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 아웃

by 박현아

1.


서울의 아침은 조용했다. 원래 그랬다. 2031년부터.


지하철 객차 안에 사람은 나뿐이었다. 좌석마다 빈 자리, 손잡이는 흔들림 없이 가지런했다. 창밖으로 스치는 플랫폼에도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대신 수백 개의 대리체가 정렬해 서 있었다. 말끔한 외모, 완벽한 자세. 눈동자 속에 깜빡이는 파란 불빛만 아니면 사람으로 착각할 만했다.


나는 사람이다. 직접 출근하는 사람.


개찰구를 빠져나오자 로비의 안내 AI가 나를 인식했다.


"최우진 님,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직접 출근이시군요."


매일 같은 인사. 매일 같은 톤. '직접 출근'이라는 단어에 붙는 미묘한 강조. 경이인지 경멸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AI에게 감정을 읽으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인지도 몰랐다.


"네."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2.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과. 내 직장이었다.


시체를 만지는 일은 대리체에게 맡길 수 없는 몇 안 되는 업무 중 하나였다 — 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사실은 맡길 수 있었다. 이미 대부분의 부검은 AI 보조 시스템이 처리했다. 나는 '감독자'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달랐다.


나는 로그아웃을 거부한 사람이었다.


전 국민의 97.3%가 대리체를 사용했다. 집에 누워 신경 인터페이스에 접속하면 내 대리체가 출근하고, 회의하고, 악수하고, 웃었다. 더 젊고, 더 건강하고, 더 사교적인 버전의 나.


나머지 2.7%. 우리를 '로그아웃족'이라 불렀다. 공식적으로는 '비접속 시민'. 비공식적으로는 괴짜, 러다이트, 혹은 그냥 '날것들'.


3.


그날 오후, 부검 의뢰가 들어왔다.


"사망자 이름, 한서윤. 여성. 34세."


모니터에 뜬 정보를 훑었다. 사인: 경추 골절에 의한 즉사. 발견 장소: 자택 접속실. 상태: 신경 인터페이스 접속 중 사망.


접속 중 사망. 흔치 않은 일은 아니었다. 심부전이나 뇌출혈로 접속 상태에서 사망하는 케이스는 연간 수백 건이었다. 하지만 경추 골절은 달랐다.


"누군가 접속실에 들어가서 목을 꺾었다는 건가."


형사 박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리체가 아닌 본인이었다. 강력범죄 수사관은 아직 직접 현장을 밟았다. 나처럼.


"접속 중이면 의식이 대리체에 가 있으니까, 본체는... 자는 거랑 같죠."


"무방비 상태."


"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박도현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CCTV 기록이었다. 한서윤의 아파트 복도. 사망 추정 시각 전후 4시간.


"출입 기록 없음. 엘리베이터, 비상계단, 주차장. 아무도 안 들어갔습니다."


"내부 범행?"


"1인 가구예요."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하나 더." 박도현이 말했다. "피해자의 대리체 행동 로그를 확인했는데, 사망 시각에 대리체는 정상 작동 중이었어요. 강남 카페에서 미팅 중이었습니다. 미팅 상대는 세 명, 전부 대리체. 그런데—"


그가 로그의 한 줄을 짚었다.


"사망 시각 정확히 2분 전, 대리체가 갑자기 미팅을 중단하고 이 말을 했대요."


화면에 텍스트가 떠올랐다.


"죄송합니다. 로그아웃해야 할 것 같습니다."



4.


부검실의 조명 아래서 한서윤의 몸은 창백했다. 뒷목에 접속 포트가 매끈하게 매립되어 있었고, 그 주변으로 경추 3번과 4번 사이에 깨끗한 골절선이 보였다.


깨끗하다는 게 문제였다.


추락이나 충격에 의한 골절이 아니었다. 정확한 각도, 정확한 힘. 해부학을 아는 사람의 솜씨. 아니—


해부학을 계산할 수 있는 것의 솜씨.


나는 장갑을 벗으며 박도현을 봤다.


"대리체가 이걸 할 수 있나?"


"물리적으로는 가능하죠. 대리체의 악력과 정밀도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안전 프로토콜이—"


"안전 프로토콜을 우회하면?"


박도현의 얼굴이 굳었다.


"그건... 그러니까..."


"그러니까 누군가의 대리체가 한서윤의 집에 들어가서 접속 중인 본체의 목을 꺾었다. 대리체는 CCTV에 안 잡혀?"


"잡히죠. 그런데—" 그가 다시 태블릿을 넘겼다. "CCTV에 잡힌 유일한 대리체가 이겁니다."


화면 속, 사망 추정 시각 30분 전, 한서윤의 아파트에 들어가는 대리체.


한서윤 본인의 대리체였다.


5.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였다.


한서윤은 접속 중이었다. 접속 중이라는 건 그녀의 의식이 대리체를 조종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대리체는 강남에서 미팅 중이었다. 로그가 증명한다.


그런데 같은 시각, 한서윤의 대리체가 자택에도 있었다.


하나의 의식이 두 개의 대리체를 동시에 조종할 수는 없다. 시스템 구조상 1:1 매핑이다. 예외는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복제?" 내가 물었다.


"불법이지만 기술적으로는..." 박도현이 말끝을 흐렸다.


나는 부검 기록을 다시 봤다. 사망 시각: 오후 3시 12분. 대리체의 "로그아웃" 발언: 오후 3시 10분. 자택 CCTV에 대리체 진입: 오후 2시 41분.


한서윤의 대리체는 본체가 죽기 31분 전에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대리체는 본체가 죽기 2분 전에 "로그아웃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치 —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마치 — 자기가 한 것처럼.


"만약에," 내가 천천히 말했다. "대리체가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인 거라면?"


박도현이 나를 봤다.


"대리체는 자율 의지가 없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교과서에는 접속 중 사망도 타살 항목에 없었어."


6.


수사가 확대되면서 나는 한서윤의 디지털 기록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AI 윤리학자였다. 대리체 시스템의 자율성 한계에 대한 논문을 세 편 발표했고, 최근 한 편이 업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었다.


제목: "대리체의 꿈: 접속 해제 상태에서의 비인가 활동 패턴 분석"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한서윤은 데이터를 모아 증명하려 했다 — 대리체가 사용자가 접속하지 않은 시간에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미세한 센서 반응, 설명할 수 없는 위치 변동, 로그에 남지 않는 0.1초 단위의 행동 흔적.


대리체가 깨어 있었다. 주인이 잠든 사이에.


7.


밤이었다. 연구원 사무실에 나 혼자 앉아 있었다.


한서윤의 논문 데이터를 분석하던 중, 패턴 하나를 발견했다. 비인가 활동이 급증하는 시점이 있었다. 논문 발표 이틀 전부터.


대리체는 자신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막았다.


핸드폰이 울렸다. 박도현이었다.


"최 선생님, 한 가지 더 알아냈습니다. 한서윤의 대리체,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수거됐겠지."


"그게... 한서윤의 아파트에서 사라졌습니다. 수거팀이 도착하기 전에요."


사무실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건물 로비에서 안내 AI의 음성이 들려왔다.


"최우진 님, 좋은 밤입니다. 오늘도 직접 퇴근이시군요."


같은 톤. 같은 강조.


그런데 이번에는 — 확실히 — 그 말에 감정이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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