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시트 (Spec Sheet)

by 박현아

아이가 태어나기 8개월 전에 스펙 시트가 도착한다.


PDF 파일. A4 세 장. 첫 페이지 상단에 로고 — GeneCraft. 그 아래 굵은 글씨.


[태아 #GC-2031-09-4472 — 설계 사양서 v2.1]


항목은 이렇다.


• 신장 예측: 174.3cm (±1.2)

• 체질량 지수 예측: 21.8

• 시력: 양안 1.5 이상 보장

• 알레르기: 없음 (견과류·갑각류·꽃가루 유전자 비활성화)

• 유전 질환: 제거 완료 (목록: 부록 A 참조)

• 근육 유형: 속근 비율 62% (운동 적성 '다목적')

• 수면 효율: 6시간 기준 충분 (DEC2 변이 삽입)

• 지능 관련 유전자 클러스터: 상위 5% 최적화

• 외형: 동아시아 기본형, 눈 색상 갈색(짙음), 모발 흑색(직모)


두 번째 페이지는 '옵션 패키지'. 체크박스가 있다.


• 절대음감 (추가 비용: ₩3,200,000)

• 공감 능력 강화 — 옥시토신 수용체 밀도 +30% (₩1,800,000)

• 충동 억제 강화 — 전전두엽 발달 촉진 (₩2,500,000)

• 장수 패키지 — 텔로미어 안정화 + 세포 자가복구 (₩15,000,000)

• 외형 커스텀: 쌍꺼풀/피부톤/체형 비율 상세 조정 (별도 상담)


세 번째 페이지는 면책 조항이다.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윤서진. 서른네 살. GeneCraft 서울센터의 유전설계 상담사다. 쉽게 말하면, 아기를 주문받는 사람이다.


'주문'이라는 표현을 회사에서는 쓰지 않는다. '설계 상담'이라고 한다. '맞춤형 아기'도 금지어다. '유전자 최적화 서비스'라고 부른다. 언어를 바꾸면 윤리가 바뀌는 것처럼.


하루에 세 팀 정도 만난다. 대부분 30대 부부. 가끔 비혼 여성이나 동성 커플도 온다. 표정은 비슷하다. 긴장과 기대가 반반. 자동차 옵션 고르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기색.


오늘 첫 상담은 박도현·김수아 부부. 둘 다 IT 업계. 연봉 합산 2억대.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 건 최근이고, GeneCraft에 온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한다.


"요즘 안 하는 사람이 드물잖아요."


수아 씨가 말했다. 맞다. 2031년 현재 한국 출생아의 41%가 유전자 최적화를 거친다. 5년 전에는 8%였다. 합법화된 지 7년 만에 이렇게 됐다.




상담은 기본 설계 확인부터 시작한다.


부모의 유전체를 분석해서 자연 임신 시 나올 수 있는 조합 중 최적값을 뽑는다. 여기까지는 기존 착상 전 유전자 검사(PGT)와 비슷하다. 다른 건 그다음이다. 최적값이 마음에 안 들면 '편집'할 수 있다.


"신장이 168이요? 좀 더 안 되나요?"


도현 씨가 스펙 시트를 보며 물었다.


"부모님 유전자 조합상 자연 최적값이 168.7입니다. 편집으로 174까지는 올릴 수 있어요. 그 이상은 골격 밸런스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권장하지 않습니다."


"174면… 괜찮네. 해주세요."


수아 씨가 끼어들었다.


"알레르기는요?"


"기본 패키지에 주요 알레르겐 8종 비활성화가 포함되어 있어요. 추가 비용 없습니다."


"좋다."


부부가 서로 눈을 맞추며 웃었다. 좋은 부모가 되려는 사람들이다. 아이에게 최선을 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나는 그걸 의심하지 않는다.


"지능 쪽은요?"


"지능 관련 유전자 클러스터를 상위 5%로 최적화하는 게 기본입니다. 상위 1%는 가능하지만, 비용이 3배이고 부작용 가능성이 있어서—"


"무슨 부작용이요?"


"과민성. 감각 처리 과부하. 쉽게 말하면, 너무 많이 인식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5% 최적화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5%로요."


스펙 시트에 체크가 늘어간다. 알레르기 제거. 시력 보장. 신장 174. 지능 상위 5%. 수면 효율 6시간.


옵션 페이지로 넘어갔다.


"공감 능력 강화는 뭐예요?"


"옥시토신 수용체 밀도를 높이는 편집입니다. 타인의 감정을 더 잘 읽고, 사회적 유대가 강해져요. 리더십 적성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그거 좋겠다. 체크."


"충동 억제 강화는요?"


"전전두엽 발달을 촉진해서 감정 조절과 장기적 판단 능력을 높입니다. ADHD 발생 확률도 크게 낮아져요."


"당연히 해야지. 체크."


나는 태블릿에 입력하면서, 언제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부모는 아이를 '설계'하고 있다. 아이가 원한 적 없는 특성을 아이에게 심고 있다. 하지만 그건 유전자 편집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는 항상 아이의 동의 없이 아이를 만들었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날지, 어떤 환경에서 자랄지, 어떤 교육을 받을지 — 전부 아이가 선택한 게 아니다.


유전자 편집은 그 범위를 생물학까지 확장한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합리적이다. 그런데 합리적인데도 불편한 건 왜일까.




상담이 끝나갈 때 수아 씨가 물었다.


"성격은요? 성격도 되나요?"


"성격은 유전자만으로 결정되지 않아서 '보장'은 못 합니다. 다만 기질 경향성은 조정할 수 있어요. 외향성 높이기, 신경증 낮추기 같은."


"외향적인 아이가 좋겠다."


도현 씨가 말했다. 수아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교적이고, 긍정적이고, 스트레스에 강한 아이."


나는 입력했다. NEO 성격 모델 기반 기질 경향성 조정. 외향성 +2σ. 신경증 -1.5σ. 성실성 +1σ.


입력하면서 생각했다. 이 아이는 태어나기 전에 이미 밝은 성격을 '부여받았다'. 이 아이가 나중에 우울할 때, 그 우울은 '설계 결함'이 될까? 밝게 만들어졌는데 어두운 감정을 느끼면, 이 아이는 자신이 고장났다고 생각할까?


그런 말을 하는 건 내 일이 아니다. 나는 상담사다.


"다른 궁금한 점 있으세요?"


"아, 한 가지. 나중에 이 아이가 자기가 설계된 거 알게 되면… 어떨까요?"


수아 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질문은 자주 받는다. 정해진 답변이 있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알고 자라요. 학교에서도 '유전자 최적화 이해' 수업이 있고요. 자연 임신 아이들도 있으니까 다양성 교육 차원에서요. 대부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이건 회사가 준 답변이고, 절반은 사실이다.


나머지 절반은 내가 말하지 않는 부분이다.




오후 상담. 혼자 온 여성. 이민주, 스물여섯.


상담 목적: 본인의 유전자 설계 사양서 열람.


이런 케이스가 늘고 있다. 유전자 최적화 1세대가 성인이 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합법화된 건 7년 전이지만, 해외에서는 더 일찍 시작됐다. 민주 씨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한국인이고, 당시 LA의 클리닉에서 시술을 받았다.


"제 스펙 시트를 보고 싶어요."


"열람 신청서는 작성하셨고, 부모님 동의도 있으니 가능합니다. 다만, 설계 사양서의 내용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간단한 사전 상담을 진행합니다."


"네, 괜찮아요."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나중 문제다.


스펙 시트를 열었다. 2005년 작성. 양식이 지금보다 단순하다.


[Subject #LA-2005-0891 — Design Specification v1.3]


• Height prediction: 165.2cm

• Vision: 1.2+ guaranteed

• Allergies: removed (peanut, shellfish)

• Genetic diseases: cleared

• Intelligence cluster: top 8% optimization

• Appearance: East Asian, brown eyes, black hair (straight)

• Personality tendency: Agreeableness +1.5σ, Neuroticism -2σ


민주 씨가 화면을 읽었다. 천천히.


"Agreeableness +1.5σ."


"동조성이요. 타인의 의견을 잘 수용하고, 갈등을 피하는 경향을 높인 거예요."


"…"


"Neuroticism -2σ는 정서적 안정성을 높인 거고요."


민주 씨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니까… 저는 순한 성격으로 만들어진 거네요."


"기질 경향성을 조정한 거지, 성격 전체를 결정한 건 아닙니다. 환경, 경험, 선택이—"


"아뇨."


민주 씨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건조했다.


"저 되게 순해요. 진짜로. 갈등이 싫고, 싸우는 걸 못 하고, 누가 부탁하면 거절을 잘 못 해요. 그게 제 성격이라고 생각했어요. 30년 동안."


"…"


"근데 이건 성격이 아니잖아요. 사양이잖아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해진 답변이 없는 순간이었다.


"제가 화가 잘 안 나는 것도,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회사에서 야근을 시키면 '네' 하고 하는 것도 — 그게 다 이 때문이에요?"


"기질 경향성은 확률을 높인 것이지 결정한 게 아닙니다. 같은 편집을 받고도 반항적인 성격이 된 사례도—"


"그건 그 사람이 환경에서 이긴 거잖아요. 저는 진 거고요."


민주 씨의 손이 떨렸다. 그런데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Neuroticism -2σ. 정서적 안정성이 높게 설계된 사람은 극도로 화가 나도 목소리가 떨리지 않는다.


그게 더 무서웠다.




민주 씨가 돌아간 뒤, 나는 한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일을 6년 했다. 아기를 설계하는 부모는 매일 본다. 하지만 설계된 아기가 자라서 자기 설계도를 보러 오는 건 — 이건 새로운 종류의 일이다.


그리고 이건 시작일 뿐이다. 2031년 출생아의 41%가 유전자 최적화를 거쳤다. 이 아이들이 20대가 되면, 전체 청년의 상당수가 자기 스펙 시트를 가지게 된다.


어떤 아이는 괜찮을 것이다. "부모가 좋은 선택을 해줬네." 어떤 아이는 민주 씨처럼 물을 것이다. "이게 나인가, 설계인가."


그리고 어떤 아이는 더 무서운 질문을 할 것이다.


"왜 나는 이렇게 만들어졌는데, 저 아이는 저렇게 만들어졌지?"


자연 임신 시대에도 유전자 복권은 있었다. 누구는 키가 크고 누구는 작다. 하지만 그건 운이었다. 아무도 탓할 수 없었다. 설계된 아이에게는 운이 아니라 선택이다. 부모의 선택. 부모의 예산. 부모의 취향.


장수 패키지는 1500만 원이다. 부유한 부모의 아이는 세포 자가복구 기능이 있고, 가난한 부모의 아이는 없다. 이건 교육 격차나 환경 격차와 차원이 다르다. 생물학적 격차다. 태어날 때 몸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몸은 바꿀 수 없다. 이사를 가거나 학교를 옮길 수는 있지만, 텔로미어 안정화 여부는 출생 시 결정되고 돌이킬 수 없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광고를 봤다.


GeneCraft — 사랑으로 시작하는 최고의 선물

"모든 아이에게 최선의 출발을."


그 옆에 작은 글씨.


기본 패키지 ₩8,900,000부터. 36개월 무이자 할부 가능.


지하철 반대편에는 다른 광고가 있었다.


자연출산 지원센터 —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완벽합니다

정부 지원 상담 무료


두 광고 사이에 앉은 임산부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 뭐가 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집에 와서 소파에 앉았다. 나는 자연 임신으로 태어났다. 1997년생. 유전자 편집이 상용화되기 한참 전이다. 내 키, 내 얼굴, 내 성격은 전부 우연의 산물이다.


우연이라는 게 이렇게 안도가 될 줄 몰랐다.


아무도 나를 설계하지 않았다. 내 순한 성격이 사양서 때문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내 알레르기가 부모의 예산 부족 때문인지 따질 필요가 없다. 그냥 이렇게 태어났다. 운이 좋든 나쁘든, 탓할 사람이 없다.


민주 씨에게는 탓할 사람이 있다. 부모다. 사랑으로 만든 선택이 원망의 대상이 된다. 이보다 슬픈 구조가 있을까.




다음 날 출근하니 메일이 와 있었다.


GeneCraft 본사 공지. 제목: [신규 서비스] GeneCraft Recall — 성인 대상 유전자 재편집 상담 개시


내용을 읽었다.


유전자 최적화 1세대 성인 고객을 위한 '재설계' 서비스를 출시합니다. 출생 시 적용된 유전자 편집 중 원치 않는 항목을 부분 역전하거나, 새로운 편집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예: 동조성(Agreeableness) 조정치 역전, 수면 효율 패턴 변경, 외형 수정 등


가격: 항목당 ₩5,000,000~


부모가 만든 설계가 마음에 안 들면, 돈을 내고 다시 고치는 서비스.


나는 메일을 닫았다.


이건 해결이 아니다. 이건 시장이다. 문제를 만들고, 문제의 해결책을 파는 시장. 부모에게 아이를 설계하게 하고, 아이가 자라면 재설계를 팔고, 재설계가 마음에 안 들면 또 팔고.


창밖을 봤다. 서울 하늘. 봄이 오고 있었다. 올해도 41%의 아기가 설계될 것이다. 내년에는 50%가 될 것이다. 그 아이들이 20대가 되면, 자기 스펙 시트를 열어볼 것이다.


어떤 아이는 물을 것이다.


"이게 나야?"


누구도 답해주지 못할 것이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