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인의 일상

펼쳐보지 못한 책

by 크리스티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혈연이라는 운명으로 만나 긴 시간을 서로 부대끼며 살아왔지만, 정작 저는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말이예요. 무슨 생각을 품고 사셨는지, 무엇을 좋아하셨는지, 어느 곳에서 마음을 다치셨는지... . 한 가지도 아는 것이 없더군요.


아버지는 2011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어요. 어두워질 시각에 경운기를 몰고 나가셨다가 승용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고,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이미 늦었구요. 관계가 소원했던 딸로서 뒤늦은 회한에 저는 오래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짙었던 미움이 사실은 당신을 향한 강렬한 사랑이었다는 깨달음이 저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만들더군요.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하죠. 얼핏 생각하기에는 큰 일들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떠올릴 것 같은데, 실제로는 소소한 사건들에서 당신을 그리워하게 되더군요. 오랜만에 집을 찾은 딸에게 고기를 삶아 손수 밥상을 차려주셨던 일, 아침이면 마당에서 들려오던 아버지의 찬송가 소리, 객지에서 심하게 아파 집을 찾았을 때 산에 가셔서 참꽃을 꺽어 주셨던 기억. 이런 작은 추억들이 일상에 불쑥불쑥 끼어들면서 저를 멈추어 서게 만들더군요.


아버지라는 존재는 제게 펼쳐보지 않았던 한 권의 책이었고, 이제는 읽어볼 기회조차 없는 영원히 잃어버린 책이 되었어요. 뼈아픈 참회를 해보지만 만시지탄일 뿐이죠. 영원히 그 자리에 계실 것 같았지만, 그건 저의 큰 착각이었던거죠.


생전 어린 저희들을 엄하게만 대하셔서 우리는 애틋한 사랑에 목말라할 수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당신께서도 적나라한 한 남자로서의 인생을 살아내시느라 고단하셨으리라는 생각을, 이별하고나서야 바보처럼 하게 됩니다.


우리는 먼 길 위에 서 있는 여행자들이잖아요. 그리고 길고 고단한 여정의 끝에 마침내 모두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고 믿거든요. 세상짐을 벗고 본향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이제 깊은, 평화속에 계시겠지요.


펼쳐보지 못한, 한 남자의 책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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