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았지만, 나는 공허했다
“이건 잠깐의 휴식일 거야.”
일을 내려놓고, 집안일과 육아를 맡게 되며
처음엔 쉬운 일처럼 여겼다.
가정주부라는 말은 어딘가 느슨해 보이니까.
출근도, 퇴근도 없고
시간은 온전히 내 손에 달린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멈춤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깊어졌다.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고, 쉬는 시간은 없었다.
아이의 낮잠 시간에 쪽잠을 자고,
설거지를 하다 울음을 달래러 달려가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들이 쌓여갔다.
남편은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힘들어?”라고 했다.
자존감이 높은 내가 그 말 한마디에 무너졌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지만
이상하게, ‘아무것도 안 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힘들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아이와 단둘이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점점 조용해졌다.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 게 언제였던가.
식탁 위의 설거지,
바닥의 장난감,
끊임없는 짜증과 잠투정.
해야 할 일은 반복됐지만
끝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남편은 퇴근하면 항상 물었다.
“오늘 뭐 했어?”
그 말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그냥… 살았어.’
그게 전부였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뭐, 그냥 이것저것.”
솔직하지 못한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어느 날 거울을 봤다.
표정은 사라지고 눈빛은 예전과 달랐다.
화장도, 옷도, 말투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 애도 키우고 집안일도 하면서 예쁘게 꾸미는 엄마들은 대체…‘
오늘도 나는 작아지는구나.
어느 날,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가 나랑 맨날 있어줘서 좋아. “
그 말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내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도
나는 누군가에겐 전부였구나.
내 하루가 사라진 게 아니라
어딘가에 깊게, 아주 중요한 방식으로 쌓이고 있었구나.
그제야 알게 됐다.
나는 쉬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 일엔 휴식도, 멈춤도, 평가도 없지만
그 안에 분명한 가치가 있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통장에 돈이 들어오지 않아도,
나는 매일 싸우고 있었고, 살아내고 있었다.
‘엄마’
이 단어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를,
나는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글은 5편 완결 에세이 시리즈
<일을 멈춘 순간, 삶이 시작됐다> 입니다.
1. 일을 그만두고 나를 바라본 하루
2. 가정주부로 사는 건 쉬운 줄 알았다
3. 엄마는 쓰러질 수 없다
4. 나를 채우는 연습
5. 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