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하루라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표정이 어두워지고 불결한 언어가 나오게 된다. 또한 몸은 갈팡질팡 의지할 곳이 없어지고 마음은 두려워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게 된다. 왜 장기, 바둑, 음주에서만 삶의 즐거움을 찾는가! 복장을 단정히 하고 불을 켜고 정숙하게 앉자. 그리고 정진하는 마음으로 책상을 대하고, 책을 읽을 때는 묵묵히 깊이 있게 숙독하라.” -연암 박지원-
<오십에 시작하는 마음공부> 중
여러분은 삶의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으시나요? 음식? 스마트폰? 술자리? 일? 가족? 어떤 가치관으로 일상을 보내느냐에 따라 추구하는 즐거움도 다를 거로 짐작합니다. 외모가 다르듯 기준 또한 정해진 게 아닙니다. 누가 누구의 즐거움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습니다. 이 순간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즐거움만이 삶의 전부일 것입니다. 종류가 무엇이든, 즐거움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삶의 질을 끌어올릴 테니까요.
술을 즐겼지만 의존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날그날 감정에 따라 술을 곁들여 풀어내곤 했습니다. 월급날에는 한 달 동안 수고한 나를 위해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습니다. 상사에게 깨진 날에는 치맥으로 울분을 삼켰습니다. 별일 없는 날에는 별일 없어 다행이라고 반주를 곁들였습니다. 시시콜콜한 이유까지 만들어내면 술을 마셨던 것 같습니다. 술을 끊기 전까지는 술을 통해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했었습니다.
직장을 9번 옮겼습니다. 출근 시간이 짧게 20분에서 1시간 반까지 다양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가용으로 출근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하는 동안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때웠습니다. 운전할 때는 라디오부터 켜고 출발했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미드를 몰아 보고, 극장 개봉 영화도 빼놓지 않고 즐겼습니다. 그때는 출퇴근 중 눈과 귀를 가만히 두지 않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음식을 골라 먹는 편입니다. 고상하게 미식을 즐기는 건 아닙니다. 먹지 못하는 게 많은 뿐입니다. 그러니 먹을 수 있는 것 위주로만 양껏 먹었죠. 하루 세끼를 꼭 챙겨 먹었습니다. 아침은 밥 또는 맥모닝, 점심은 회사 근처 식당을 돌며 단품 메뉴를 즐겼고, 저녁은 술자리 또는 집밥에 반주를 곁들였죠. 먹는 즐거움을 위해 먹기보다 당연히 먹어야 하는 걸 습관처럼 먹었던 것 같습니다.
술자리, 스마트폰, 하루 세끼를 챙겨 먹던 그때는 그것들로 인해 매일 버틸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입니다. 바쁘고 지친 하루를 버티는 저마다의 즐거움이 한두 가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야 다음 날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테니까요. 반대로 이런 즐거움마저 없는 일상이라면 점점 삭막해져 갈 것입니다. 스스로를 더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먹을 것도 풍족하지 않았고 스마트폰도 없었던 우리 선조들은 어디서 즐거움을 찾았을까요? 앞에 적은 연암 박지원 글처럼 장기, 바둑, 음주가 그나마 삶의 낙이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음주는 변함없지만, 장기, 바둑이 스마트폰 정도로 바뀐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여전히 평범한 대부분 사람들이 자극적인 것들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았던 게 아닐까 생각 듭니다. 이유를 찾자면 그것들을 즐기는 동안은 걱정거리는 잊겠죠.
사는 게 막막할 때 자극적인 즐거움을 더 좇는 것 같습니다. 눈과 귀, 입이 즐거운 동안은 시름도 잊히지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자극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달라진 건 없죠. 여전히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다시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죠. 어쩌면 악순환입니다. 속은 곪아가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보이는 거죠. 힘들고 막막한 상황이 찾아오면 다시 자극을 즐기면 그만이니까요.
저도 이와 같은 악순환이 정점을 찍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10여 년 직장 생활하는 내내 원하는 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내 안에 있었지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술과 스마트폰, 음식을 도구로 삼았던 거죠. 이것들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곪게 만드는 병균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뻔히 보이면서도 제대로 보려고 안 했던 거죠.
2018년부터 책을 읽었습니다. 그 사이 적지 않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술은 끊었고, 음식도 가려먹고, 스마트폰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만큼 결과를 기대하고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막막했던 순간 막연하게 읽어보자는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다행히 그때와 다른 일상을 살게 되었으니까요. 눈에 보이고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결과를 손에 쥐게 되었죠.
박지원의 말처럼 책을 읽지 않는다고 표정이 어두워지고 불결한 언어가 나오고 마음이 두려워 갈팡질팡하는 정도 아닙니다. 그의 말처럼 되려면 더 깊은 독서 내공을 지녀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지금 제 상태에 만족합니다. 이제까지 읽은 책 덕분에 직업도 찾고, 건강도 되찾고, 가족 관계도 나아지는 중이니까요. 인생은 여전히 막막하지만 불안하지 않습니다. 책에서 어느 정도 답을 찾았고 또 찾아가는 중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