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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26. 2024

4년을 키웠는 데 그놈에게 잡아 먹혔다

소중함을 깨닫는 때가 언제일까? 소중한 걸 잃었을 때이다. 매일 보이고 항상 옆에 있고 시시때때로 만난다면 그 가치를 망각케 된다. 그러다 내 손에서 없어지면 그 순간 그 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4년 전에 만들었다. 초기 떡상을 바라고 줄기차게 게시물을 만들어 올렸다. 머리가 똑똑하지 못해 생각만큼 인기 끌지 못했다. 자기만족에 만족해했다.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버리지는 못했다. 홍보와 소통을 위해 SNS는 필수이니 말이다. 마지못해 가늘디 가는 절대 끊어질 것 같지 않은 나일론 실로 이어 놨었다.

엊그제부터 다시 피드를 올렸다. 힘을 뺐다. 글 한 토막을 간단하게 꾸며 한 장짜리로 만들었다. 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 여러 장 만들어봐야 안 볼게 뻔하니 말이다. 잠깐 보고 금방 읽는 게 보다 효과 있지 싶었다. 나도 그나마 수월하게 만들 테니까. 다시 한번 질보다 양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사흘째인 오늘 새벽에 일기를 쓰기 전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로그아웃이 되어 있었다. 기기 오류겠거니 싶어 비밀번호 입력을 시도했다. 비밀번호 입력창 대신 접속 위치와 시간이 뜬다. 2시간  전 인천에서 접속한 걸로 되어 있다. 처음 있는 일이라 당혹스러웠다. 이것저것 눌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우선 일기부터 쓰기로 하고 화면을 닫았다.


다 쓴 일기는 인스타그램에 매일 인증했다. 1년 6개월 정도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앱을 실행시켜도 인증할 방법이 없었다. 다시 이것저것 눌렀지만 비밀번호 변경은 불가능했다. 붙잡고 있으면 시간 낭비다. 다시 화면을 덮고 책을 폈다. 정해놓은 분량을 읽고 출근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예전에 만들었던 추가 계정을 활성화시켜 볼 요량으로 업무 짬짬이 들어가 봤다. 피드도 새로 만들어 올렸다. 스레드에도 글을 남겼다. 들여다볼수록 어색하다. 아니 화가 난다. 이 상황을 만든 그놈(그년일까?)이 괘씸하다.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기분은 이미 더러웠다. 그동안의 노력과 정성을 한순간에 짓밟았다. 천벌을 받을 것 같으니라고.

들여다볼수록 부아가 치민다. 메뉴를 눌러봐도 달라지는 게 없다. 결국 계정 삭제 버튼을 눌렀다. 안내 문구에 한 달 뒤 완전히 삭제될 예정이라고 뜬다. 차라리 그게 낫다. 미련을 두지 말자. 그게 내가 그놈에게 하는 복수(?)이다. 눈에서 사라지니 오히려 속 편하다. 다시 시작하자.

4년 정도 애지중지, 애증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언제든 앱을 실행시키면 성실히 만들어 온 세상과 연결됐다. 좋은 일 나쁜 일 화나고 짜증 나고 지치고 괴로운 모든 순간을 함께해 왔다. 늘 손에 닿았기에 당연하게 여겼나 보다. 막상 손에서 사라지고 나니 아쉬움도 크다. 어쩔 수 없었다고 받아들인다.

오래 걸리지 않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지금보다 더 관심 주고 아낄 것이다. 남의 것을 가벼이 여기는 그런 놈들에게 다시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말이다. 이번에 소중한 걸 잃어봤으니 다시 시작할 땐 더 아끼고 더 애정해야겠다. 큰 대가를 치르고 배웠으니 꼭 실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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