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거리는...
어딘가 쏟아 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문득 브런치에다가 글로 해소를, 아니 그냥 토로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내가 지금 처한 상황들을 차치하고서
그냥 마냥 좋은 날들도 있지만
여기서 내가 조금 더 효율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면서
동시에 우리 남편이 한국에서 하고 싶었던 것들도 하면서 그렇게 보내고 싶었다.
뭐든지 완벽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조율하면서 서로 이해하면서 그렇게
'이정도면 괜찮았다.'
하는 선을 지키고 싶었다.
한국에 갑작스럽게 오게 되면서
내가 직접 연락해서 상황을 전달한 친구들도 있는 반면
전해 듣고 알게 된 친구들도 있었고
아예 내가 연락조차 하지 않은 지인들도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을 나만의 기준으로 울타리 쳐 놓고선
가까운 정도에 따라 내가 연락을 해야하고
얼마만큼 설명해야 하고
그것을 나 혼자 쟀던 거 같다.
가족이라도 항상 편하지만은 않았고
나는 거리를 많이 멀게 유지하면서
각자가 알아서 잘 살아주기만을 바랐다.
그래서 스웨덴으로 떠날 결심을 하면서도
우선 '나'를 먼저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아마도 나의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일로 가족이 나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고 와서
내가 나중에 덜 후회하기 위해서, 덜 죄책감을 가지려고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쏟았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뭔가 내가 부족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휘둘리고 싶지 않고 심지를 굳건히 하고 싶었는데
언제나 나를 감정적으로 휘둘리게 만드는 존재들이 아마 가족인 거 같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날
친구들을 만나러 다른 도시로 갔다.
멀지 않은 이웃도시라 어찌저찌 왔는데
도저히 걷기 불편한 상황이라
빵집에서 빵을 사고 잠깐 안에서 대기했다.
앞에 일정을 마무리하고 친구 1이 데리러 올 때까지...
스웨덴에 살면서 이 친구들과의 연락을 참 뜸했다.
우린 원래 한국에서도 각자 지역에 살면서
각자의 삶을 사느라 그렇게 자주 보지 못했고
그래도 스웨덴에 와서는 그나마 내가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친구들이었다.
물론 사소한 서운함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한국에 온다면 꼭 보고 가는 친구들이었다.
이번 일이 공교롭게도 친구 2가 머물고 있는 도시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어서
친구 2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자주 보기도 했다.
그녀가 없었으면 얼마나 내가 더 막막하고 힘들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 친구 1에게도 알렸다.
서로 알고 지내 온 시간이 인생의 절반 이상이다 보니
우리가 속속들이 다 말하지 않아도
그냥 허공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켜도 위안이 되었다.
내가 간과했던 그들과의 관계가 비로소 더 빛을 발했다.
일상을 공유하지 않았다고
자주 연락을 하면서 소통하지 않았다고
물리적으로 멀어진 거리가 관계적으로도 멀어졌을 거란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한국에서 그녀들에게 받은 위안은 정말 너무나도 컸다.
그리고 가장 많이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도 숙소로 돌아가는 길...
밤에 타는 지하철이 이랬지
뭔가 느낌이 생경했다.
숙소를 옮기면서 가장 많이 드나든 버스정류장
두 도시가 가까워서 버스 배차 간격이 크지 않은 터라
자주 왔다갔다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을 준비했다.
같은 도시에서 머물면서 할 수 있는 일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간간이 방문하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조금 달랐고
내가 느끼는 부담감도 조금은 덜했다.
한국에서의 시간들이 많지 않았으니까
내 나름대로 거리 두기를 하려고 했던 거였을 수도...
잘 살아 부디!
바다의 도시라
바다를 보고 가고 싶었는데
한여름, 성수기 바다는 정말로 사람이 많았다.
유명한 바닷가, 해수욕장이다 보니 어찌나 사람도 많고
북적이는지...
내가 좋아했던 이 곳은 사람이 한적한
가을 겨울의 밤바다였던 거 같다.
적당히 쌀쌀하고
습기로 끈적이는
자주 오고 싶지 않아도
한 번씩은 그냥 바라만 봐도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고 싶은 그런 날
난 이곳을 종종 찾았던 거 같다.
이번엔 어쩔 수 없이 한여름에 내가 한국에 와서
이런 인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을 찾았고
한번 봤으면 됐다 하고 발길을 돌렸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이지만
이곳을 벗어나려고 엄청나게 노력했고
갈 때마다 애틋하고 정겹지만
다시 돌아가기엔 망설여지는 그런 곳이다.
그리고 마지막 일정...(인 줄 알았는데ㅠㅠ)
친구 3, 친구 4와 그의 아들을 만나러 갔다.
이미 당일치기도 만났었지만
친구 3은 한국에 온 그 첫날 봤었지만
이 날만큼은 아주 달랐다.
내가 답답하게 느끼는 이 감정도 이 날 비로소 생겼고
잘 풀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굉장히 무겁게 다가왔다.
친구 3은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항상 '과'했다.
과하다는 건 본인은 몰라도 내가 느끼기엔 충분히 그랬다.
사람마다 과함과 적당함의 기준이 다르니까
어느 정도 감안하면서 나는 친구 3을 대했고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던 거 같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로가 뭔가 해결해주지 않아도
그냥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굉장히 고마울 때가 많았고
이번 한국에 오게 된 일에서도
내가 그녀들에게 바란 건 아마 그냥 들어주고 묵묵히 바라봐 주길 바랐던 거 같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생각한 것이었고
친구 3, 친구 4는 그렇지 않아서 여러 방면으로 많이 도와주려고 했다.
특히 친구 3은 더욱 더...
첫날 숙박부터 내가 가야 할 도시로 운전까지 자처해서 해주고
오랜 비행으로, 시차로 정신 못차리는 나에게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해주려 했다.
나는 그냥 딱 거기까지, 그리고 쿨하게 가 주길 바란 거 같은데
이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자기가 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러고도 남을 아이였는데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냥 터놓고 싶은 마음에 이 아이에게 나의 상황을 너무 구구절절 말했던 게 아마도 잘못인 듯했다.
그걸 그 당시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받는 입장에서 너무 버거워지면서 깨달았다.
친구 4도 이 상황을 알았기에
내 의사를 전달해 주고 싶은 마음에 3에게 연락했다가
서로 감정이 상했었다고 했다.
둘이선 어찌저찌 풀어진 거 같았는데
원인제공자였던 나는 그게 내심 걸렸다.
내 상황이 정리되면, 조금 안정되면 내가 꼭 내 입으로 말해야겠다 생각했다.
나는 선이 확실한 사람이고
너무 많은 도움들이 나에겐 버겁다고.
내가 원하는 선까지 도와주면 충분한데
내가 원하는 선을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너희 입장에서 잘 모를 수 있으니까
앞으론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확실히 말해 주겠다고 했다.
이것저것 다 던져놓고 받는 입장에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자꾸만 더 뭔가 하려고 하고 보채면 받는 입장에선 너무 정신이 없고
고마움이 부담감으로 변한다고.
그런데 친구 3은 그게 내가 이기적인 거란다.
왜 내가 네가 원하는 것을 알아서 그정도만 해주길 바라냐고 했다.
머리를 띵 맞은 듯했고
뭐라 말해야 할 지 몰랐다.
친구 4는 어린 아들을 붙잡으러 다니느라 잘 몰라서
나중에 다시 설명해줬는데 친구 4도 딱히 할말은 없어 보였다.
나의 예시는 이랬다.
나는 친구집을 방문했을 때
친구의 허락을 받고 냉장고 문을 열고
친구의 허락을 받고 수건을 빌리고
이런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친구 간의 선인데
친구 3은 자기 집인 양 냉장고 문을 열어서 확인하고
자기 물건인 양 편하게 쓰고
심지어 다이어리나 가계부도 서슴지 않고 보는 상황을 내가 목격했다.
나로서는 그게 참 많이 불편한 상황인데
친구 3은 왜 그런 너의 선을 내가 맞춰야 하냐는 식이었다.
최근 여러 일들로 마음이 복잡하고 상담을 받으면서 약도 먹고 일도 쉬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친구 3이 하는 모든 행동들을 내가 다 받아 주기엔
나에겐 너무 스트레스였고 힘들었는데
이 아이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 그렇다고 카페 한복판에서 소리를 높여가며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잠깐 같이 언성을 높였을지도 모르지만
친구 3의 눈물이 터지고 그 후로 나는 입을 닫았다.
1박 2일의 일정이었는데
나는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도
앞으로 나는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고민이 되었다.
이 아이와의 거리가 확 멀어진 느낌이랄까...
터미널에 도착하고
돌아가야 하는 시간
어색한 작별을 하고 나는 다시 내가 머무는 숙소로 돌아왔다.
마음은 여전히 무거워도 몸은 훨씬 편하다.
부모님집도
친구집도
나에겐 굉장히 불편했었나보다.
친구 4는 내가 신경쓰였는지
이른 아침 어린 아들의 어린이집 등원을 준비하면서
이리저리 이야기를 꺼내왔다.
답은 없었지만
그래도 친구 4는 내가 느낀 감정들을 이해하는 듯해서
그걸로 만족해야 했다.
저녁 산책길에 소나기를 만났다.
근처 카페 안으로 피해서 소나기가 그치길 기다렸다.
남편에게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얘기했고
남편은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사람마다 선이 있는 데 그걸 고려하지 않고서 어떻게 관계가 유지될 수 있겠냐며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나와 생각하는 게 비슷해서 우리가 서로 편안함을 느끼나보다.
아무튼,
시간이 해결해주길 바란다는 친구 4의 말처럼
나의 몇 남지 않은 친구들이
그냥 지금처럼만 서로 이해해주길 바랐는데
1234의 숫자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게 너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