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웃는 데 50원이 들기 시작한 건 2029년부터였다.
정확히는, 감정이 과금된 게 아니라 감정의 표현이 과금됐다. 느끼는 건 자유였다. 얼굴로 드러내는 순간 요금이 찍혔다.
모든 시민의 안면에 부착된 이모션 태그(E-Tag). 피부색과 동일한 0.3밀리미터 패치. 미세 근육의 수축을 실시간으로 읽어서, 감정 표현이 감지되면 자동 과금. 웃음 50원. 눈물 200원. 분노 500원. 놀람 100원. 혐오 300원.
무료 감정은 하나뿐이었다.
무표정.
공식 명칭은 감정표현세(EET, Emotional Expression Tax). 도입 당시 정부의 설명은 이랬다 — "감정 표현은 사회적 자원을 소비합니다. 분노는 갈등 비용을, 슬픔은 생산성 저하를, 과도한 기쁨은 소비 과열을 유발합니다. 감정의 외부 비용을 내재화하여 건강한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7년이 지난 지금, 거리의 사람들은 전부 같은 얼굴이었다.
무표정.
2.
나는 감정수사관이다.
감정을 수사하는 게 아니라, 감정이 개입된 범죄를 수사한다. 감정표현세 도입 이후 생긴 직종. 정식 명칭은 정서범죄수사국(Bureau of Affective Crimes) 소속 수사관.
분노가 500원인 세상에서, 살인은 감정의 파산을 의미한다.
누군가를 죽일 만큼 화가 나려면 — 그 분노를 얼굴에 드러내는 순간 과금이 시작되고, 살인에 이르는 격앙까지 가면 수만 원이 찍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전에 무표정으로 돌아간다. 과금 알림이 냉각제 역할을 하니까.
그래서 이 시대의 살인은 두 종류뿐이다.
하나, 무표정 살인. 아무 감정 없이, 혹은 감정을 완벽히 억누른 채 죽이는 것. E-Tag에 과금 기록이 없다. 계획적이고, 차갑고, 잡기 어렵다.
둘, 파산 살인. 감정이 폭발해서, 과금 따위 신경 못 쓰고 죽이는 것. E-Tag에 감정 로그가 폭포처럼 찍혀 있다. 분노 500원 × 수백 회. 잔고가 바닥나고, 신용이 깨지고, 그래도 멈추지 못한다.
오늘 아침 들어온 사건은 둘 다 아니었다.
3.
피해자: 윤서하. 31세. 이모션 코치.
이모션 코치. 감정표현세 시대에 생긴 또 다른 직종. 고객에게 감정 표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법을 가르친다. 어떤 상황에서 웃어야 가성비가 좋은지, 분노 대신 무표정으로 대체하는 테크닉, 월간 감정 예산을 짜는 법.
윤서하는 업계 1위였다. SNS 팔로워 340만. 캐치프레이즈는 "월 감정 예산 3만 원 이내로 풍요로운 삶을."
사인: 익사. 자택 욕조에서 발견. 외상 없음.
문제는 E-Tag 로그였다.
사망 추정 시각 전후 2시간 동안, 윤서하의 E-Tag에 기록된 감정 표현:
행복 — 총 847회. 과금 합계 42,350원.
847번 웃었다.
2시간 동안.
죽을 때까지.
4.
현장은 서울 성수동의 고급 오피스텔이었다. 욕조 옆에 와인 잔이 놓여 있었고, 음악이 재생 중이었다. 발라드.
시체의 얼굴은 —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경직되어 있었다. 부검의가 말했다.
"사후 경직으로 표정이 고정된 거예요. 사망 직전까지 웃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2시간 동안 847번?"
"E-Tag는 미세 근육 변화를 읽으니까, 미소가 풀렸다 다시 올라간 걸 별개로 카운트한 겁니다. 실질적으로는 — 2시간 동안 거의 계속 웃고 있었던 거죠."
익사와 웃음은 양립할 수 없었다. 물에 빠지면서 웃는 사람은 없다.
"약물 반응은?"
"혈액 검사 결과 대기 중이지만, 현장에서 약물 흔적은 없었어요."
나는 E-Tag 상세 로그를 열었다. 타임라인.
19:02 — 행복 (50원)
19:02 — 행복 (50원)
19:03 — 행복 (50원)
19:03 — 행복 (50원)
19:03 — 행복 (50원)
...
분당 7~8회. 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만.
분노도, 공포도, 놀람도 없었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는 상황에서 — 혹은 스스로 물에 잠기는 상황에서 — 오직 행복만.
그리고 마지막 로그.
20:51 — 행복 (50원)
20:51 — [E-Tag 비활성 — 생체 신호 소실]
마지막 순간까지 웃었다.
5.
"이모션 코치가 감정 과금으로 4만 원 넘게 쓰면서 죽었다?"
동료 수사관 강민호가 고개를 저었다. "월 3만 원 이내로 살라고 가르치던 사람이?"
"그것도 전부 행복으로."
"자살이면 이해가 안 되고, 타살이면 더 이해가 안 되네. 누가 사람을 웃기면서 죽여?"
나는 윤서하의 고객 목록을 뒤졌다. 이모션 코치의 고객은 보통 두 부류다. 감정 예산을 아끼고 싶은 일반인, 그리고 — 감정을 아예 느끼지 못하게 된 사람들.
감정표현세의 숨겨진 부작용이 있었다. 감정 무감각증(Emotional Flattening). 과금을 피하려고 감정을 억누르다 보면, 어느 순간 진짜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웃고 싶은데 얼굴이 안 움직인다. 슬픈데 눈물이 안 난다.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이 사람들에게 이모션 코치는 역으로 '감정을 되찾는 법'을 가르쳤다. 더 비싼 프리미엄 서비스였다.
윤서하의 프리미엄 고객 명단. 47명. 그중 한 명의 메모가 눈에 걸렸다.
고객 #23 — 한재민. 42세. 무감각증 4단계. 2년간 E-Tag 과금 기록 0원. 감정 표현 완전 소실. 목표: 다시 웃기.
과금 기록 0원. 2년간 단 한 번도 표정을 짓지 않은 사람.
6.
한재민을 만난 건 그의 사무실에서였다.
첫인상 — 무표정. 당연하다. 이 시대 사람들은 다 무표정이다. 하지만 한재민의 무표정은 질감이 달랐다. 다른 사람들의 무표정은 '참고 있는' 얼굴이다. 눈 밑이나 입꼬리에 미세한 긴장이 있다. 감정이 안쪽에서 누르고 있다는 흔적.
한재민의 얼굴에는 그것조차 없었다.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마네킹처럼.
"윤서하 코치와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입니까?"
"지난주 목요일. 정기 세션이었습니다."
목소리도 무표정이었다. 억양이 없었다.
"세션 내용은?"
"감정 회복 훈련입니다. 웃는 연습을 했습니다."
"진전이 있었나요?"
"아뇨. 2년째 없습니다."
나는 그의 E-Tag 기록을 조회했다. 진짜 0원이었다. 730일간 감정 표현 제로. 숫자로 보니 더 기이했다. 인간의 얼굴 근육은 하루에도 수십 번 무의식적으로 움직인다. 그것조차 없다는 건 —
"한재민 씨, 솔직히 여쭤볼게요. 윤서하 코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습니까?"
"기분이요."
3초간 침묵이 흘렀다.
"모르겠습니다. 뭘 느껴야 하는지는 알겠는데. 슬퍼야 한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 "
그가 자기 얼굴을 손으로 만졌다. 볼을, 입꼬리를. 확인하듯이.
"아무것도 안 움직여요."
7.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상한 사실이 드러났다.
윤서하의 프리미엄 고객 47명 중, 최근 6개월간 3명이 비슷하게 사망했다.
• 고객 #8 — 박소영. 38세. 사인: 심정지. 사망 전 E-Tag 로그: 슬픔 312회. 과금 62,400원.
• 고객 #31 — 이동건. 55세. 사인: 뇌출혈. 사망 전 E-Tag 로그: 분노 198회. 과금 99,000원.
• 고객 #44 — 최은비. 27세. 사인: 과호흡에 의한 질식. 사망 전 E-Tag 로그: 공포 421회. 과금 42,100원.
전부 무감각증 환자였다. 전부 감정 표현이 0이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전부 — 사망 직전에 하나의 감정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박소영은 울다 죽었다. 이동건은 분노하다 죽었다. 최은비는 두려워하다 죽었다. 윤서하는 웃다 죽었다.
2년간 얼지 않은 감정이 한꺼번에 녹아내린 것처럼.
"윤서하는 코치잖아. 자기 고객들이 이렇게 죽었는데 몰랐을 리가 없는데?"
강민호가 말했다.
나는 윤서하의 개인 메모를 열었다. 암호화되어 있었지만, 수사 영장으로 풀렸다.
마지막 메모. 사망 당일 작성.
드디어 찾았다. 감정 무감각증의 원인은 E-Tag가 아니다. E-Tag는 감정을 '읽는' 장치일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E-Tag에 역방향 기능을 심었다. 읽는 게 아니라 — 억제하는 기능을. 감정 표현을 감지하면 미세 전류로 안면 근육을 마비시키는 코드. 무감각증은 부작용이 아니다. 설계다.
그리고 억제를 해제하면 — 댐이 무너지듯 감정이 한꺼번에 터진다. 제어 불능. 그게 그들이 죽은 이유다.
나는 오늘 밤 내 E-Tag의 억제 코드를 해제할 거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 내 몸으로.
해제 코드 위치: [암호화됨]
8.
윤서하는 자살한 게 아니었다. 증명한 거다.
자기 몸을 실험 대상으로 써서, E-Tag의 숨겨진 기능을 증명한 거다. 2시간 동안 847번 웃으면서 — "이것이 억눌린 감정이 한꺼번에 풀린 결과"라는 걸 E-Tag 로그에 새긴 거다.
나는 윤서하의 메모에서 지목한 곳을 추적했다. E-Tag의 펌웨어를 개발한 회사. 뉴로세이프(NeuroSafe) — 정부 산하 감정표현세 기술 운영 기관.
뉴로세이프의 내부 문서가 유출됐다. 윤서하가 죽기 전에 미리 준비해둔 것이었다. 자동 발송 이메일. 수신자: 주요 언론사 23곳.
문서의 내용:
E-Tag v2.0 업데이트 이후 추가된 비공개 모듈 'CALM'. 감정 표현 감지 시 안면 근육에 역 자극을 전달하여 표현을 물리적으로 억제. 목적: 과금 이전에 감정을 차단하여 시민 불만 감소 및 세수 안정화.
감정표현세는 감정에 세금을 매긴 게 아니었다.
감정 자체를 꺼버린 거였다.
정부는 세금을 걷는 척하면서, 사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과금이 냉각제가 아니었다. E-Tag가 냉각제였다.
9.
사건이 터진 후, 거리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E-Tag를 떼기 시작했다. 불법이었다. 감정표현세법 제12조, E-Tag 무단 제거 시 벌금 500만 원.
하지만 떼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경찰이 감당할 수 없는 숫자로.
나도 떼고 싶었다. 하지만 수사관이었다. 아직은 안 됐다.
대신 나는 한재민을 다시 찾아갔다. 마지막으로 물어볼 게 있었다.
"한재민 씨."
"네."
"E-Tag를 떼실 건가요?"
그가 오래 침묵했다. 마네킹 같은 얼굴 그대로.
그리고 — 아주 천천히 — 입꼬리가 올라갔다.
E-Tag가 붙어 있었다. 과금 알림이 떴을 것이다. 50원.
한재민은 그 알림을 무시했다. 아니 — 알림이 뜨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뗄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가 말했다. 여전히 웃으면서.
"그냥 내겠습니다. 50원."
나는 핸드폰을 꺼내 E-Tag 과금 앱을 열었다. 내 잔액을 확인했다. 이번 달 감정 예산, 3만 원 중 28,400원 남음.
나도 웃었다.
50원이 찍혔다.
싸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