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내지 않았을 때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요? 도전하지 않을 때 생길 불이익은 무엇일까요? 어떤 대가를 치르고, 불이익이 생길지 아무도 모릅니다. 실제로 용기 내지 않고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용기 내지 않고 도전하지 않으면 삶은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서서히 끓어오르는 냄비 속 개구리가 유유히 헤엄 치며 그 순간을 즐기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 순간 자신에게 닥칠 위험에 무방비로 사는 꼴입니다. 중년 직장인의 삶은 냄비 속 개구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설령 물이 끓어도 섣불리 뛰쳐나오지 못하죠.
"결정적인 순간에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꿈을 달성할 확률은, 그나마 낮은 수준으로나마 존재하던 그 확률은, 0이 되고 만다." 이 말은 <좋은 리더를 넘어 위대한 리더로>를 쓴 짐 콜린스의 멘토였던 '빌 레지어'가 미래가 보장된 직장인에서 모든 게 불투명한 사업가로 첫 발을 내디딜 때 자신에게 던진 말입니다. 짐 콜린스도 대학교수로 머물지, 사업가와 멘토, 저술가로 살지 선택의 순간 비슷한 말은 자신에게 던졌습니다. 결국 이 둘은 꿈을 좇았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위대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직장인뿐 아니라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이러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때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그다음 인생이 180도 달라집니다. 그렇다고 모든 선택이 장밋빛 결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꿈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인생은 0이 되고 맙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의미죠. 불확실하지만 도전을 선택하면 꿈을 이룰 확률은 높일 수 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말이죠. 당연히 그런 선택이라면 절실함이 모든 순간 자신을 움직이게 할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오락가락합니다. 머리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가슴은 더 이상 망설이지 말라 합니다. 어느 말이 맞다고 아무도 결정해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의 책임 또한 제 몫입니다. 어느 선택을 내려도 후회는 따릅니다. 다만 꿈을 이룰 확률은 적어도 직장 안에 머물 때보다는 높아질 것입니다. 물론 얼마나 간절히 성실하게 노력하느냐에 달렸겠지만요. 안락함보다 간절함에 무게가 실리는 요즘입니다. 일생에 한 번 모든 걸 걸어야 할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30년 나를 위해 살겠습니다." 사직 이유입니다. 서른 살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0년 동안 월급만 좇았습니다. 내 시간을 내어주면서 말이죠. 월급은 감각을 무디게 했습니다. 적성보다 생계가 더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니 벗어날 엄두 못 냈습니다. 자칫 섣부른 판단이 가족 생계를 위협할 거라 여겼죠. 늘 가슴 졸이며 이직했습니다. 나를 뽑아주길 바라는 간절함으로요. 이직 앞에서만큼은 단 한 번도 당당하지 못했습니다. 비굴함 같은 간절함만 있었습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었으니까요.
퇴사를 결심한 지금도 월급은 여전히 눈에 밟힙니다. 이 정도 수입을 당장 퇴직한 다음 달부터 만들 수 있을까 싶습니다. 당연히 어려울 겁니다. 어쩌면 몇 달 고생하다가 다시 일 자리를 찾을지 모릅니다. 중요한 건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입니다. 직장에 가지 않는 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할 지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할 때 선택이 빛을 발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분명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바라는 꿈에도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수입도 안정될 테고요.
결정을 내리기 전, 결정을 내린 후에도 불안은 따라옵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어도 불안은 여전히 곁에 있을 겁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이고요. 불안을 원인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는 처음 보는 음식 맛이 어떤지 먹어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선택이 마찬가지입니다. 불안은 없앨 수 없습니다. 선택하고 결과를 만들어냄으로써 불안의 크기를 줄일 뿐입니다. 크기를 줄이는 방법 또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죠.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불안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얼굴을 드러낼 것입니다.
사직서 품고 있어봤자 불안할 뿐입니다. 또 던져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불안이라도 51퍼센트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게 어떨까요? 단 1퍼센트의 가능성이 성공에 확신을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 번 해볼 각오와 용기는 더 커지지 않을까요? 나에게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한 순간입니다. 어차피 직장을 떠나야 할 때를 피할 수 없다면 말이죠. 남은 30년은 나를 위해 사는 출발선에 서는 게 변화의 시작일 것입니다. 두렵지만 1퍼센트의 가능성이 뒤를 책임집니다. 저는 그걸 믿고 묵묵히 제 할 일만 합니다.
또 하나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버렸을 때 나에게 남는 건 절체절명의 위기뿐입니다. 살아남아야 할 이유뿐이죠. 이때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성공 확률은 0입니다. 다시 돌아갈 여지를 열어두면 당연히 전력을 다하지 않을 테니까요. 어떤 식으로 결심했다면 이제 남은 건 살아남는 것뿐입니다. 지옥과 같다는 직장 밖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런 각오만이 살아남기 위해 의지해야 할 단 하나입니다. 불안도 당분간은 사치일 뿐입니다. 일단 살아남고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