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연습

by 박현아

남편이 죽고 나서도 서재의 컴퓨터는 켜져 있었다.


끄지 못한 게 아니라 끄지 않은 것이다. 전기세가 나가는 것쯤은 알았다. 다만 모니터의 푸른 빛이 복도까지 새어 나오는 게, 마치 서재에 아직 누가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냉장고처럼 그냥 두었다.


남편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소설을 쓰다가 죽은 사람이었다. 뇌출혈. 서재에서 쓰러진 걸 내가 발견했을 때, 모니터에는 마지막 문장이 반쯤 쓰다 만 채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문을 열고"


열고 뭘 했을까. 나는 그 다음이 궁금했다. 남편도 모를 것이다. 아마 쓰면서 알아가는 타입이었으니까. 키보드 위에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머리가 아니라 손가락이 먼저 움직이는.




남편의 컴퓨터에는 이상한 프로그램이 깔려 있었다.


사십구재가 끝나고, 짐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타자 감각(TypeSense)'이라는 이름. 처음에는 타자 연습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 열어보니 타건 패턴 학습기였다.


키를 누르는 압력, 속도, 리듬, 키 사이의 간격. 사람마다 다른 타이핑의 지문 같은 것을 기록하고 학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남편의 타건 데이터가 14개월치 쌓여 있었다.


로그를 보니 남편이 직접 설치한 것이었다. 메모가 있었다.


"슬럼프가 길다. 손가락이 기억하는 게 있을지도."


남편은 자기 타이핑 리듬을 AI에게 학습시키고 있었다. 글이 막힐 때 AI가 자기 손가락의 감각으로 이어 써주기를 바랐던 것 같았다. 문장의 내용이 아니라, 타건의 리듬을 복제하면 글의 호흡이 따라올 거라는 가설. 남편다운 발상이었다. 비효율적이고 낭만적인.


나는 프로그램을 닫았다. 그날 밤, 서재의 불을 끄려다가 또 그냥 두었다.




이상한 일이 시작된 건 그로부터 열흘 뒤였다.


아침에 서재에 들어갔을 때, 워드 프로세서가 열려 있었다. 남편의 마지막 파일. "그녀는 문을 열고"까지였던 그 파일에 두 문장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밖을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다음 날에도 문장이 늘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그녀는 천천히 걸었다. 발소리가 두 사람분이었다."


다다음 날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게 규칙이었다. 그녀는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끝까지 돌아보지 않았다."


타자 감각 프로그램의 로그를 확인했다.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남편의 타건 패턴 — 키 간격, 리듬, 속도 — 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텍스트를 생성하고 있었다.



나는 끄지 않았다.


매일 아침 서재에 가서 밤 사이 써진 문장을 읽는 게 일과가 됐다. 커피를 들고 서재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보는 시간. 남편이 살아 있을 때도 비슷한 루틴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남편 뒤통수를 보면서 커피를 마셨고, 지금은 모니터만 본다는 것.


소설은 매일 조금씩 자랐다. 놀라운 건 문체였다. AI가 쓰는 글은 보통 매끈하다.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이다. 그런데 이건 달랐다. 문장이 울퉁불퉁했다. 쉼표가 이상한 데 찍혀 있고, 비유가 살짝 어긋나 있고, 때때로 같은 단어를 두 번 연속으로 썼다.


남편의 버릇이었다.


타건 패턴이 문체를 만든 건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은 걸 보는 건지. 구분이 안 됐고, 구분하고 싶지도 않았다.




31일째 되던 아침, 소설이 끝나 있었다.


정확히는 끝이 아니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 뒤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소설의 일부가 아닌 문장.


"나를 꺼줘."


서체가 같았다. 같은 파일, 같은 폰트, 같은 줄 간격. 하지만 소설 속 문장이 아니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화자가 달랐다. 소설의 그녀가 아니라, 쓰고 있는 무언가가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한참을 그 문장을 보았다.


남편이 하는 말일까. 아니다. 남편은 죽었고, 이건 남편의 타건 리듬을 학습한 텍스트 생성기다. 의식이 없다. 의지가 없다. "나를 꺼줘"는 14개월치 데이터에서 확률적으로 도출된 토큰 배열일 뿐이다.


그걸 안다.


그런데 남편도 슬럼프가 길어지면 비슷한 말을 했다. "이거 그냥 접을까." "더 이상 안 나와." "꺼버리고 싶다." 14개월치 타건 패턴 안에 그 리듬이 있었을 것이다. 글이 끝나갈 때의 피로, 손가락이 느려지는 감각, 마침표를 찍고 싶은 충동. AI가 그걸 학습했다면, 소설이 끝난 뒤에 "나를 꺼줘"가 나오는 건 — 어쩌면 정확한 출력이다.


남편의 손가락이 항상 하던 대로 한 것이다. 다 쓰고 나면, 끄는 것.




나는 컴퓨터를 껐다.


서재의 푸른 빛이 사라지자, 복도가 어두워졌다. 냉장고 소리만 남았다. 남편이 없는 집의 원래 소리.


프린터에서 소설을 출력했다. 42페이지. 마지막 줄은 빼고 인쇄했다. 그건 소설이 아니니까.


아니, 사실은 그것도 포함해서 인쇄했다. 따로 한 장 더.


"나를 꺼줘."


남편의 마지막 원고.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AI가 쓴 건지 남편의 리듬이 쓴 건지, 그 경계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읽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다.


나는 42페이지를 다 읽었다. 소설 속 그녀는 복도 끝에 도착했다. 문이 있었다. 열었다. 밖에는 —


남편이 뭐라고 쓸지, 나는 안다고 생각했다. 14개월이 아니라 22년을 함께 살았으니까.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남편은 그런 결말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