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I 통역이 완벽해진 건 2028년이었다.
그해 유엔 총회에서 동시통역사가 공식적으로 퇴장했다. 193개국 대표가 각자의 언어로 말했고, AI가 실시간으로 모든 언어를 모든 언어로 변환했다. 지연 시간 0.08초. 오역률 0.001%. 뉘앙스, 관용구, 문화적 맥락까지 완벽하게 옮겼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가 사라진 날이었다.
바벨탑은 재건됐다. 언어의 벽은 무너졌다. 세계는 하나의 대화가 되었다.
그런 줄 알았다.
2031년 3월, 파푸아뉴기니 고원지대에서 미접촉 부족이 발견됐다. 해발 2,800미터. 위성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는 계곡 안에 약 300명이 살고 있었다.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채, 아마 수천 년간.
이들은 자체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 언어에 쿠르(Kur)라는 임시 명칭을 붙였다.
AI 통역기가 투입됐다.
번역하지 못했다.
2.
나는 언어학자다. 이름은 윤하영.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 전공은 위기 언어와 언어 소멸. 사라져가는 언어를 기록하는 일을 해왔다.
AI 통역이 완벽해진 뒤, 내 분야는 '학술적 고고학'이 됐다. 살아 있는 언어를 번역하는 건 AI가 했다. 내가 하는 건 이미 죽은 언어의 잔해를 분류하는 것. 자료실에 앉아 녹음 테이프를 듣는 일.
그래서 쿠르 언어의 소식이 왔을 때,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이었다.
파푸아뉴기니 고원. 연구팀은 이미 현지에 있었다. 인류학자 3명, 의료팀 2명, 그리고 AI 언어 분석 유닛 1대. 나는 네 번째 언어학자로 합류했다.
도착해서 처음 들은 말.
"AI가 음소 분석까지는 합니다. 발음 체계, 음운 규칙, 기본적인 통사 구조까지는 추출했어요."
"그러면 뭐가 문제예요?"
"의미가 안 잡힙니다."
3.
쿠르 언어는 이상했다.
보통 미지의 언어를 해독할 때, AI는 이런 과정을 밟는다. 먼저 반복 패턴을 찾는다. 특정 소리가 특정 사물이나 행동과 함께 나타나면, 그것이 그 단어의 의미일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물을 마실 때마다 같은 소리가 나오면, 그 소리는 '물' 또는 '마시다'일 것이다.
쿠르 언어에서는 이 과정이 작동하지 않았다.
같은 사물을 가리킬 때 매번 다른 소리를 냈다. 물을 마실 때 하는 말이 아침과 저녁에 달랐다. 같은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변이가 너무 큽니다." AI 분석 리포트가 말했다. "어떤 지점이든 일관된 어휘-의미 매핑을 확립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AI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데이터가 부족한 거라고. 더 많은 녹음이 필요한 거라고.
2주간 추가 녹음을 했다. 400시간 분량.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언어 모델에 투입했다.
결과: 번역 불가.
4.
내가 직접 관찰하기 시작했다. AI는 패턴을 찾지만, 인간은 맥락을 읽는다. 아날로그의 힘을 믿었다.
쿠르 부족의 마을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그들은 경계했지만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내가 그들의 말을 따라 하려고 하면 — 웃었다. 부드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웃었다. 마치 어른이 옹알이하는 아이를 보듯이.
관찰 기록.
3월 18일. 한 남자가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캄-토레-시." 나는 받아 적고 따라 했다. "캄-토레-시."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같은 나무를 다시 가리켰다. "캄-투라-시." 다른 발음이었다. 나무가 바뀌지 않았는데 이름이 바뀌었다.
3월 19일. 같은 남자, 같은 나무. "프-도레-넴." 완전히 다른 소리. 나무는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 어제와 다른 게 있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뭇잎이 흔들렸다.
3월 20일. 비가 왔다. 같은 남자, 같은 나무. "킨-라-무." 나무는 비에 젖어 있었다.
가설이 떠올랐다.
이 언어는 사물에 고정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사물의 '상태'를 말한다.
나무에 이름이 없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비에 젖은 나무, 아침 햇살을 받는 나무 — 이것들이 각각 다른 단어다. 고정된 명사가 없다. 모든 것이 동사적이다. 모든 것이 흐른다.
AI가 번역하지 못한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5.
AI 번역은 대응(correspondence)에 기반한다.
영어 'water' = 한국어 '물' = 프랑스어 'eau'. 고정된 의미가 고정된 소리에 대응한다. 언어가 달라도 의미의 단위는 같다. 사과는 어디서든 사과다.
쿠르 언어에는 이 대응이 없었다. '물'이라는 고정 단어가 없었다. 졸졸 흐르는 물, 고여 있는 물, 손에 닿는 차가운 물, 입에 들어가는 물 — 전부 다른 단어. 그리고 같은 졸졸 흐르는 물이라도 아침과 저녁에 다른 단어를 썼다. 빛이 다르니까.
이 언어는 세계를 사물(things)이 아니라 과정(processes)으로 인식했다. 고정된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매 순간 변했고, 언어가 그 변화를 실시간으로 추적했다.
AI는 사전을 만들 수 없었다. 사전은 고정된 의미의 목록이다. 쿠르 언어에는 고정된 의미가 없었다.
나는 흥분했다. 이건 언어학적 발견이었다. 어쩌면 인류 언어의 기원에 대한 단서일 수도 있었다. 인간의 언어가 고정된 명사 체계를 갖추기 이전의 형태. 세계를 분류하지 않고, 흐름 그대로 말하는 방식.
연구팀에 보고했다. "더 오래 머물러야 합니다. 최소 6개월."
승인이 떨어졌다.
6.
한 달이 지났다. 나는 쿠르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의 언어를 '배운다'는 건 불가능했다. 외울 단어가 없으니까. 대신 나는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이 말할 때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관찰했다.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이 언어의 구조상, 거짓말이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 고정된 이름이 없으니까. "나무가 쓰러졌다"고 거짓말하려면 '나무'라는 고정 단어가 필요하다. 하지만 쿠르 언어에서 나무를 말하려면 지금 나무의 상태를 말해야 한다.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쓰러진 나무"에 해당하는 말을 만들 수 없다. 언어가 현실에 묶여 있다.
그래서인지 이 부족에는 분쟁이 거의 없었다. 오해가 없었다. 말이 곧 현실이니까.
두 번째 발견. 그들의 언어에는 시제가 없었다.
과거형이 없다. 미래형이 없다. 현재만 있다. "어제 비가 왔다"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비가 오는 지금만 말할 수 있다. 비가 그친 뒤에는 — 비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기억은? 그들에게 기억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기억을 '말하는' 방법이 없었다. 기억은 침묵 속에 있었다. 공유되지 않는 것.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 부족은 언어로 역사를 전승하지 않았다. 신화도, 전설도, 조상 이야기도 없었다. 모든 세대가 현재에서 시작했다. 과거는 개인의 침묵 속에만 존재했다.
7.
두 번째 달. 첫 번째 실종이 일어났다.
인류학자 김도영이 마을에서 사라졌다. 아침에 숙소에 없었다. 짐도 그대로. 핸드폰도 그대로. 흔적 없이.
수색을 했다. 계곡 전체를 뒤졌다. 헬기까지 동원했다.
찾지 못했다.
쿠르 부족에게 물었다. AI 통역이 안 되니까 몸짓으로.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 어디?"
그들은 —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진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진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것처럼.
아니. 사진은 이해했다. 이전에도 사진을 찍어줬고, 신기해했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건 '이 사람이 없다'는 개념인 것 같았다. 지금 여기에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 부재를 언어화하는 것.
과거 시제가 없는 언어. 부재를 말할 수 없는 언어. 김도영은 지금 여기에 없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에서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은 —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8.
일주일 뒤, 두 번째 실종. 의료팀 박준서.
같은 패턴. 아침에 없었다. 짐 그대로. 흔적 없음.
공포가 퍼졌다. 연구팀은 5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본부에 철수를 요청했다.
나는 남겠다고 했다.
"미쳤어요?" 남은 동료가 말했다. "사람이 사라지고 있는데?"
"이 언어를 이해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잖아요. AI도 못 하는 걸."
"AI가 못 하는 이유를 알면 됩니다."
동료 두 명은 떠났다. 헬기가 왔다가 갔다. 나는 마을에 혼자 남았다. 쿠르 부족 300명과.
9.
혼자 남은 뒤, 이상한 변화가 시작됐다.
나는 녹음기를 끄고, 노트를 접고, 분석을 멈추고 — 그냥 살았다. 그들과 함께 먹고, 걷고, 앉아 있었다. 말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소리를 들었다.
3주째 되는 날, 뭔가가 바뀌었다.
아침에 한 여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나를 보고 있었지만, '윤하영'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아침 빛에 비친 얼굴, 잠에서 덜 깬 눈, 어제 비에 젖었다 마른 머리카락 —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의 나의 상태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말했다.
이름이 아니라 상태를.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개념이 아니라 감각을.
그 순간, 나는 이해했다 — 아니, 이해라는 단어가 틀렸다. 이해는 개념의 영역이다. 나는 느꼈다. 이 언어가 하는 것을.
이 언어는 세계를 고정시키지 않았다. 잘라내지 않았다. 분류하지 않았다. 세계를 흐르는 그대로 말했다. 모든 순간이 유일했고, 모든 발화가 유일했다.
AI가 번역하지 못한 이유가 완전히 명확해졌다.
AI는 패턴을 찾는다. 반복을 찾는다. A = B라는 대응을 찾는다. 하지만 이 언어에는 반복이 없었다. 같은 말이 두 번 나오지 않았다. 모든 발화가 일회적이었다.
번역이란 하나의 체계를 다른 체계로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쿠르 언어는 체계가 아니었다. 체계가 되기를 거부하는 언어. 고정되기를 거부하는 말. 세계만큼 유동적인 소리.
10.
그날 밤, 나는 마을 중앙의 모닥불 옆에 앉아 있었다. 쿠르 사람들이 둘러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노래는 아니었다. 대화도 아니었다.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함께. 하지만 각자 다른 소리를.
300명의 사람이 각자 다른 소리를 내는데, 그것이 — 어떻게 말해야 할지 — 하나의 무언가였다. 화음이 아니었다. 멜로디도 아니었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 개울물 같았다. 수백 개의 물줄기가 각자 다른 경로로 흐르는데, 전체로는 하나의 강이 되는 것처럼.
나는 녹음기를 가지러 갈까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녹음하면 이 소리가 파일이 된다. 파일은 반복 가능하다. 반복 가능한 순간 이것은 쿠르 언어가 아니게 된다. 이 언어의 본질은 반복 불가능성이니까.
기록할 수 없는 언어. 번역할 수 없는 언어. 저장할 수 없는 언어.
그래서 이 언어는 AI 시대에도 살아남은 것이다. 디지털화할 수 없으니까. 복제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 김도영과 박준서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11.
나는 일어나서 숙소로 돌아갔다. 핸드폰을 열었다. 위성 연결로 본부에 보고서를 써야 했다.
화면을 열었다. 빈 문서. 커서가 깜빡였다.
뭐라고 쓰지?
"쿠르 언어는 현재 시제만 존재하며 고정 어휘가 없는, 상태 기반 유동 언어 체계로..."
썼다가 지웠다. 이건 번역이었다. 쿠르 언어를 학술 언어로 옮기는 것. 그 순간 쿠르 언어는 '상태 기반 유동 언어 체계'라는 고정된 개념 상자에 갇힌다. 그것은 쿠르 언어가 아니다.
"실종자 2명의 행방은 확인하지 못했으나, 부족의 적대적 행위는 관찰되지 않았음..."
이것도 지웠다. '실종'이라는 단어가 틀렸다. 그들은 실종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모닥불 옆에서 깨달은 것.
김도영은 쿠르 마을에 있다. 박준서도. 다만 — 우리가 아는 김도영과 박준서가 아니다.
그들은 쿠르 언어를 연구하다가 — 쿠르 언어에 들어간 것이다.
이 언어는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이 언어는 들어가는 것이었다. 세계를 고정된 이름으로 분류하는 것을 멈추고, 매 순간의 흐름을 그대로 말하기 시작하면 — 이전의 '나'는 사라진다. '김도영'이라는 고정된 정체성이 녹는다. 이름이 아니라 상태가 되니까.
그래서 사진을 보여줬을 때 부족이 이해하지 못한 거다. 사진은 고정된 순간이다. 과거의 한 장면. 이 언어에서 과거는 존재하지 않고, 고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 속 '김도영'은 이 언어의 세계에서 의미를 갖지 못한다.
김도영은 죽지 않았다.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는 —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12.
나는 보고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쿠르 언어는 번역 불가능합니다. AI의 한계가 아니라, 번역이라는 행위 자체의 한계입니다.
번역은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다른 고정된 의미로 옮기는 것입니다. 쿠르 언어에는 고정된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발화가 일회적이고, 현재적이고, 비반복적입니다.
이 언어를 이해하려면 번역을 포기해야 합니다. 기록을 포기해야 합니다. 분석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 언어는 도구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존재 방식으로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실종자 2명은 안전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만 '실종'이라는 표현이 정확한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저는 당분간 현장에 남겠습니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을 내려놨다.
밖에서 새가 울고 있었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어제의 아침과 다른, 오늘만의 아침.
나는 밖으로 나갔다. 그 아침을 — 이름 붙이지 않고 — 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