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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23. 2024

첫 술에 배부르면 체한다, 급체에는 약도 없다



'9월 중 수상자에 한 해 개별 연락'

9월에도 열대야는 계속됐다. 달력 앞자리가 바뀌면 선선해질 줄 알았다. 나만 그런 거 아닐 거다. 추석이 들어있는 달은 언제나 무더위를 물리쳤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올해는 그 공식이 적용되지 않았다. 더위가 물러가길 바라는 기대와 손에 든 전화기로 낯선 번호가 찍히길 바라는 기대가 공존했다.


한편으로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설레발 떨면 부정 탈까 싶었다. 당연히 주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공모전에 응모하기 전부터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해 왔다. 응모 버튼을 누를 때 누구나 행복한 결말을 기대한다. 어느 날 갑자기 천지가 흔들리는 지진이 예고도 없이 찾아오듯 내 주변 사람들에게 수상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말한다. "이 순간을 선물하기 위해 단편소설을 썼다"라고 말이다.


추석 연휴 내내 마음 졸였다. 주최 측이 당선자를 배려한다면 추석 전에 개별 연락을 했을 거라는 생각과 한편으로 떨어질 응모자를 배려한다면 추석 이후에 연락하는 게 옳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13일까지 연락이 안 오는 걸 보면 추최 측은 후자를 선택했다고 혼자 생각했다. 그러니 연휴 동안 기대에 부푼 기분 좋은 상상은 이어졌다. 다시 출근한 목요일에는 기대가 더 커졌다. 내 짐작대로라면 적어도 이날 연락이 오는 게 맞았으니까. 금요일에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짐작하겠지만 수상자 명단에 이름이 없었다. 월요일에 공모전 홈페이지에서 이름을 확인했다. 수상자는 9월 6일에 이미 발표했다. 명단을 보고 멋쩍었다. 혼자 생쇼를 했다. 아니다, 9월이 시작되고 결과를 알기까지 로또 당첨을 상상하는 것 못지않게 들떴었다. 나에게 공모전 수상은 로또 못지않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자고 작심한 건 베르베르가 쓴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를 읽고부터였다. 그때가 4월이었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자서전 같은 내용이었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부터 이제까지 출간한 소설을 쓴 과정을 담았다. 소설가로서 그의 고집을 볼 수 있었다. 아니 글 쓰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소설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나도 써보고 싶었다. 대신 긴 호흡으로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떤 글이든 무턱대고 달려든다고 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지난 7년 동안 1,500권 이상 책을 읽었지만 소설은 몇 권 안 읽었다. 소설은 분량이 많아 읽는 데 시간이 많이 뺏기기 때문에 멀리했다. 100권에 한 권 꼴로 소설을 읽은 것 같다. 그러니 소설에 큰 흥미가 없었다. 그런 연장선에서 소설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않았다. 우선 읽는 것부터 시작했다. 제목이 흥미 있는 소설부터 읽어나갔다. <당신의 남자를 죽여드립니다>, <화이트 러시>, <천년의 금서>,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2>등 제목에 끌려 책을 폈다. 대부분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소설을 읽어본 경험이 적어서 좋다 나쁘다 평가는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내가 재미있으면 그걸로 만족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맞다. 소설에 무지한 내가 소설을 쓰겠다고 달려들었다. 교보문고에서 매년 추최 하는 <교보문고 스토리 대상> 공모전 마감 한 달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덤볐는지 모르겠다. 쓰면 될 줄 알았다. 한 달 동안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A4 20페이지 분량의 단편 소설을 지었다. 쓰는 내내 차안대를 차고 달리는 경주마였다. 앞만 보고 달리는 건 장점도 있지만, 앞만 보고 달리기에 내 글이 최고라고 믿는 실수를 범한다. 내가 그랬다. 주변에 반응을 참고했다면 다른 글이 나왔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롯이 내 생각으로만 써보고 싶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말이다.


결국 결과는 죽이 됐다. 어쩌면 죽에 무엇을 넣는지에 따라 7첩 반상보다 더 영양가가 있다. 아마 도전하지 않았다면 후회가 남았을 것 같다. 한 달 동안 내가 쓰는 소설만 생각했다. 이야기를 구성하고 주인공 성격을 만들고 상황을 설정했다. 매일 쓰던 한 페이지 분량 글과는 엄연히 달랐다. 독자에게 줄 재미와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한 편을 완성해 낸 나에게는 무엇보다 가치 있었다. 도전했고 실패했기 때문에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고, 이 글 또한 나에게 충분히 의미 있다.   


공모전에 당선됐다면 세상에 나를 증명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는 당선되지 않았다. 세상은 나에 대해 여전히 모른다. 한근태 작가가 말했다. "성공은 더 이상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그런 의미에서 공모전은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다고 수상이 성공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수상자에게는 더 큰 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뿐이다. 대신 수많은 물고기 중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색과 이름표를 달고 말이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를 증명해 내기 위해 치열하게 자기만의 글을 써낼 것이다. 글 쓰는 작가에게 '성공'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작가에게는 다음 작품이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러니 성공이라는 명사에 스스로를 가둘 필요 없다. 어쩌면 평생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성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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