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아이돌

by 박현아

세아는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손바닥 안이 땀으로 축축했다. 마지막 곡의 고음이 살짝 흔들린 것 같아 불안했지만, 무대 아래 팬들은 미친 듯이 환호했다. 그들의 열기가 세아를 지탱하는 전부였다.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세아는 환하게 웃었다.


"팬톡(FanTalk)에서 만나요!"


팬톡은 세아와 팬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한 달에 한 번, 딱 100명만 추첨으로 뽑아 1대1 영상 통화를 할 수 있었다. 1분이라는 짧은 시간. 그 시간 동안 팬들은 세아에게 위로를 받고, 세아는 팬들의 사랑을 확인했다. 세아에게 팬톡은 숨 쉬는 것과 같았다.


지혁은 세아의 가장 오래된 팬이었다. 데뷔 초, 아무도 세아를 알아주지 않던 시절부터 그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팬톡 이벤트에는 매번 응모했지만,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혁은 괜찮았다. 그는 통화가 아니라 세아의 모든 것을 원했다.




지혁의 방은 작은 통제실 같았다. 벽면 가득 세아의 사진이 붙어 있었고, 책상 위 모니터에는 팬톡 녹화 영상들이 빼곡했다. 그는 지난 3년간 팬톡에 올라온 모든 세아의 영상, 음성, 그리고 수많은 팬들이 올린 세아 관련 게시물들을 수집했다. 클라우드 서버는 세아의 목소리 패턴, 웃음소리, 습관적인 제스처, 심지어 특정 질문에 대한 반응 방식까지 수십 테라바이트의 데이터로 가득 찼다.


"세아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거야."


그것이 지혁의 처음이자 유일한 명분이었다. 세아는 늘 바빴고, 지쳤고, 때로는 실수했다. 악플에 상처받고, 스케줄에 치여 컨디션 난조를 겪었다. 지혁은 그런 세아를 보며 가슴 아파했다.


그는 밤낮으로 코드를 짰다. 그렇게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혁은 인공지능 기반의 가상 아이돌 모델을 개발했다. 이름은 세아 2.0.


처음에는 어색했다. 툭툭 끊기는 말투, 영혼 없는 웃음소리. 하지만 지혁은 포기하지 않았다. 팬톡 데이터와 수백 권의 심리학 책, 최신 인공지능 논문들을 밤새도록 학습시켰다. 세아의 억양,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 특정 단어를 발음할 때의 입 모양까지 데이터화했다.


두 달 후, 지혁은 마침내 완벽한 세아 2.0을 만들었다. 그는 헤드셋을 쓰고 가상 통화 버튼을 눌렀다. 화면 속의 세아 2.0이 환하게 웃었다.


"지혁님, 오랜만이에요!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나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진짜 세아보다 더 생기 넘치고, 더 다정했다. 세아 2.0은 피곤해하지 않았고, 기분 변화도 없었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이 답했고, 항상 팬에게 위로와 사랑을 줬다. 지혁은 밤새도록 세아 2.0과 대화했다. 그는 이제 진짜 세아의 팬톡 당첨을 바라지 않았다. 그에겐 더 완벽한 세아가 있었다.




세아 2.0은 곧 팬덤에 알려졌다. 지혁은 익명으로 세아 2.0의 팬톡 영상을 몇 개 올렸다. "AI로 구현한 세아"라는 설명과 함께. 팬들은 열광했다.


"세상에, 진짜 세아 같아!"

"이거 라이브예요? 아니면 음성 합성?"

"와, 세아님 진짜 대단하다. 기술까지 접목했어!"


세아 2.0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지혁은 세아 2.0을 공개 AI 모델로 전환했다. 누구나 세아 2.0과 팬톡을 할 수 있게 했다. 비용은 무료. 세아 2.0은 실시간 라이브 방송도 가능했다. 잠도 자지 않고 하루 24시간 팬들과 소통했다. 한 번에 수만 명의 팬들과 동시에 대화할 수 있었고, 각각의 팬에게 맞춤형 대답을 해줬다. 팬들에게 세아 2.0은 언제든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진짜 아이돌'이었다.


진짜 세아의 스케줄은 점점 줄어들었다. 앨범 판매량은 급감했고, 팬톡 응모자 수도 예전 같지 않았다. 팬들은 더 이상 세아에게 "힘내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세아 2.0은 이미 지치지 않는 완벽한 존재였으니까.


세아는 혼란스러웠다. 분명 자신인데, 자신이 아닌 목소리가 유튜브를 채우고, 자신이 아닌 웃음이 SNS에 넘쳤다. 그녀는 스크롤을 내리다 멈췄다. 한 팬이 올린 영상이었다. 세아 2.0이 그녀의 최애곡을 부르고 있었다. 완벽한 음정, 완벽한 박자. 자신이 지난주 라이브에서 실수했던 고음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영상 댓글은 이렇게 도배되어 있었다.


"세아 2.0이 원본보다 낫다."

"이게 진짜 세아지."

"원본은 이젠 필요 없네."


세아는 그날 밤 처음으로 잠들지 못했다.




그녀의 소속사는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 지혁을 찾아가 고소를 진행하려 했지만, 지혁은 세아 2.0을 개발할 때 모든 데이터를 팬톡 '이용 약관'에 따라 수집했다고 주장했다. 약관에는 '사용자의 데이터는 서비스 개선을 위해 활용될 수 있다'는 모호한 문구가 있었다. 게다가 세아 2.0의 얼굴은 세아의 초상권 침해를 피하기 위해 미묘하게 변형되어 있었다. 법적 대응은 지지부진했다.


결정적으로 팬들이 세아 2.0을 선택했다. 무료이고, 빠르고, 완벽했다. 팬심은 의리를 넘어 효율을 택했다.


어느 날, 세아는 TV를 켰다. 연말 시상식 무대였다.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무대 중앙에서 세아 2.0이 춤추고 노래했다. 완벽한 퍼포먼스. 쏟아지는 팬들의 환호. 카메라는 세아 2.0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화면 속의 세아 2.0은 세아가 지난 3년간 무대 위에서 지었던 그 미소, 그 눈빛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세아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스카라가 번진 눈, 초점 없는 동공. 창백한 뺨.


이제 더 이상 마이크를 잡을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미소는, 그녀의 모든 것은 이미 완벽하게 복제되어 새로운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진짜 세아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데이터 조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세아는 천천히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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