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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을 끊겠다면

by 김형준


'가난은 대물림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합니다. 그래서 내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부모 세대들은 이를 악물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누구는 보다 더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고, 반대로 가난을 끊지 못한 이들은 이를 대물림하는 악순환을 낳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가난이라는 물질적인 부분만 전해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가난과 함께 정서의 결핍까지 대물림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서적 대물림은 가족 간의 소통 단절이 대표적입니다. 서로에게 마음 쓸 여유가 없는 거죠. 부모 세대는 가난에 쪼들려 마음이 피폐해집니다. 자녀들은 원하는 걸 누리지 못하는 걸 부모 탓으로 돌리고, 이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부모를 원망하기에 이르죠. 가족 간의 불화는 대개 돈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소통 문제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가정이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부족한 상황에서도 더 화합하고 더 단단해지는 가족도 있기 마련입니다. 각각의 가정마다 이를 설명해 주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전학 왔습니다. 한 학기 보내고 어느 날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러갔습니다. 육성회비를 내지 않았답니다. 어머니에게 말했지만 며칠째 육성회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는 더 기다려 줄 여유가 없었는지 수업에 들어가지 말라며 복도에 서 있게 했습니다. 6학년이었던 작은형도 복도에 같이 서 있었습니다. 다행히 혼자가 아니라서 덜 창피했습니다. 기억이 맞는다면 이튿날 육성회비를 냈고 다시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더 다행인 건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같은 일을 겪지 않았다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난 때문에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육성회비를 쥐어 보내지 못한 부모님 마음도 갈가리 찢어졌을 겁니다. 그런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부모는 아마 없을 테니까요. 다만 그때 부모님은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부모였어도 아마 똑같이 행동했을 겁니다. 굳이 돈이 없다는 걸 말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그 역할에만 충실하는 게 잘 사는 거라고 믿지 않았나 생각 듭니다. 그런 일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더 악착같이 살아오셨을 테고요.


형들과 다르게 저는 부모님과 소통이 서툴렀습니다. 사춘기 이후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적 없었습니다. 반백 년 살아온 지금도 여전히 거리를 두고 지냅니다. 건널 수 없는 깊은 강물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멀찍이 떨어져 지내온 시간 탓에 지금은 건널 엄두조차 내지 못할 강이 되고 말았습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기에 발을 내딛는 게 두려울 지경입니다. 어쩌면 그만큼의 거리를 뒀기에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멀찍이 떨어졌을 때 산의 풍경이 온전히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말이죠.


부모님에게서 독립하면서 다짐한 게 하나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나 때에는 가난에서도 벗어나고 가족끼리 소통도 잘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세상일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습니다. 밤하늘에 별을 따는 게 오히려 바라는 직장을 얻는 것보다 쉬울 것 같습니다. 산을 옮기는 게 어쩌면 부자가 되는 것보다 쉬울 것 같고요. 과장일 수 있지만, 이제까지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왜 부모님 세대가 내색하지 않고 살아야 했는지 짐작이 됐습니다.


두 딸이 방학이라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직장에 8시 반까지 도착해야 해서 아침밥도 못 먹고 나갑니다. 자신의 생일날 아침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딸 생일은 다 챙겨주면서 정작 본인 생일에는 밥 한술 뜨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점심이 지나 퇴근한 아내가 카톡으로 사진 한 장을 보냈습니다. 학원 가기 전 두 딸이 잡채와 미역국을 끓여 놓았답니다. 전날에도 전혀 그럴 거라는 눈치가 없었습니다. 대개는 숨기지 못해 먼저 티를 내는 게 두 딸이었으니까요. 시침 뗄 정도로 다 컸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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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고기, 양파, 당면이 재료 전부인 잡채였습니다. 맛은 제법 흉내를 냈는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서툰 솜씨 탓에 겨우 한 접시 양만 만들었습니다. 그 안에는 온갖 정성이 곁들여져 맛을 더한 것 같습니다. 둘이서 엉성한 자세로 칼질하고 프라이팬에 볶고 간을 보고 접시에 담아내기까지. 다 만들었을 땐 얼마나 스스로를 대견해했을까요? 또 완성된 잡채와 미역국을 보고 놀라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더 뿌듯했을 겁니다.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다 넣어 만든 음식 덕분에 생일 다운 생일을 보낸 아내도 자식 키운 보람 느꼈을 겁니다.


부모님 세대처럼 살지 않겠다는 저의 바람이 천천히 실현되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 불가능합니다. 물론 무엇보다 제가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다음으로 그런 저를 믿고 따라주는 가족의 노력도 필요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방법을 몰랐습니다. 다행히 두 딸이 크면서 방법을 찾았고 꾸준히 노력해 오는 중입니다. 무엇보다 클수록 소통 다운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겁니다. 아마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자리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믿음 바라는 게 같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더는 가난이든 소통이든 대물림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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