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

세포와 혈관에게 고마워하다

by 현카피


쇄골이 부러져 티타늄 플레이트를 대 고정시키는 수술을 받고 2개월이 지났을 때다. 토요일마다 진료를 받았는데, 나이 때문인지 뼈 붙는 속도가 느리다는 얘기를 담당의에게 계속 듣고 있었다. 만에 하나 불유합(뼈가 붙지 않는 상태) 판정이라도 나면 여러모로 일이 커지는 터, 다쳐서 받은 몸과 마음의 상처에 그 불안이 더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잘 붙고 있네요. 무거운것 들지 말고 조심하며 지켜보면 되겠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잘 모르는 내 눈에도 엑스레이에 찍힌 쇄골의 파손면이 많이 희미해져 있었다.


며칠 후, 점심을 먹고 혼자 회사 주변을 산책하다 문득 사무치도록 고맙다는생각에 사로잡혔다. 대상이 불분명한, 막연하고 포괄적인 고마움이었다. 의사선생님과 아내, 친구들은 물론, 정확히 알지 못하는 어떤 세포들, 조직과 혈관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머리 속에 그 세포며 조직들이 필사적으로 자신의 맡은 일을 해내는 모습이 떠올랐다. 버티고, 막고, 잇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굉장히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과장이나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고마워" 라는 말을 입밖으로 발음해 냈다. 비현실적으로 눈부신 한여름 낮의 도산대로 안쪽 골목에서 나는 그렇게 세포와 혈관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세포와 혈관에게 고맙다는 말이 말장난이 아닌 게, 그만큼 요즘의 나는 모든 게 정말 고맙다. 조금만 내게 친절히 대해주면 잘 해준 그가 당황할 만큼 한없이 고마워하고, 말 한 마디에 한 조각의 다정함이라도 묻어 오면 내가 가진 모든 진심을 담아 바로 답한다. 살아오며 만난 고마운 이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린다. 갚을 방법이 있다면 아무리 큰 지출을 해서라도 갚으려고 한다. 나를 좋아해준 사람들에겐 나를 좋아해줬다는 사실 그 자체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아마도 그 이유는, 고마운 일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다. 타인이 나를 위해주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 굉장히 특별한 일이며, 뼈가 부러지면 '당연히' 붙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때문이다.


나이 들어 생긴 변화 중엔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더 많다. 그런데, 진심으로 고마워할 줄 알게 된 이 변화는 마음에 든다. 조금만 더 일찍 이렇게 변했더라면, 조금은 더 행복한 자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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