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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

by 김형준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8년 1월 1일, 별다른 기대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2025년 1월 31일, 여전히 같은 직장에 다니며 책 읽고 글 쓰고 강의도 하며 책도 여러 권 출간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이렇게 열심히 살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는 성과들입니다. 그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무엇이 나를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게 만들었을까요?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선 2018년 1월 1일 이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 당시 제 머릿속에는 온통 부정적인 생각뿐이었습니다. 잘하는 게 없는 무색무취 직장인에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무기력한 가장이었습니다. 현재보다 좋은 조건의 직장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그만한 역량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더 문제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원인을 밖에서만 찾으니 나아질 리 없었죠. 10여 년째 악순환이 계속됐습니다.


그 당시 직장은 월급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일에서 보람을 느끼거나 성장을 경험하거나 자부심을 갖지 못했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발을 담그고 있으면 적은 월급이라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을 통해 성장하고 역량을 키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죠. 그러니 남의 눈에도 치열하게 살지 않는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하긴 만나도 늘 부정적인 태도만 보였으니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을 겁니다.


언제까지 그런 모습으로 살 수 없다고 머리로는 알았습니다. 달라지기 위한 각오와 도전은 흐지부지 끝나버린 이벤트와 같았습니다. 그런 무의미한 도전이 오히려 나를 더 가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했습니다. 해도 안 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존재 가치를 의심받는 그런 사람으로 말이죠. 어쩌면 내 손으로 내가 묻힐 자리를 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언컨대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순순히 묻혔을 겁니다.


책을 손에 잡은 게 2018년 1월 1일부터라고 말했습니다. 책을 이전까지의 삶에서 벗어나게 해 줄 동아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독서에 아무런 기대 없었고 그나마 고상한 취미로 며칠은 지낼 수 있겠구나 싶었죠. 몇 주가 지나도 찰떡처럼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아니 시간이 지나고 읽는 책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끈적해졌죠. 끈적하다 못해 피부를 뚫고 몸속으로 파고드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은 나를 괴롭혔습니다. 무색무취였던 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업무 역량이 부족한 이유를 따지고 들었습니다. 헛바람만 켜며 둥둥 떠다니던 나를 두 발로 서게 했습니다. 원인은 밖이 아닌 내 안에 있다며 따끔하게 충고했습니다. 악순환의 고리도 스스로 만들었듯, 선순환의 고리 또한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이 모든 게 괴로웠지만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라고 마음먹었으니까요.


그렇게 반강제로 '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나를 다시 돌아보는 게 시작이었죠. 당연히 모든 게 못마땅했습니다. 그런들 과거의 내가 달라질 리 만무했습니다. 책은 현재에 나에게 집중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래야 내일의 '나'가 달라질 수 있다면서요. 맞는 말입니다. 오늘보다 괜찮은 나를 내일 만나고 싶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오늘을 근사하게 사는 방법 중 독서만 한 게 없었습니다. 독서는 내 시간에 가치를 더하고, 부족한 지식을 채우고, 더 잘 사는 지혜를 갖게 했습니다. 매일을 이렇게 보낼 수 있으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는 게 당연해 보였습니다. 다른 걸 찾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책만 읽어도 내 삶이 더 좋아지는 데 굳이 더 무엇을 찾아야 할까요? 답은 명쾌했습니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던 답이었을 겁니다. 모른척해왔을 뿐이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국어사전에서 '업'을 정의합니다. 정의를 제 마음대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생계'는 죽을 때까지 유지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일정 기간'은 곧 평생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평생 하려면 적성에 맞고 능력도 필요한 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지 못한 '업'을 가졌다면 삶이 괴로운 게 당연했습니다. 과거의 저처럼 말이죠.


매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일정 기간'은 무의미합니다. 즐겁게 매일 하면 당연히 잘하게 되며 잘하면 자연히 '생계'를 책임질 정도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당연히 더 좋아지고 좋아하는 일이 곧 적성이자 능력으로 발전할 테고요. 아마도 이제까지 열심히 살게 만든 건 '업'을 찾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매일 읽고 쓰기를 통해 어제보다 나아진 자신을 만났기에 가능했던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까지 월급에 더 의지하고 있지만, 이 또한 내 일을 함께 하기에 기꺼이 버텨내는 중입니다. '업'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미 나가떨어졌을 테니까요. 지난 7년 동안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낸 비결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양쪽에 발을 담근 신세이지만 좋아하는 일이기에 기꺼이 감당해 내는 거라 생각합니다. 더 잘하고 싶으니 이 정도 고통은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각오로 말이죠.


저는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왔다고요. 그 원동력은 바로 매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무기력했던 일상에서, 당당하고 활력 넘치는 하루를 사는 것 또한 내 일을 하면서부터입니다. 그 시작은 책이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운 좋게 7년 전 책을 읽기 시작했기에 지금의 호사를 누리는 중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누릴 겁니다. 읽고 쓰는 삶은 계속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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