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N 년 차, 남편 말고 다 팝니다.
자취 생활까지 포함하면 살림살이 10여 년 차. 나는 정리정돈도 잘하고, 비움도 '잘' 한다.
마음이 심란하고 고민 걱정거리가 많아질 때, 내 마음이 불안할 때 나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정리한다. 버려야 할 것과 사용할 물건을 분류하고 더 이상 필요치 않아 진 물건들은 주변에 나눔 하거나, 기증하거나, 혹은 당근마켓에 판매한다. 정리정돈과 비움은 내 스트레스 해소 방법 중 하나가 되었다.
본격적인 내 비움의 역사는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시작됐다. 엄마는 나와 같은 워킹맘이었는데, 그녀에게는 다정한 남편도, 마음 한 곳 기댈 쉼터도 없었다.
모든 생활고와 육아의 스트레스와 헛헛한 마음을 그녀는 물건을 사서 채우는 일로 풀었다. 일주일에 두 번 나는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춰 수레를 끌고 홈플러스 앞에서 엄마를 만났다. 커다란 카트를 꽉 채울 만큼 엄마는 먹을거리를, 살림살이를 샀다.
카트 한가득 담긴 물건들은 수레에 실려 우리 집 냉장고에, 선반에 켜켜이 쌓였다. 아빠 사업이 망하고 방 두 칸 허름한 빌라로 이사를 가던 날, 이삿짐센터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 작은 집에 10톤 트럭이 모자란 살림이 가당키냐 하냐고 뒤에서 혀를 끌끌 찼다.
짐을 넣기 위해서는 쓰지 않는 물건들을 비워야 했는데, 오래되어 아무도 가지고 놀지 않는 바둑판을 버리자고 했다가 나는 엄마에게 혼이 났다. 언젠가 쓸 일이 있으니 물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엄마는 크게 화를 냈다.
이삿짐센터가 돌아가고 엄마는 몇 날 며칠 밤을 새워서 그 물건들을 천장까지, 여기저기에 쌓아두었다. 훗날 나는 그것이 저장강박이라는 병이라는 걸 어느 한 유튜브 다큐멘터리를 보고 알게 되었다. 암으로 엄마가 돌아가시던 그날도 다른 환자들과 달리 엄마의 병실에는 물건이 참 많았다.
엄마를 보내드리고 몇 년 만에 본가를 다시 들른 날, 엄마가 천장까지 쌓아놓은 갖가지 물건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짐이 되었다. 다 입지도 못할 다음 계절의 옷과 신발이 한가득, 쓰지도 못할 그릇과 사용기간이 지나버린 용품들을 보면서 우리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마음이 외로우셨다는 걸 깨달았다.
돌아가시기 직전, 물건을 너무 많이 쌓아두어서 죄스럽다는 말과 함께 엄마는 그 물건들을 모두 기부해 달라고 하셨다. 그 작은 집에 큰 종이 택배상자가 30개도 넘게 실려 나왔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물건은 사람의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딸은 결국 엄마 팔자를 따라간다더라는 혹자의 말은 내게 비수로 꽂혔다. 그래서 엄마처럼 살지 말자, 엄마처럼 되지 말자가 모토가 되었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가진 물건을 둘러보게 됐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옷이고 장신구도 그 누구도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결국은 빈 손으로 태어나 빈 손으로 간다.
다정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불안한 남편과 투룸 빌라에서 살림을 시작하면서 나는 작은 집에는 물건을 많이 채울 수 없다는 걸 몸소 체감했다.
불필요한 욕심은 부리지 않으면서 내 분수에 맞는 소비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함을 느낄 때는 음식을 불필요하게 쟁여두는 습관이 있었지만 노력에 노력을 더해 많이 내려놨다. 투룸 빌라에서 운 좋게 청약에 당첨돼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온 지금도 나는 당근 매니아다. 99도는 아니지만 70도는 달성했다.
이제는 언제 당근이 잘 되는 시기인지도 안다. 바로 지금 같은 설날, 추석 같은 명절과 샌드위치 연휴가 있는 주간이다. 사람들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가 생기니 물건을 처분하기도 하고, 필요했던 물건을 많이 사기도 한다. 날이 따듯하고 포근한 시즌에는 더 잘 팔리고, 반대로 너무 추운 시즌에는 당근이 잘 안 팔린다.
당연한 이치다. 물건을 빨리 팔고 싶을 때는 내가 팔고자 하는 비슷한 컨디션, 비슷한 가격대의 상품의 판매가를 확인 후 1,2천 원 정도 저렴하게 판매한다.
제품을 올릴 때 구매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최대한 밝은 조명 아래에서, 깔끔한 배경으로 제품사진을 찍는 건 필수다. 원경과 근경, 상세컷까지 자세하게 찍고 제품을 올릴 때는 사람들이 구매할 제품을 찾을 때 많이 검색할 것 같은 키워드를 나열해서 제목을 조합한다. 비슷한 사이즈나 용도가 비슷한 제품을 묶어 상대적으로 더 낮게 가격을 책정하면, 우리 집에서 물건이 차지하는 불필요한 공간도 빨리 비워내면서 속 시원하게 당근 거래를 이뤄낼 수 있다.
최근에는 아이가 발도 커지고 키도 쑥쑥 자라서 옷과 신발을 엄청 많이 처분했는데, 아이 취향이 확고하다 보니 이 근방의 공주스타일을 좋아하는 아이 부모님들과 엄청나게 많은 거래를 했다. 잠깐 택배 보내러, 혹은 당근거래 하러 나갔다 오겠다고 하면 남편이 종종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당근으로 얼마얼마를 벌었다고 하면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혹시 나는 파는 거 아니지?" 하고 물어볼 때도 있다.
당근으로 짭짤하게 번 돈은 우리 아이의 새 장난감, 혹은 새 옷 장만의 구실이 되기도 하고, 남편 가게를 홍보하는 광고비가 되기도 하고, 주말 나들이 외식비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물건을 비워낼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의 불안을 덜어낸다.
물건이 비워져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 훗날 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그 어느 날의 느낌이었으면 한다. 아이와 남편에게 내가 남긴 물건이 너무 무겁지 않기를, 그 물건에서 느껴진 내 삶의 무게가 그들에게 버겁게 느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물건을 판다. 내 남편은 팔 수도 없고, 팔고 싶지 않으니 영영 데리고 살 생각이다. 밖에 나가 일하는 걸 좋아하는 나와 달리, 집에서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책 읽는 걸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그가 숨 쉴 방 한 칸은 비워두어야 하니까. 그게 내 남편의 자리니까. 그래서 남편은 안 판다. 나는 이걸 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