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여주인공. 화면은 시점을 바꿔가며 쫓고 쫓기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막다른 골목과 마주하자 여주인공의 표정은 절망으로 바뀝니다. 쫓는 자의 시선이 여주인공에게 다가가고 배경음악도 점점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저음과 고음을 오가는 기묘한 음악은 여주인공이 쫓기는 상황에 긴장감을 더합니다. 이윽고 '그놈'과 마주하고 불안과 체념이 반반 섞인 표정이 화면 가득 차며 음악도 최고조에 달합니다. 이 순간 섬광이 번쩍이는 연출과 함께 음악도 멈추고 화면도 어두워집니다.
공포나 스릴러 장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누군가 쫓기는 장면은 항상 긴장감이 듭니다. 빠른 화면 전환과 배경음악이 만드는 긴장감입니다. 관객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점점 화면에 빠져듭니다. 한 마디로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이죠. 감독은 최대한 긴장과 공포를 만들기 위해 각종 장치와 기법을 만들어 냅니다. 감독의 상상력이 극의 재미를 더하죠. 얼마나 기발하게 장면을 연출하느냐에 따라 관객과 평론가의 평가가 엇갈리기도 하죠. 어쩌면 이런 장면 하나가 영화 한 편의 성격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런 장면을 볼 때 소리를 끄고 본 적 있으신가요? 왜 공포나 스릴러 장면에서 꼭 음악을 깔까요? 음악이 9할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똑같은 장면도 음악을 빼고 보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배우들의 연기가 유치하게 보이기도 하죠. 음악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 장면이 더 몰입하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음악이 영화에 빠져들게 만드는 장치인 거죠. 효과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청각적인 요소로 인해 우리는 더 공포와 긴장감을 느끼게 되죠.
배우의 연기와 배경음악, 효과음이 한데 어우러질 때 관객은 몰입하게 됩니다. 몰입하면 할수록 다음 장면이 더 궁금해지는 법입니다. 쫓기는 여주인공의 생사가 궁금해지는 것처럼요. 여러 효과와 장치에 의해 우리는 다음 장면을 상상하게 되죠. 반대로 이런 효과가 없다면 기대감도 사라지고, 긴장감이 사라진 영화는 다음 장면이 전혀 궁금해지지 않죠.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이유도 어쩌면 상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불안을 만드는 거죠.
걷기 시작하는 아이는 넘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부모는 혹시라도 넘어져 다치지 않을까 불안해합니다. 정말 아이는 넘어지는 것조차 즐기는 데 말이죠.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딸이 첫 모의고사를 준비 중입니다. 부모는 점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 불안해합니다. 시험이 어렵게 나오지 않을까? 아이가 실수하지 않을까? 등등 온갖 상상을 하면서요. 뜬금없는 상사의 호출은 상상력을 가동합니다. 보고서가 잘못됐나? 거래처에 실수했나? 아니면 쫓겨나나? 등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며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불안은 상상에서 비롯됩니다. 아이가 넘어져 다치지 않을까? 시험을 망치지 않을까? 상사에게 혼나지 않을까? 정작 그 일을 마주하기도 전에 상상이 가동되면서 스스로 불안을 만들어 내죠. 막상 그 일과 마주하면, 아이는 다치지 않고, 시험 점수는 나쁘지 않고, 상사의 칭찬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죠. 그렇다고 이런 상상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때 불안은 더 큰 화를 예방하는 일종의 신호입니다. 적절히 만 활용할 수 있다면요.
퇴직을 앞둔 중년에게 가장 큰 불안은 직장 밖에서 일어날 일입니다. 직장 안에서 직장 밖에서 일어날 온갖 일들을 상상하게 되죠. 대부분의 상상은 잘못되면 어쩌나입니다. 최악만을 예상하죠. 최악을 예상하는 게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상상 때문에 정작 중요한 걸 놓치는 겁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상상과 불안이 아닌 기대와 믿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퇴직은 피할 수 없습니다. 또 그 이후에 이어질 인생 또한 마찬가지이죠. 어떤 상상을 하든 상상은 상상일 뿐입니다. 여주인공의 생사는 감독만이 알 수 있죠.
여주인공의 생사를 손에 쥔 감독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관객이 호응할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지 걱정이죠. 걱정만 한다고 다음 장면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배우고 익힌 것들을 활용해 다양한 연출을 시도해 보는 거죠. 감독의 철학과 가치관, 극의 성격에 맞게 말이죠.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노력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그렇게 한 장면 한 장면 만들면 관객을 사로잡는 연출로 이어질 것입니다. 불안해하는 대신할 수 있는 일을 했기 때문이죠.
알프레트 히치콕 감독이 만든 '사이코'에서 가장 많이 오마주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주인공이 느긋하게 샤워 중일 때 칼을 든 사이코가 샤워 커튼을 젖히는 장면입니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관객에게 극도의 긴장감을 줬다고 평가받습니다. 감독의 연출력이 만들어낸 명장면입니다. 반대로 그런 연출력 때문에 거장 감독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상상을 현실로 옮기려는 노력 덕분에 말이죠. 그도 명장면이 탄생할 거란 확신은 없었을 겁니다. 그 당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을 뿐입니다.
우리도 저마다의 인생 장면을 연출하며 살아갑니다. 이제 2막을 시작한 이도,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 이도, 아니면 벌써 최고의 명장면을 연출한 이들도 있을 겁니다. 어떤 장면 속에 있든 다음 장면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장면이 연출될지 불안할 뿐이죠. 대신 불안 말고 지금 역할에 기대와 믿음 갖는 겁니다. 더 괜찮은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고 믿는 거죠. 그렇게 한 장면씩 만들다 보면 꽤 괜찮은 독립 영화 한 편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내 손으로 직접 대본도 쓰고 연출도 하며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