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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11. 2024

퇴직을 준비하는 올바른 자세

퇴직하는 날 기분이 어떨까요? 18년 동안 몸담아 온 일을 그만두기 위해 7년째 고군분투 중입니다.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일과 병행하며 매일 버티는 중입니다. 언제일지 모를 퇴직하는 그날 그 순간을 상상하면서 말이죠.


휴일이었던 그제 호수 공원을 달렸습니다. 마라톤 하프 코스 도전을 앞둔지라 달리는 거리가 늘었습니다. 그만큼 피로도도 높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씻을 힘도 없을 정도입니다. 거실에 드러누워 TV를 봤습니다. 채널을 돌리다가 드라마 <엄마 친구 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 주말 최종회가 방영됐습니다. 앞선 2주 분량을 보지 못했습니다. 14회부터 방영 중이길래 옳다구나 싶어 채널을 고정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모든 인물의 이야기가 우리 사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보면 볼수록 감정 이입이 됩니다. 남일 같지 않다는 말이죠. 석류와 승효는 인물부터 스토리까지 조금은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드라마니까 가능한 거지'라고 보면 이 또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남주의 순애보, 여주의 털털함과 그 뒤에 숨겨진 아픔을 더하지 빼지도 않고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쑥자매 4인방'의 이야기는 4050에게는 향수와 현실을 오가는 재미를 줍니다. 거기에 승효 아버지(최경종)와 석류 아버지(배근식)의 케미가 또 다른 관전 포인트였습니다. 무엇보다 15회에서 석류 아버지가 분식집을 그만두는 내용을 다룹니다. 시와 그림을 좋아했던 배근식은 자식을 위해 분식집에서 청춘을 바쳤습니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는 아내의 허락에 장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마지막날 조촐한 파티가 이어지고 정모음의 남자 친구가 된 기자인 강단호가 등장합니다. 강단호가 퇴직하는 배근식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퇴직하는 기분은 어떤지? 그만두고 계획은 있는지? 등을 묻습니다. 끝으로 이제까지 자신에게 한 마디 해달라고 질문합니다.


그 질문을 나에게도 했습니다. 눈은 드라마에 고정한 채 머릿속에서 질문에 답을 떠올렸습니다. 청춘을 바쳤던 지금 일을 그만두는 그 순간 나는 어떤 느낌일까? 사무실 책상 서랍을 정리할 땐 어떤 기분일까? 직장을 옮기기 위해 짐을 싸는 것과는 분명 다를 것 같았습니다. 직장을 옳기며 짐을 쌌을 땐 기대 50, 나에 대한 실망 50이었습니다. 하기 싫은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망과, 그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가 뒤섞였었습니다. 한편으로 기대와 실망보다 적응이 더 컸습니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을 만나는 건 늘 두려웠습니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아서 옮긴 게 여러 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짐을 싸는 손이 늘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마지막 짐을 싸는 그 순간은 오롯한 저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더는 기대와 실망, 적응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때 떠오를 딱 한 단어 아니, 한 문장은 '나로 살자'일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직업, 평생 하고 싶은 일, 시간이 더해질수록 더 가치가 빛나는 일, 나로 인해 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 힘든 순간도 기꺼이 감수할 각오가 된 일,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일, 오롯이 나로 살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일. 두려움이 없진 않지만 해낼 수 있다는 각오가 더 큽니다.


배근식처럼 눈물이 그렁이는 눈을 옆에 앉은 아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런 저를 보고 꼴값 떤다고 여길 겁니다. 당장 오지 않은 일에 지나치게 감정 이입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일 아무도 모릅니다. 내년에 퇴직을 바라지만 그게 10년 뒤가 될 수도 있습니다. 늘 마음의 준비는 하지만 사람일 닥쳐봐야 압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도 쏙 들어가 버립니다. TV 앞에서 궁상떨지 말고 일이나 하자 싶어 씻으러 들어갔습니다. 옷을 차려입고 근처 카페에 자리 잡았습니다. 2차 교정에 들어갑니다. 지금 할 일은 세 번째 원고 마무리입니다. 이것부터 마무리해야 퇴직에 한 발 더 다가설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퇴직을 준비하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퇴직하는 그날 기분은 그 순간이 되어야만 알 것 같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그 순간을 상상하며 궁상떨기보다 해야 할 일 하며 성취감부터 맛봐야겠습니다. 다행히 오늘도 이 글을 마치며 성취감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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