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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카피 Mar 17. 2020

빠름

적정기술, 수명, 오래된 미래

  어제도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느꼈는데, 사람들은 무언가 계속 더 편리해지고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세상을 '발전했다'고 받아들이나 보다.


  여기서 [오래된 미래]를 꺼내는 건 진부할테니 그냥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모든 '빠름'은 가벼워지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편리'엔 댓가가 따른다고 생각한다. 가벼움은 삶을 소모시키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숨겨진 댓가들이 실은 삶의 본질 그 일부를 셈으로 치르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제일 먼저 이런 반론이 나온다. 이미 너도 빠르고 편해진 세상의 혜택을 보고 있지 않느냐- 맞다. 하지만 오십보 백보의 관점은 옳지 않다. 천천히 가자는 말은 아예 가지 말자는 말과 전혀 다르고, 아주 천천히 가자는 말과 또 한참 다르다.


  나 하나가 세상의 흐름, 다수 사람들의 지향을 바꿀 순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극한까지 반도체의 집적율을 높이는 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반대쪽엔 적정기술을 연구하는 게 꿈이라는 청년들이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에서 좌절 대신 가능성을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소수지만, '있다'는 그 사실에 집중하자고 나는 자주 되뇐다.


  생은 길이가 정해진 심지다. 크게 보면 인류라는 종의 수명, 지구라는 별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불을 빨리 태운다는 건 생의 끝을 향해 더 격렬하게 달려간다는 뜻이다. 사실, 모든 '빠름'엔 모든 '격렬한 질주'엔 중독성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죽음과 소멸이라는 운명을 잊기 위한 마약의 중독성일지도 모른다. 그러하기에, 어차피 사라질 건데 격렬하게 불타다 사라지는 게 뭐가 나쁘냐 하는 항변에도 나름 설득력이 있다. 하긴, 제임스 딘은 영원히 인기 있지.


  얼리어댑터 1세대 쯤 되는 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스물 몇 살 때부터 이런 얘기를 해왔다. 느리고 싶다고 말해 왔다. 이상하게 보였으리라. 그런데, 나는 그런 모순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마약 중독자가 마약의 허망함을 가장 뼈저리게 아는 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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