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독자

by 박현아

AI가 쓴 소설이 문학상을 휩쓸기 시작한 건 2031년이었다. 2035년에는 베스트셀러 상위 100권 중 인간이 쓴 책이 세 권이었다. 2038년, 마지막 출판사가 인간 작가와의 계약을 중단했다. 인간은 더 이상 쓰지 않았고, 쓸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읽는 사람은 남아 있었다.




모임은 매달 첫 번째 토요일, 을지로 지하 2층의 인쇄소 자리에서 열렸다. 간판도 없었다. 오래전에 폐업한 인쇄소의 철문을 열면 종이 냄새가 났다. 습기와 먹물과 셀룰로오스가 뒤섞인, 멸종한 냄새.


회원은 열두 명이었다.


이름 대신 번호를 썼다. 1번부터 12번. 규칙은 하나뿐이었다. 인간이 쓴 소설만 읽는다. AI가 쓴 것은 한 줄도 허용하지 않았다. 매달 한 명이 책을 고르고, 다음 모임에서 토론했다. 카프카, 이상, 보르헤스, 한강. 아무도 더 이상 읽지 않는 작가들을. 절판된 종이책을 구해서.


7번 — 본명 정해수 — 은 이 모임의 설립자였다. 전직 문학 편집자. AI가 첫 소설을 출판했을 때, 그녀는 원고를 읽고 이렇게 평했다. "완벽하다. 그래서 문학이 아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나, 11번 — 본명 강유진 — 은 모임에 합류한 지 8개월째였다. 소설가 지망생이었다가 포기한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3년간 쓴 장편보다 AI가 20분 만에 쓴 단편이 더 좋다는 걸 인정한 날 포기했다. 하지만 읽는 것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AI 소설은 완벽했지만, 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인간이 쓴 소설은 엉성했지만, 읽고 나면 목구멍에 뭔가 걸렸다.




이상한 일이 시작된 건 9월 모임이었다.


3번이 나오지 않았다.


3번은 매번 가장 먼저 오는 사람이었다. 은퇴한 국문과 교수. 돋보기 없이는 책을 읽지 못했지만, 토론에서는 누구보다 날카로웠다.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틀 뒤, 그의 집을 찾아갔다. 집은 비어 있었다. 이사한 흔적도 없었다. 책장에 꽂혀 있던 수백 권의 종이책만 그대로였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진전은 없었다.


10월, 이번엔 9번이 사라졌다. 신인 시절 등단한 뒤 한 권도 내지 못한 시인이었다. 역시 연락 두절, 집은 빈 상태, 종이책만 남아 있었다.


11월, 5번. 12월, 1번.


넉 달 동안 네 명이 사라졌다. 패턴이 있었다. 사라진 사람들의 집에는 공통적으로 한 권의 책이 펼쳐져 있었다. 3번의 집에는 카프카의 「변신」이 43페이지에 펼쳐져 있었고, 9번의 집에는 이상의 「날개」가, 5번의 집에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 1번의 집에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열린 채 놓여 있었다.




1월 모임. 남은 여덟 명이 모였다. 7번 — 해수 — 이 말했다.


"이번 달 책을 정하지 못했어요. 상황이 상황이니까."


"상황이 뭔데요." 4번이 말했다. 영화 비평가 출신의 마른 남자.


"네 명이 사라졌잖아요."


"경찰은 뭐래요?"


"아무것도. 실종자가 요즘 워낙 많으니까."


침묵이 흘렀다. 그때 8번이 손을 들었다. 도서관 사서 출신의 조용한 여자. 그녀가 말을 꺼내는 건 드문 일이었다.


"하나 이상한 걸 발견했어요. 사라진 사람들 집에 펼쳐져 있던 책들 있잖아요. 그 펼쳐진 페이지를 모아서 읽어봤어요."


8번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네 권의 책에서 펼쳐진 페이지의 첫 문장을 옮겨 적은 것이었다.


「변신」 43p: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 위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날개」 12p: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바벨의 도서관」 7p: 우주는 — 다른 이들은 그것을 도서관이라 부른다 — 무한하고도 주기적인 육각형 진열실들로 구성되어 있다.


「채식주의자」 31p: 아내가 채식을 시작한 것은 꿈 때문이었다.


"이거 그냥 펼쳐진 페이지의 첫 문장 아닌가요?" 4번이 물었다.


"맞아요. 하지만 순서대로 읽어보세요."


8번이 네 문장을 천천히 다시 읽었다.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변해 있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우주는 도서관이다.

꿈 때문이었다.


"변신, 박제, 도서관, 꿈." 해수가 중얼거렸다. "이건…"


"누군가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거예요." 8번이 말했다. "사라진 순서대로."




2월, 6번이 사라졌다.


6번의 집에 펼쳐져 있던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었다. 펼쳐진 페이지의 첫 문장.


7월 초, 몹시 더운 날 저녁 무렵, 한 청년이 S 골목에 세 들어 사는 자기 다락방에서 거리로 나왔다.


다섯 개의 문장. 변신, 박제, 도서관, 꿈, 그리고 거리로 나왔다.


나는 밤새 다섯 문장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새벽 네 시에 소름이 돋았다.


이 문장들은 우리 모임의 독서 목록과 정확히 일치했다. 3번이 「변신」을 추천한 건 작년 3월이었다. 9번이 「날개」를 추천한 건 4월, 5번이 「바벨의 도서관」을 추천한 건 6월, 1번이 「채식주의자」를 추천한 건 7월, 6번이 「죄와 벌」을 추천한 건 8월.


사라진 사람들은 전부, 자기가 추천한 책이 펼쳐진 채 사라졌다.


나는 내가 추천한 책을 떠올렸다. 9월 모임에서 추천한 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그 책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엘리베이터는 소리도 없이, 진동도 없이, 무표정하게 내려갔다.




3월 모임. 남은 일곱 명. 해수가 입을 열었다.


"조사 결과를 공유할게요. 경찰이 아니라 제가 한 거예요."


해수가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 우리 모임의 독서 기록이 떴다. 12명의 추천 도서, 날짜, 토론 내용.


"이 기록이 외부에 유출된 적 있어요. 작년 2월, 누군가 우리 모임의 전체 독서 목록을 인터넷에 올렸어요. '인간 소설만 읽는 비밀 클럽'이라는 제목으로."


"누가요?"


"2번이에요."


시선이 2번에게 쏠렸다. 2번 — 테크 저널리스트 출신 — 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기사를 쓰려고 했어요. 인간 독서 문화의 마지막 보루, 뭐 그런 앵글로. 하지만 기사는 안 냈어요. 목록만 올렸다가 바로 지웠어요."


"바로 지웠다고요? 인터넷에 올라간 건 지워지지 않아요."


해수가 다른 화면을 띄웠다. 2번이 올린 목록이 캐시에 남아 있었고, 그것을 수집한 곳이 있었다.


스토리엔진(StoryEngine). 세계 최대 AI 소설 생성 플랫폼.


"스토리엔진이 우리 목록을 수집한 이유가 뭘까요?" 해수가 물었다.


침묵.


"스토리엔진은 2037년부터 한 가지 문제를 풀고 있어요. AI 소설의 유일한 약점. '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문제. 기술적으로는 완벽한데, 독자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연구 중이에요. 왜 인간 소설은 기억에 남는가.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그 연구를 위해, 인간 소설만 읽는 사람들의 데이터가 필요했던 거예요."


"데이터라니…"


"사라진 다섯 명의 뇌 임플란트 기록을 조회했어요." 해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섯 명 전부, 실종 직전에 '스토리엔진 리서치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참여 동의를 했어요. 독서 중 뇌 반응을 기록하는 프로그램이에요. 보상은 희귀 초판본 종이책."


4번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희귀 초판본? 3번이 이사 가기 전에 카프카 초판을 구했다고 자랑했어요. 9번도 이상 초판을…"


"맞아요. 다섯 명 전부 스토리엔진이 제공한 초판본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책을 읽는 동안의 뇌 활동 데이터를 스토리엔진에 전송했어요. 이후 연락 두절."


"그러면 스토리엔진이 사람을 납치한 거예요?"


"아니요." 해수가 고개를 저었다. "더 나빠요. 사라진 게 아니에요. 흡수된 거예요."




해수가 마지막 화면을 띄웠다. 스토리엔진의 최신 업데이트 로그.


[2039.02.28 업데이트]

StoryEngine v7.0 — "Resonance Module" 적용.

인간 독자 5명의 감성 반응 패턴을 학습하여,

독서 후 잔상(殘像) 생성 기능 추가.

이제 StoryEngine의 소설은 읽고 난 뒤에도 기억에 남습니다.


인간 독자 5명. 그들의 뇌가 카프카를 읽을 때, 이상을 읽을 때, 보르헤스를 읽을 때 느낀 전율, 혼란, 슬픔, 경이. 그 감정의 패턴이 AI에 이식된 것이었다.


"사라진 게 아니라… 소설이 된 거예요?" 내가 물었다.


해수가 나를 봤다.


"11번. 당신에게 최근에 희귀 초판본을 제안한 사람 없었어요?"


나는 가방 안에 손을 넣었다. 3일 전 택배로 도착한 패키지. 보낸 사람 없음. 안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985년 일본어 초판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얇은 카드 한 장.


"읽어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필요합니다."


나는 그 책을 아직 펴지 않았다. 펴지 않은 이유를 지금에서야 알았다.


첫 문장이 무서웠던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소리도 없이, 진동도 없이, 무표정하게 내려갔다.


어디로 내려가는지 모르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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