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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덕 Aug 18. 2017

도시재생 및 지역활성화 정책에 대한 생각

내가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다른 사람도 살고 싶어진다.


금산군 부리면 평촌리 농바우끄시기 행사 모습 - 문화재청 사진


도시와 지역의 현장을 접하다


학부과정에서 건축 및 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항상 염두에 두었던 점은 내가 만드는 공간이 지역의 맥락과 부합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고민 끝에 제안한 디자인이 사람과 지역과 도시를 바꿔내리라 기대했다.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과 모니터 안의 화려한 3D 이미지는 마치 지역의 미래 10년 후 모습일 거라 상상했다.


졸업 후 정부의 지방도시 활성화 계획에 따라 지역발전방안과 지역계획을 수립하는 일을 하는 회사에서 일을 한 적 있다. 관심 있는 분야였고 젊고 열정 넘치는 대표와 오랜 세월 농촌 살리기 운동을 지속해 온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많은 기대와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1년 가까이 회사에 다니며 현장, 지방도시, 농촌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했을 때 그들은 자연으로부터 배운 또는 각자의 본업에서 배운 충분한 삶의 지혜가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건물과 삶의 모습들이 남루해 보이지만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았다.


한 사업을 예로 들면 수십억의 예산이 지원되는 사업비에 대부분은 자전거도로, 새로운 간판 교체, 벽화 그리기, 마을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였다.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어마어마한 사업비가 지역에 특색과는 상관없이 비슷한 모습으로 복제되고 있었다. 그렇게 된 요인 중에는 소규모 연구소 규모로 운영되어야 마땅할 조직이 몸집이 커지고 중간관리조직이 생기는 바람에 저예산의 정부사업을 많이 수주해야 하고 그 일들은 일부 직원들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일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지역에 필요한 사업이나 창의적인 계획이 아닌 비슷한 계획안 복제 또는 하드웨어 성과물 위주로 제안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고서에는 7~8명이 참여한 보고서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제안에 포함된 계획 중 결과물이 건물이라든지 시설로 남아야 한다는 건 또 다른 부패와 다툼을 가져온다. 하드웨어 결과물이 어떤 프로그램을 지니고 이용한 사람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에는 몇억짜리 건물인지가 더 중요해지는 느낌이었다. 지방 소도시나 농촌은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커뮤니티다. 지역 공무원과 상가 주민 및 산업 종사자들은 긴밀히 연결되어있어서 이주해 온 외부인에게는 가끔 배타적이기도 하다. 

(이것은 지방도시 및 농촌이 가지는 특성이자 문제를 가져올 수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공간에 쓴 비용이 중요한게 아닌 실제 이용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얼마나 담아내는지가 중요하다. - 사진 ebs 


그러나 가까이에서 본 지방 도시와 지역 현장은 대도시 사람에게는 낙후되어 보일지 몰라도 라이프스타일은 서울과 도시의 보다 오히려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사실 지역 사람들은 충분히 만족해하며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단지 그들만의 만족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찾아와 살고 싶을 만큼의 매력을 한 번에 보여주진 못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많은 지원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하지만 만약 지원이 끊길 경우에 사업 자체가 진행이 안될 모습들이었다. 


그동안 내가 건축전공자로서 가져왔던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느낀 시간이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보다는 사람들 스스로 지역을 바꿔나갈 수 있는 자발적인 의지가 필요해 보였다. 



내가 살고 있는 곳


대표 소유의 차로 지방 출장 가는 일이 많았는데 가끔 차를 반납해야 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대표는 강남 고속터미널 앞에 내로라하는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에 거주했다. 소통을 제시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강조하는 회사일과 다르게 폐쇄적이고 일부 계층만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 거주한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하지만 나조차 방문했을 때 아파트 단지 내부 환경에 혹 할 수밖에 없었다. 도심 한복판에 강원도나 지리산에 있을법한 산림과 계곡이 조성되어있고, 그 한가운데에서 맥주파티를 즐기고 있는 단지 주민들을 보며 나도 이 아파트에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대표는 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다 보니 실제 거주는 이런 거주를 선호하고 있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나 또한 서울이나 대도시에 거주하면서 일주일에 2-3번 방문하는 지방 도시 및 농촌 삶을 이해하고 살리는데 힘을 보탤 수 있을까? 항상 마음속에 지닌 물음이었다.



내가 살고 싶은 곳


나는 이 지역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내가 살고 싶은가를 가장 많이 생각했다.

그동안 몇몇 디자이너나 계획가들은 마치 조물주처럼 빙의되는 경우를 보았다.


"내가 그대들을 위한 삶, 세상을 계획해주겠노라."

"나는 이런 곳에서 살고 싶지 않지만 너는 좋아할 것 같아."


가끔은 그 모습들이 위선 같고 그 결과물들은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어느 순간 공간 및 지역 안에 사람들은 제외되고, 자기만족에 빠져 스스로를 위한 조각 작품을 만든 듯하다.

책상에서 나온 결과물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해방촌에서 시작한 론드리프로젝트를 설계하고 공간을 운영하면서 손님들을 만나게 된 이후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 후로 공간을 설계할 때 이 빈 공간(공사 전의 모습)에 사람들이 채워졌을 때 어떤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모여야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가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사람이 없는 공간은 상상할 수 없다. 이 공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 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간은 사람들에 의해 에너지를 얻는다. - 론드리프로젝트 사진

이 공간, 지역, 도시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에너지 가득한 움직임들이 필요하다. 특히 새로운 에너지가 분출되는 젊은 세대들이 도전과 모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나 스스로를 젊은 세대에 대입하여 내가 이곳에서 어떤 생활을 하면 좋을지, 어떤 삶을 살아야 여기에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상상을 해본다.


단순히 그 삶은 밥벌이와 생산수단을 넘어선 을 생각하는 것이다.


도시재생 및 지역역량강화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의 제안서에 나오는 몇 가지 문제점, 몇 가지 해결방법 및 제안, 몇 개의 지원과 같은 형식적이고 의미 없는 얘기들이 아니라 사람들 각자가 만들어내는 에너지 가득한 총체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들이 필요하다.



그곳에서 삶을 상상하다


얼마 전 10년 만에 제주도를 방문했다.

과거 제주도는 관광의 섬이었다. 그때만 해도 볼거리 먹을거리를 다 경험하고 관광자원을 소비한 한동안에는 다시 올 일 없다고 생각한 곳이었다. 그 당시 제주도에서 대학을 다니던 친구에게 마치 유배 생활하는 사람에게 주는듯한 위로를 준 기억이 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의 제주도는 모든 세대를 통틀어 살고 싶은 도시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젊은 세대가 새로운 삶을 꿈꾸며 모이는 제주도 - 제주도 함덕 해수욕장에 위치한 당군카페


내가 아는 지인의 남자 친구는 서울에서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겨

9시부터 6시까지 당근을 재료로 하는 음료와 카페를 운영하고 나머지 시간은 제주도의 삶을 영위한다. 구릿빛으로 태닝 되어 있는 피부와 건장하고 우람한 체형은 마치 건강한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사람 같았다.

(가끔 나는 론드리프로젝트에 찾아오는 외국인들의 태닝 한 피부를 보고 출신지를 가늠하기도 한다. 90프로는 캘리포니아 출신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었다.)


젊은 세대들이 제주도에 넘어왔다. 관광지로 여겨졌던 제주도가 대도시와 다른 제주도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지역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서귀포 쇠소깍 테라로사 제주점


아직 이들이 종사하고 있는 분야는 카페, 레스토랑이 대부분이지만 앞으로 비즈니스 분야는 더욱 다양 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도에 방문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서의 삶을 상상하는 것이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주는 여유로운 삶을 잠시나마 맛보고 추후 제주도 이주했을 때 삶의 가능성을 살피기 위해 오는 것 같다. 합리적인 노동환경과 적절한 수준의 경제활동을 찾아내어 여가시간을 따뜻한 햇볕 아래 조용한 돌담 옆에서 책 읽는 제주도의 삶을 상상해본다. 


맥파리 브루어리 사진스팟 - 일반인을 위한 브루어리투어코스는 금토일만 진행된다. 

국제학교와 리조트 및 호텔 등의 조성으로 인해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가 생겨나고 있으며 제주 원도심의 아라리오 갤러리 시리즈 등 가능성 있는 문화예술콘텐츠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의해 제주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섬으로 만들고 있다. 맥파이라는 크래프트 맥주 제조공장과 제주 로컬 맥주의 등장은 제주 삶의 콘텐츠를 더욱 다양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보다 훨씬 많이 눈에 띈 요가 클래스 및 요가에 대한 관심은 제주도가 지니는 자연환경과 정서적으로 맞닿아있어 힐링과 여유, 그리고 건강한 삶을 찾는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요소로 여겨진다.



그곳에 살고 싶다


제주도에 다녀온 후 나 또한 제주도에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어떻게 하면 내가 제주도에서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제주도가 이주한 사람들에게 주었던 가능성과 매력적인 요소들이 과연 다른 도시에서 어떤 것들인지 

내가 아는 지방 소도시와 농촌에 대입하여 생각해본다.

젊은 세대의 아이디어와 용기를 가지고 모험과 도전을 할 수 있는 제주로 만든 분위기와 다년간의 사회생활의 연륜과 경제적 여유를 지닌 세대들이 제2의 도전을 할 수 있는 제주로 모이게 한 요인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은 분명 매끈한 작품 같은 디자인이나 제주도 정착민 관련 시설물이나 커뮤니티 시설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두 번 방문하는 관광지로 여겨졌던 그 섬이 10년(10년은 강산도 변한다)만에 살고 싶은 곳으로 되살아났다. 삶은 축제가 아니다. 지방 소도시나 농촌들이 일 년에 한 번씩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드는 축제의 모습이 그들의 삶과 같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그 지역의 소소하게 건강한 삶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긴 호흡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광보다는 현지의 삶을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 - 사진 에어비앤비 광고


요즘 호텔, 부동산, 택시, 여행산업 등 그동안 규모의 경제로 움직이던 산업들이 에어비앤비를 비롯한 Uber, 쏘카, 마이 리얼 트립 등 다양한 공유경제 플랫폼과 의지 있는 개인들로 인해 산업체계의 재편과 우리 사회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 변화 중심에는 개개인이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에어비앤비는 창업 8년 만인 2016년에 힐튼호텔의 기업가치 276억 달러를 뛰어넘었다. 여러 나라에서 세금과 현지법 때문에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개개인이 다양한 경험과 국적을 뛰어넘은 교류의 장으로 역할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각 지역의 사람들이 사는 삶은 그들만의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도시재생과 지역 활성화가 거대한 어떤 힘과 타인에 의해 이루어지기보다는 

그 매력을 발견하고 같이 키워나갈 수 있는 에너지와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충분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장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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