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그보다 못한 존재를 구별짓는 것은 무엇인가
노벨문학상 2017년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1954~)가 2005년 발표한 소설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간병인으로 11년 이상 일해왔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31세 캐시의 독백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그녀는 영국의 기숙학교 헤일셤에서의 유년시절의 추억과 많은 친구들 중 루스, 토미를 떠올린다.
헤일셤의 학생들은 석달에 한번씩 그 동안 그린 유화, 소묘, 도예품, 시 등 작품의 전시회 겸 판매회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서로의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도록 고무하였다. 훌륭한 작품을 ‘창조’하는 학생은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대접을 받고 존중을 받았다. 학생들은 친구들의 작품들, 손으로 시를 쓴 종이들을 사서 소중하게 보관하곤 했다.
학생들은 좋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해 가는데, 차츰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고, 장기 기증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복제 인간(클론)이었다. 그들은 성인이 되는 대로 장기 기증을 하고 삶을 마감하기로 되어 있다.
인간들은 클론의 존재를 외면하고,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살린 장기 이식에 쓰인 장기들이 실험실에서 쉽게 만들어진 듯 생각해 버렸다. 클론은 인간을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어둠 속에 묻혀 있었고, 영혼이 없는 인간 이하의 존재여야 했다.
이 소설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존엄성을 가진 인간을, 다른 그보다 못한 존재와 구별짓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예술을 ‘창조’해내는 능력, 예술 작품을 만들고 시를 쓰는 능력이 있다면 인간이지 않은가. 영혼이 있는 인간이지 않은가?
운명을 거스를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아내고, 그것을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 선물로 남기고 떠난 루스는
훌륭한 인간이지 않은가?
너희 어린 클론들에게 진실을 숨겨 결과적으로 행복한 유년시절을 선물했다는 에밀리 선생님의 변명에, 당당하게, 나의 존재에 대한 진실은 그것이 끔찍하더라도 내가 직시하게 해 주었어야 했었다고.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외치는 토미는 훌륭한 인간이지 않은가?
기증자로서 예정된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주어진 한정된 삶의 시간에 간병인이라는 힘든 직업을 오래 감당하며 결국 죽을 운명의 기증자들을 수발하며 함께하는 캐시는
정말 훌륭한 인간이지 않은가?
어째서 그런 걸 증명하셔야 했던 거죠 에밀리 선생님?
우리에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나요?
우리에겐 단 한번 밖에 없는 삶인데요
가즈오 이시구로의 문장들
- 이제 그때를 돌아보면 당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가 누구인지, 교사나 외부인들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몇 가지 알고 있긴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나이였던 것 같다. 우리 같은 존재라면 누구든 유년의 어떤 시기에 그날 우리가 한 것과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저 바깥세상에는 마담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을 우리는 미워하지도 않고 해를 끼치려고 하지도 않지만 우리 같은 존재를, 우리가 어떻게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고 우리의 손이 자기들의 손에 스칠까 봐 겁에 질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 어딘가에 있는, 물살이 정말이지 빠른 강이 줄곧 떠올라. 그 물속에서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서로 부둥켜안지만 결국은 어쩔 수가 없어. 물살이 너무 강하거든. 그들은 서로 잡았던 손을 놓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거야. 우리가 바로 그런 것 같아. 부끄러운 일이야. 캐시. 우린 평생 서로 사랑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영원히 함께 있을 순 없어.
- 나는 반쯤 눈을 감고 상상했다.어린 시절 이후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고. 이 앞에 이렇게 서서 가만히 기다리면 들판을 지나 저 멀리 지평선에서 하나의 얼굴이 조그맣게 떠올라 점점 커져서 이윽고 토미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리라고. 이윽고 토미가 손을 흔들고, 어쩌면 나를 소리쳐 부를지도 모른다고. 이 환상은 그 이상으로 진전시킬 수 가 없었다.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김남주 옮김,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