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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 Aug 08. 2021

난(蘭)

난 꽃이 핀다는 것

  내가 열여덟 살, 그러니까 삶의 의미 따위는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살아있으니까 살아가던 시절, 유난히 추운 우리 집 베란다에는 난(蘭)이 있었다. 아마도 그 난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새 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엄마인 란(蘭)을 응원하는 마음이 담긴 누군가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수더분한 애인이 그녀의 이름을 따선 조금은 촌스러운 센스를 발휘해 우리 집으로 보낸 애정의 징표였을지도 모른다.


  그 난은 내가 좀 더 어렸을 때에 거실의 협탁 위에서 따뜻한 날들을 보냈었다. 그 시기 엄마는 새 집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작은 흠집이라도 나면 큰일 날 듯 구석구석을 온 힘을 다해 가꾸며 정성을 쏟고 있었다. 시댁에 살 땐 남대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새 집으로 이사를 온 이후에는 백화점에 엄마의 매장을 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보험금과 유산이 우리의 집과 생업, 그리고 학업을 뒷받침해주기에 충분히 따뜻한 금액인 줄 알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집에 있던 모든 사물과 생물이 그랬듯, 그 난도 곧 무관심하게 방치되었다. 난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 난을 다시 발견한 건 그러니까, 열여덟 살, 너무나도 일찍 삶의 생기를 잃고 있던 무렵이었다.


  일찍 수업이 끝났던 날 오후, 언제나처럼 혼자 교복 빨래를 하고 있었다. 집으로 우리 반 반장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도 몰랐던 나의 모의고사 등수를 알고 있던 반장 어머니는 내가 이번 모의고사에서 반 1등, 전교에서도 손에 꼽는 성적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고선 나에게 엄마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덤덤하게 우리 엄마는 안 될 거라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매장 운영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고 엄마는 내 학교생활은 물론 나에게 관심을 끊은 지 오래였다.


  그즈음의 엄마는 거실에 혼자 앉아서 계산기를 두드리거나,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한탄을 하거나, 이른 저녁부터 방에 혼자 누워 있는 일이 많았다. 그때의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짧디 짧은 도화선을 바짝 대고 있었다. 특히 돈 이야기가 나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펑하고 화와 눈물을 터트리곤 했다. 그런 와중에 모의고사며 내신을 따라가기가 점점 벅차게 느껴졌던 나는 며칠 전 친구와 학원 상담을 받고 왔었다. 학원비는 한 달에 50만 원. 엄마에게 말을 꺼내봤자 또 욕만 먹을 것 같았다. 나는 그 후로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머릿속으로 셈을 먼저 해보곤 신 포도를 떠올리는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전화를 끊고 교복을 널러 베란다로 나갔다. 그날따라 베란다에선 생경한 꽃향기가 진하게 났다. 거기에 있는지도 몰랐던 난에서 예쁜 꽃이 피어 있었다. 마음이 울렁였다.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던 아이가 나 좀 봐달라고 이토록 향기가 진한 꽃을 피웠다니. 나는 꽃을 피워낸 난에 늦게나마 그때 딱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정성을 쏟아보았다. 나의 마음과는 반대로 꽃은 금세 지고 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어버렸다. 울적함보단 무력감이 어울리는 기분으로 시든 난을 휴지통에 버렸다. 무언가를 돌본다는 건 마음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그 후 몇 년이 흐르고 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직업을 가졌다. 나의 생기는 매해 내가 받는 급여만큼 차올랐다. 내가 거쳐 갔던 모든 일터에서 매번 유능한 사람이라는 인정도 받았다. 혼자서 독립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니 적적한 집에 화분을 들여놓고 싶어 졌다. 이것저것 알아볼 요량으로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다 어떤 블로그에서 난 꽃을 피우는 방법에 대한 글을 발견했다. ‘꽃을 피우려면 난을 너무 아끼지 말라. 죽지 않을 만큼만 돌봐야 한다. 추운 겨울이 되면 밖으로 내몰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꽃눈이 생긴다. 위기를 모르는 난은 꽃을 피울 수 없다.’


  엄마의 난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을 보낸 그 난은 내가 여전히 코끝으로 기억할 만큼 진한 향기를 내뿜는 꽃을 피웠었다. 엄마는 나름의 방식으로 꽃눈이 틔워질 만큼 난을 돌봤던 것이었나. 겨울을 거쳐 맺힌 꽃눈들은 다만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 나의 생기가 차오른 건 이미 몇 번이나 크고 작은 꽃이 핀 덕분임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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