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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May 04. 2020

진심의 함정

누가 그런다. 경청은 기술이 아니라 진심이 필요하다고. 반은 맞고, 반은 글쎄다. 친구나 가족 간에 경청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에서는 진심에만 기대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심리는 복잡 다단하여 그 진심을 믿을 수가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러게 평소에 잘하지.”와 같은 마음이 올라온다. 그건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다. 아이가 너무 아파하는 걸 보고 어떤 부모는 내가 아픈 게 났겠다고 하지만, 나는 그래도 내가 아픈 것보다 내가 돌보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삶이 복잡하고,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그 진심에 기대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그리고 리더는 참고 듣기 힘든 얘기도 들어야 하고, 미운 후배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진심이 생긴다는 것이 더 문제다. 그리고 진심은 강요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럼 이런 진심이 없는 상황에서는 듣지 말아야 하나? 그것이 진심의 함정이다. 진심에만 기대어 사는 것은 때론 유아적이다. 진심이 없어도 친절할 줄 알아야 하고, 진심이 없어도 상대의 이야기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언어이다. 기술이다. 경청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경청만으로 각종 정신병을 치료할 정도로 고도의 기술이고, 오랜 시간 수련의 대상이다. 중요하다는 것만 강조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정도의 간단한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석사 박사 과정을 들으며 계속 고도의 기술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입문을 할 수 있는, 그래서 그 좋은 점을 체감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근력 운동의 스쾃 같은 것이다. 스쾃이 근력운동의 전부는 아니지만, 필수적이고, 조금 어렵긴 하지만 얼추 흉내는 낼 수 있다. 초심자에게 이 이상의 현란하고 복잡한 것을 가르치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나를 전문가로 속여야 할 때, 혹은 전문성이 무시당할까 봐 그런다. 진짜 전문가들은 수준에 맞춰 제시할 수 있다.


모 기업에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 회의를 다녀왔다. 360도 진단도 매년 하는데, 매년 같은 그래프를 보이고, 액션 플랜도 쓰는데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한다. 나는 기술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사람들이 리더들에게 ‘비전을 수립하고 전파하라’, ‘구성원과 소통을 강화하라’고 하면 그들이 진짜 그걸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담당자나 심지어는 강사, 코치도 "나는 몰라도 당신은 할 줄 아셔야 합니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리더들도 하겠다고 하고, 액션 플랜에 적는다. 하지만, 안된다. 사실 그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니 안에 답 없다)


보고 배운 적이 없다. 성찰을 통해서 방법을 밝혀내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 성찰로 그것을 밝혀낼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의 비율도 그다지 높지 않다. 대신 집단 지성을 빌려오면된다. 


대부분은 소통은 소셜 스킬과 관련이 된다.
같은 상황에 닥쳐도 어떤 사람은 잘 넘어가고, 어떤 사람은 삶이 넘어지기도 한다.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말콤 글래드웰은 두 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하나는 세기의 천재라고 하던 사람이고, 하나는 거대 IT 기업의 창업자이다. 천재라는 소문이 나자 한 대학에서 4년 장학금을 주며 모셔갔다. 그러나, 그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무슨 서류를 내야 하는데 하루 늦어서 그랬단다. 창업자는 대학을 다니다가 교수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지만, 결국 졸업을 하였다. 둘 다 대학을 졸업 못할 행정적 심지어 범법적 위기가 왔지만, 누구는 그 위기를 넘겼고, 누구는 넘기지 못했다. 이것을 소셜 스킬이라고 했다. 아무리 세기의 천재라고 하더라도 이 소셜 스킬이 없으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가 없다. 그는 농부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이 소셜 스킬은 가정에서 보통 길러진다고 한다. 부모가 사람들과 어떻게 상황을 풀어가는지가 교과서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가정에서 제대로 못 배운 경우가 많다. 체벌이 난무하던 시대를 살아온 리더들이 인권을 중시하는 환경에서 자란 후배들을 만족시킬 만한 소셜 스킬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지금이라도 눈높이에 맞춰서 가르쳐야 한다.


사실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배워야 할 사람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가르쳐야 할 사람도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심지어는 그 방법론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건 모국어처럼 익숙하지만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외국어처럼 배워야 하는 것이다.


검증된 지식과 숙련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프로페셔널이다. 그리고 기술이 좋아지면, 신념과 진심이 생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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