거리던 모습이 그야말로 꼴도 보기 싫던 과거 어느 1인이 거기다 내게 반말까지 썼더라면 과연 나의 기분은 그보다도 상할 수 있었을까.(그럴 거면 존댓말은 뭐하러 쓰고 있냐는 말이 앞니까지 차올랐었기에)
어, 그러고 보니 나는 왜 불특정 다수가 읽을 수 있는 이 글을 존대어로 쓰고 있지 아니한가? 별볼일 없는 작가지만 읽고 공감해 주시는 분들을 존중하는 마음은 이다지도 큰데 말이....ㅂ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