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이렇게 원초적인 단어를 되게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러할 지도 모른다. 죽음, 삶,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거리들은, 성인이 된 지금은 잘 쳐다보지 않게 된 것 같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시간이 짧아졌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이런 고민들은 중학생 시절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나 자신을 세상에서 정의 내리는 과정은 필수적이며, 나란 사람을 인식해 가는 과정이다. 흔히들 사춘기라 하는 시절인 중학생 때의 나는 이러한 질문들을 고민하기 일쑤였다. 도서관 000번대 윤리 책들을 찾아보며 삶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즐거웠었나 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생각이라는 것이 깊어졌을 것이다
중학생 시절의 내가 자아를 선언하는 과정이었다면,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자아를 생성,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선언과 생성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선언하는 것은 단지 생성될 자아를 다루기 위한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뿐이고 생성하는 것은 실제 자아가 생성되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의 나는 참 나 자신을 정의 내리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에세이의 주제로 주어진 정의가 이 정의가 아닌 줄 안다 농담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것이, 자아라는 것은 바뀌는 것이 분명한데 나는 고등학생 시절 정의 내린 나 자신을 지금까지 인정해 주고 그 정체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분명 나는 성장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렇게 살아야지라고 했던 순수했던 그 당시의 나의 선언과 꿈을 이뤄주고 싶은 그런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점차 커가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과 생각들이 매번 바뀌어 가는 나를 마주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아, 나는 나를 알아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행복이구나! 인격과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며 ‘나’라는 사람을 세워간다는 것이 사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원초적인 행복이 아닐까?
그 예시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며 더욱 나를 알아 갈 수 있다.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며 오히려 나에 대해 더욱 정의 내리게 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사랑을 키우며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이란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 즉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삶에는 불행도 있지 않은가, 어찌 그렇게 낙천적으로 행복이 곧 삶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가? 이렇게 반박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삶에는 꼭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며 불행도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내가 행복과 삶을 연관지은 것은, 꼭 삶이 행복만 할 필요는 없다고 얘기하고 싶다. 언제 삶이 행복이라 했는가? 행복이 삶이라고 하였지. 이게 무슨 소리냐면, 삶에는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이 둘 중 하나만 존재한다면 둘을 더 이상 행복과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둘은 상호보완적 관계이며, 필수 요소 인 셈이다. 얘기가 좀 러프하게 쓰이고 있는 것 같지만, 잘 따라오고 있길 바란다. 정리하자면, 행복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를 알아가는 것에서 찾을 수 있고, 불행이 있기에 행복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의 인생을 한 권의 책에 빗대어 본다면, ‘임지민’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나’는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이자 동시에 이 책의 하나뿐인 주인공이다. 주인공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삶을 살아가기 전 내 삶에 대해 주체적으로 연출할 줄 아는 작가의 역할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의식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나이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또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알기 위해 다양한 것을 통해 비로소 나를 알아간다. 계속해서 나에 대해 관심을 갖는 모습이 나는 행복에 대한 나의 투쟁이자 노력인 셈이다.
행복은 곧 나를 정의 내리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을 마무리하며, 내가 내리는 나의 정체성을 이야기해 보겠다.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태명’과 내가 직접 지은 내 ‘호’로 나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다.
먼저, 내 태명은 캔두(CAN DO)이다. 내가 배 속에 있었을 당시, 어머니께서 여성 기업인 김태연 회장님의 연설에서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라는 얘기를 들으시고는 내 태명을 캔두(Can Do!)로 지으셨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나는 이 태명 덕분인지 캔두 정신을 가지고 살고 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다는 정신 하나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다음은, "현향"이라는 내 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당시 나 자신에게 "현향"이라는 호를 직접 지어주었다. 炫 밝을 현, 響 울릴 향, "세상에 밝음을 울리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내가 살아가면서 이 세상에 밝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나의 좌우명을 담아 만든 호이다. 이렇게 캔두와 현향은 내 아이덴티티이자 나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현향이라는 내 호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며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살아가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내 호와 가치관이 바로 나의 미래를 살아가는 바탕이 될 것이다.
행복에 관한 에세이를 쓰는 과정에서 느낀 것은 나는 꽤나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원래 살아간다는 것이 나를 알아가기 위한 여정이라지 않은가. 나는 그 지표선을 세워두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나의 생각이 의아하게 느껴진다면, 먼저 곰곰이 생각해 보라.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정의 내리고 있는가? 잘 알고 있다면, 이미 행복을 위한 고군분투를 한 사람일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앞으로 행복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이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면 된다. 어느 쪽이 되었든, 자신을 정의 내리며 행복을 찾아가는 당신을 응원하며 글을 마치겠다. 내 생각이 맞는 말인지 한번 여러분이 직접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