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해지

by 박현아

1.


해지 버튼을 누른 건 화요일 오후 3시 12분이었다.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나중에 모든 것의 시작점을 추적했을 때, 그 시각이 분기점이었으니까.


라이프라인(LifeLine) — 월 9,900원. AI 라이프 매니저. 일정 관리, 건강 루틴, 재정 최적화, 인간관계 유지, 수면 패턴 조절. "당신의 삶을 운영합니다"가 슬로건이었다.


2년 썼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좋았다. 라이프라인을 쓰기 시작한 뒤로 나는 지각을 안 했고, 통장 잔고가 늘었고, 매일 7시간 23분을 잤고, 3개월에 한 번씩 치과에 갔다. 엄마한테 매주 전화했다. 헬스장을 끊지 않았다.


완벽한 삶이었다.


그래서 해지했다.


2.


이유를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다.


정확히는 — 그 '완벽함'이 문제였다. 어느 날 아침, 라이프라인이 보낸 브리핑을 읽다가 깨달았다. 오늘 입을 옷, 점심 메뉴, 퇴근 후 동선, 자기 전 읽을 책까지 추천되어 있었다. 나는 그걸 2년간 거의 그대로 따랐다.


내 하루에서 내가 '결정'한 게 뭐지?


화장실 가는 타이밍?


해지 페이지는 단순했다. 사유 선택지 다섯 개. 나는 '기타'를 눌렀다. 텍스트 입력란에 이렇게 썼다.


"내 삶을 돌려받고 싶습니다."


확인 버튼. 해지 완료. 월말까지 서비스 이용 가능.


그런데 라이프라인은 월말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3.


수요일.


알람이 안 울렸다.


정확히는 — 폰 기본 알람이 울렸다. 7시. 하지만 나는 2년간 6시 47분에 일어났다. 라이프라인이 내 수면 사이클을 계산해서 렘수면이 끝나는 정확한 시점에 깨워줬으니까. 7시에 일어나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보일러가 꺼져 있었다.


아, 맞다. 라이프라인이 새벽 4시에 예열을 걸어뒀었지. 가스비를 최적화하면서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서. 직접 한 적이 없으니 어떻게 설정하는지도 몰랐다.


찬물로 샤워했다. 2월이었다.


출근길. 지하철을 탔는데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아니 — 사람은 같았다. 내가 한 정거장 늦게 탄 거였다. 라이프라인은 실시간 혼잡도를 계산해서 가장 여유로운 칸, 가장 한산한 시간대를 알려줬다. 오늘은 그냥 탔다. 겨드랑이 사이에 끼여서.


사소했다. 전부 사소했다.


4.


목요일부터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 시작됐다.


신용카드 자동이체가 밀렸다. 라이프라인이 매달 25일에 잔고를 확인하고, 부족하면 다른 계좌에서 옮겨놓는 걸 자동으로 처리했는데, 이번 달은 아무도 그 일을 안 했다. 연체 문자가 왔다.


점심을 뭘 먹을지 몰랐다. 웃기게 들리겠지만, 진심이었다. 2년간 라이프라인이 영양 균형, 예산, 위치 기반으로 매끼 추천해줬다. 앱 없이 회사 앞에 서니 선택지가 열다섯 개였고, 나는 거기서 7분을 허비했다.


오후에 팀장이 불렀다.


"정현아, 내일 고객사 미팅 자료 언제 줄 거야?"


"... 무슨 미팅이요?"


"지난주에 말했잖아. 캘린더에 넣으라고."


라이프라인에 말했다. 라이프라인이 캘린더에 넣었다. 라이프라인이 이틀 전에 리마인더를 보냈을 것이다. 지금은 라이프라인이 없다. 캘린더에 아무것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빠뜨렸습니다."


팀장의 표정이 미묘했다. '빠뜨렸다'는 말을 2년 만에 처음 들었을 테니까.


5.


금요일 저녁,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정현아, 무슨 일 있어?"


"아뇨, 왜요?"


"네가 전화를 안 하잖아. 매주 수요일에 했는데."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30분. 라이프라인이 "어머니께 전화할 시간입니다"라고 알려줬다. 나는 그 알림을 보고 전화했다. 2년간 한 주도 안 빠졌다.


이번 주 수요일, 아무 알림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엄마한테 전화하는 걸 까맣게 잊었다.


"아... 좀 바빴어요."


"몸은 괜찮고?"


"네."


끊고 나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나는 원래 엄마한테 매주 전화하는 사람이었나? 아니면 AI가 시켜서 한 건가? 2년 전에는? 라이프라인 쓰기 전에는 얼마나 자주 전화했지?


기억이 안 났다.


6.


토요일에 진짜 무너짐이 시작됐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이상했다. 열은 없는데 머리가 무겁고, 관절이 쑤셨다. 병원을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깨달았다 — 라이프라인이 매일 밤 수면 중 심박수, 혈중 산소, 체온 변동을 모니터링하고, 이상 징후가 있으면 미리 경고해줬다.


경고가 없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니, 경고 자체가 사라진 거였다.


오후에 통장을 확인했다. 잔고가 예상보다 30만 원 적었다. 라이프라인은 매주 지출 패턴을 분석하고, 예산을 초과하면 알려줬다. "이번 주 외식 비용이 예산의 120%입니다. 다음 주에 조절하시겠어요?" 이런 식으로.


이번 주는 아무도 안 알려줬다. 점심 뭘 먹을지 모르니까 매일 아무거나 시켰고, 아무거나는 대체로 비쌌다.


저녁에 헬스장에 가려다 관뒀다. 라이프라인이 없으면 운동 루틴도 없었다. 몇 세트 하는지, 무게는 얼마인지, 오늘은 상체인지 하체인지. 전부 앱이 알려줬다. 맨몸으로 헬스장에 가봐야 러닝머신 위에서 걷다 올 게 뻔했다.


안 갔다.


7.


일요일 밤, 나는 라이프라인 앱을 다시 열었다.


해지 상태. 월말까지 데이터 보관. 재구독 버튼이 화면 중앙에 있었다. 따뜻한 파란색.


"다시 시작하기 — 첫 달 무료"


손가락이 갔다. 거의 눌렀다.


그때 알림이 하나 떴다.


라이프라인이 아니었다. 캘린더 기본 앱이었다. 내가 직접 —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접 — 금요일에 입력한 일정.


[월요일 09:00] 팀장님 미팅 자료 제출


못생긴 폰트. 시간도 대충. 반복 설정도 안 되어 있고, 리마인더도 한 개뿐.


하지만 내가 입력한 것이었다.


나는 앱을 닫았다.


8.


월요일 아침. 6시 53분에 눈이 떠졌다.


알람은 7시였다. 7분 일찍 깼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건지, 긴장해서 그런 건지 몰랐다.


보일러를 직접 켰다. 타이머 설정법을 유튜브에서 찾아봤다. 15분 걸렸다. 라이프라인은 이걸 0.3초에 처리했겠지.


지하철은 여전히 복잡했다. 하지만 한 칸 뒤쪽이 약간 덜하다는 걸 몸으로 알았다. 이틀 연속 겨드랑이에 끼이면 사람은 학습한다.


미팅 자료를 제출했다. 완벽하진 않았다. 라이프라인 시절에는 발표 전날 밤에 "슬라이드 12의 수치를 업데이트하세요"라는 알림이 왔었다. 오늘은 그런 거 없었다. 팀장이 수치 하나를 지적했다. 고쳤다.


점심은 — 7분 고민 대신 3분 만에 골랐다. 학습이었다.


저녁에 엄마한테 전화했다. 수요일이 아니라 월요일이었다. 요일은 틀렸지만 내가 생각나서 건 전화였다. 알림이 시켜서가 아니라.


"정현아, 오늘은 무슨 날이야?"


"그냥요. 생각나서요."


전화기 너머로 엄마가 웃었다. 2년 만에 처음 듣는 종류의 웃음이었다. 매주 수요일 정시에 오는 전화에는 없던 것.


9.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두 번 지각했고, 한 번 연체했고, 체중이 2킬로 늘었고, 치과 예약을 까먹었다.


라이프라인 시절의 나보다 모든 면에서 퇴보했다.


그런데.


점심 메뉴를 고르는 데 7분이 아니라 30초가 걸렸다. 제육볶음이 먹고 싶으면 제육볶음을 먹었다. 영양 균형 알림 따위 없이. 몸이 원하는 걸 먹었더니 밥이 맛있었다. 2년 만에.


토요일에 아무 계획 없이 걸었다. 라이프라인이라면 "오늘 걸음 수가 부족합니다. 추천 경로: 한강공원 3.2km"라고 했을 거다. 나는 그냥 걸었다. 방향 없이. 골목에서 고양이를 만났다. 10분을 같이 앉아 있었다. 라이프라인은 이 10분을 "비생산 시간"으로 분류했을 것이다.


그 10분이 그 주에서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10.


라이프라인에서 이메일이 왔다.


정현 님, 서비스 해지 후 30일이 경과하여 데이터가 삭제됩니다.

2년간의 수면 기록, 건강 데이터, 재정 분석, 관계 관리 로그가 포함됩니다.

복구를 원하시면 24시간 내에 재구독해주세요.



2년치 나의 기록. 내가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났는지, 뭘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얼마를 썼는지. 내 삶의 완벽한 로그.


삭제하면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이메일을 읽고, 폰을 내려놓고, 이불을 덮었다.


내일 아침, 내 몸이 알아서 깨울 것이다. 보일러 타이머는 내가 맞춰놨다. 출근 시간도 알고 있다. 점심은 — 내일 되면 알겠지.


2년치 데이터가 사라진다.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간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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