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낯선 두께 1.3cm 삼겹살, 새로운 맛에 눈뜨다

by 김형준


"먹을거리는 작은 형님네가 준비해 오고, 우리는 강진에서 장모님 태우고 여수로 가면 되는 거지?"

네 식구가 이틀 동안 갈아입을 옷만 챙겼더니 24리터 트렁크 하나로 충분했다. 반찬, 술, 간식 등 먹은 건 하나도 챙기지 않아서 짐이 더 줄었다. 이렇게 단출하게 여행을 떠나기도 처음이다.


토요일 새벽 5시 반, 일산에서 출발했다. 서울을 빠져나오기까지 막히는 구간이 없었다. 강진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1시 반이다. 장모님은 벌써 도착했다. 이틀 동안 먹을 반찬과 자식들 챙겨줄 멸치가 작은 아이스박스와 둘러멘 가방에 담겼다. 당신 집에서 자식을 맞았다면 승용차 드렁크가 모자랄 만큼 챙겨줬을 것이다. 장모님은 내키지 않았지만, 자식 손주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여수에 이름도 낯선 펜션으로 기꺼이 따라나섰다. 장모님 집은 낡기도 했고 해수욕 말고는 할 게 없는 터라 손주들이 오는 게 내심 신경 쓰였을 것 같다. 고집이 센 분이셨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순순히 따라주셨다.


여수에 도착하니 12시 반이다. 전날 묵은 손님이 없었는지 펜션 주인은 이른 시간에도 기꺼이 우리를 맞아줬다. 주의 사항을 안내받고 짐을 옮겼다. 작은 형님네는 1시간 뒤 도착이라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20분 거리에 냉면 맛집으로 차를 몰았다. 아내와 장모님은 콩국수 곱빼기를 나눠 먹었다. 두 딸은 물냉면 한 그릇씩 해치웠다. 나는 비빔냉면으로 배를 채웠다. 유난히 쫄깃한 만두피에 홀려 8개 중 4개를 내가 먹어버렸다. 콩국수도 냉면도 만두도 맛있었다. 만족해하며 펜션으로 돌아왔다. 작은 형님도 때마침 도착했다.


이틀 동안 아홉 명의 입을 책임져야 해서 싼타페 트렁크에는 아이스박스 하나와 박스 두 개에 식재료가 나눠 담겼다. 숙소 냉장고와 수납장이 채워진 걸 보니 든든했다. 더 먹으면 더 먹었지 남지는 않을 것이다. 장모님이 이하 모두 음식에 진심이니 말이다.


에어컨 바람에 저절로 눈이 감겼었다. 두 시간 자고 일어났다. 새벽부터 운전한 피로를 풀기엔 충분했다. 슬슬 저녁을 준비하는 눈치다. 작은 형님도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한 마디 던졌다.

"단골 정육점에서 특수 제작한 삼겹살을 준비했지. 두께 1.3센티미터 삼겹살이라고 들어봤는가?"

'1.3센티미터?'왠지 신뢰감이 생기는 두께이다. 식당에서 파는 건 평균 0.7센티미터라고 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두껍지도 않았다. 0.5센티미터의 차이가 어떤 맛을 낼지 궁금했다. 일단 불판 위에 올라온 녀석은 먹음직스러웠다.


펜션 주인장에게 숯불을 부탁했다. 형님은 캠핑을 자주 다닌 탓에 직화 구이를 예상했다. 주인장이 준비한 숯불은 예상을 빗나갔다. 바비큐 그릴은 공을 반으로 자른 모양에 입구 둘레는 맨홀 뚜껑 만했다. 그릴 내부를 3등분으로 나눠 양끝은 조개 모양 숯을 채우고 가운데는 기름이 떨어지게 비워두었다. 숯의 열기로 굽고 향을 입히는 훈연 방식이었다. 나는 고기에 불이 직접 닿지 않는 게 마음에 들었지만 형님은 아닌 듯했다. 이미 숯에 불을 붙인 터라 되돌릴 수 없었다. 숯에서 열기와 향이 날 즘 1.3센티미터 삼겹살을 불판 위에 올렸다.


불에 직접 닿지 않았지만 삼겹살 표면은 캐러멜 색을 띠었다. 색깔만큼이나 굽기도 적당했다. 씹을 때 바삭한 식감이 살아있었고 속은 육즙으로 촉촉했다. 고기가 불에 직접 닿으면 육즙까지 말리는 게 직화의 단점이다. 훈연은 그런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했다. 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기대 반 우려 반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만족했다. 다만 몇몇은 낯선 맛이었는지 많이 먹지 못했다. 그래도 장모님이 준비해 온 풋김치에 싸 먹으니 지루하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형님이 야심 차게 준비한 1.3센티미터 삼겹살은 완판 됐다.


삼겹살 완판은 고기 두께 때문일 수도, 굽는 방식 덕분일 수도 있다. 만약에 직화로 구웠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마찬가지로 다 먹었을 것 같다. 늘 구워 먹던 방식으로 익숙한 맛을 냈기 때문일 수 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익숙함과 낯섦 앞에서 고민한다. 익숙한 방식은 어떻게 해도 반타작은 한다. 익숙함에 길들여졌기에 어느 정도만 채워지면 만족해한다. 반대로 낯선 방식은 기대가 없기 때문에 잘해야 절반의 성공이거나 아니면 실패로 끝나기도 한다. 그러니 섣불리 낯선 방법을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나만 먹는 게 아니라면 더더욱 부담될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낯섦에서 시작된다.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 내거나, 누구나 알만한 걸 다른 시각으로 만들어낼 때 변화가 시작된다. 그들의 시작을 가로막는 건 낯섦이 주는 두려움일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이를 극복해 내며 자신의 선택이 맞았음을 증명해 내고 만다. 그 결과로 성공이 주어진다.


세상을 뒤흔들 변화만이 성공은 아닐 것이다. 어제와 다른 내가 되는 것 또한 변화이다. 그러기 위해 낯섦을 두려워 하기보다 일단 도전해 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해 보인다. 낯설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도에 대한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결과를 예측하기보다 눈앞에 낯섦을 극복하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매일 마주하는 낯선 하루를 내 의지대로 살아 낸다면 분명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산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변화해 간다면 세상을 뒤흔들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과거의 못마땅했던 나는 흔들어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삼겹살 맛을 결정 지은 게 단 몇 밀리미터 차이에서 비롯된 것처럼 말이다.


KakaoTalk_20240827_134449981_01.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금주 1,000일, 성공을 보장하는 단 하나의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