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배우고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하고 하루라도 덜 쉬는 게 경쟁력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나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회에 나온 이상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노력이 앞에 말한 것들입니다. 그러니 그중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자각하게 됩니다. 남들과 차이 나게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새 일에 중독되었다는 말까지 듣게 됩니다. 마치 훈장처럼 말이죠. 중요한 건 그 훈장이 얼마나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느냐입니다.
우리는 '열심히'를 잘못 배운 것 같습니다. 열심히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속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목적이 분명하면 과정도 즐기게 됩니다. 과정이 즐거우니 끝까지 지치지 않습니다. 반대로 열심히가 지나치면 중독이 되고 맙니다. 중독은 불안과 두려움에 의한 강박에 비롯된 행동입니다. 목적이 불분명해지고 과정을 즐기지 못합니다. 그러니 끝까지 가기도 전에 건강을 해치거나 일상이 망가지게 되죠. 우리는 열심히 보다 일중독에 더 높은 점수를 줍니다. 그게 살아남기 위해, 더 잘 살기 위해 당연히 갖출 덕목쯤으로 여기면서요.
저도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중독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다른 종류의 중독입니다. 일에 미치기보다 일에 미치지 못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늘 겉돌면서도 쉽사리 떠나지 못했습니다. 담배나 설탕을 끊지 못하는 것처럼 나쁜지 알면서도 어느새 손에 들고 있는 꼴이었습니다. 차라리 일에 몰입했으면 아홉 번 이직할 상황을 만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일이 좋다 싫다 따지기 전에 스스로 재미를 찾으면 적어도 그 일에 몰입하게 될 테니까요. 그러니 어중간하게 걸쳐 20년을 보내고 나니 남는 게 없습니다.
저는 일 중독이 아니라 일자리 중독이었습니다. 내 일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적도 없었고 능력을 키우기 위해 과정에도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내 일이라고 여겨 더 잘해야겠다는 각오가 없었습니다. 당장 다음 달 월급을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만 지키기에 급급했습니다. 욱하는 성격 탓에 제 발로 뛰쳐나오면서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순서가 뒤바뀐 겁니다. 일중독이라도 빠졌다면 뛰쳐나갈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열심히에 의미를 알았다면 섣불리 그만두지 않았을 테고요.
잘 다니던 직장을 제 발로 걸어 나가 불안을 자초했었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대충 땜질식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니 자리를 잃을까 늘 두려웠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자라니 일자리에 더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강박이었습니다.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열심히 와 중독의 의미를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지 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왕이면 열심히를 선택해 건강한 태도로 직장을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다행입니다. 지난 8년 동안 '열심히' 읽고 썼습니다. 분명한 목적으로 과정에 충실히 지치지 않고 여기까지 왔고 또 앞으로도 꾸준히 할 것 같습니다. 눈앞에 성과만 바라고 맹목적으로 책 읽고 글을 썼다면 벌써 나가떨어졌을 겁니다. 목적 없는 행동은 동기를 잃기 마련이니까요. 운이 좋았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고민의 답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쓴다고 하루아침에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또한 오랜 시간 꾸준함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글 쓰는 직업을 어렵게 선택했으니 잘해야 한다고 고집부렸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미친 듯이 노력했을 겁니다. 남과 비교하며 더 나아지려고 악착같이 썼을 겁니다. 남의 말 듣지 않고 내 글이 옳다고 고집부렸을 겁니다. 당연히 즐기지 못하고 강박과 불안으로 하루하루 썼을 겁니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게 무엇일까요? 어느 정도 실력은 있겠죠. 제법 그럴듯하게 쓰며 밥벌이했겠죠. 하지만 불안하고 두렵고 강박으로 글을 쓴다면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요? 장담컨대 8년 동안 쓰지 못했을 겁니다.
중년 이후, 노년의 삶에도 경쟁은 따라다닙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열심히는 기본입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제까지 나는 열심히 살아온 건지, 아니면 일중독에 빠져 살아왔는지를요. 앞으로는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중독이 아닌 목적과 과정을 즐기는 '열심히' 사는 삶으로 말이죠. 50대 이후에겐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더 적습니다. 남은 시간을 적어도 내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2천 자 가까운 글 한 편 썼습니다. 쓰는 과정이 막 즐겁고 마냥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거짓말일 테니까요. 그래도 꾸역꾸역 글을 쓰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이 글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고 주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글을 쓰면 매일 성장하는 나도 대견하고, 나로 인해 누군가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게 뿌듯합니다. 이 정도 가치 있는 글이라면 기꺼이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가치 덕분에 8년을 쓸 수 있었으니까요. 앞으로도 열심히 쓰면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될 거로 믿습니다.
https://brunch.co.kr/@hyung6260/1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