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구입한 차를 지금도 운행 중입니다. 운행 거리는 20만 킬로미터가 넘었습니다. 연식 탓인지 곳곳에서 신호를 보냅니다. 며칠 전 엔진 오일을 교체했습니다. 정비사 말로는 오일이 샌답니다. 그것도 많이요. 수리가 필요하다고 2년 전부터 말했답니다. 아마도 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수리비만 1백만 원이 넘는다니 고민입니다. 수리하고 계속 탈지, 이참에 새 차로 바꿀지를요. 차를 바꾸는 게 스마트폰 바꾸는 것처럼 그나마 수월하다면 좋겠습니다. 오래 고민하지 않고 결정 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아내도 내심 차를 바꾸고 싶은 눈치입니다. 운전면허는 있지만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겁이 많아서요. 대신 옆자리에서 보조 역할은 확실합니다. 운전자 못지않게 안전 운전에 기여도가 높다는 말이죠. 그러니 조금 더 편하고 좋은 차를 욕심내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운전자가 운전하기 편한 차가 보조석에 앉은 자신에게도 좋은 차일 테니까요. 아마도 같은 차를 오래 함께 타다 보니 아내와 저의 취향도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원하는 차종은 있지만 무엇보다 서로에게 편안한 차를 갖기 원합니다.
부부는 닮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이불 덮고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여러 면에서 취향이 비슷해지는 걸 두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하나씩 맞춰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드러내지 않지만, 내가 포기하면 서로가 편해지는 게 더러 있습니다. 반대로 굳이 생색 내지 않아도 눈치채기 마련이죠. 그렇게 밀고 당기며 하나씩 퍼즐을 맞춰가는 게 부부가 아닐까요? 그 과정에서 좋아하는 음식도 취미도 생각도 톱니바퀴가 물리듯 맞춰질 겁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부도 더 많은 게 현실이지요.
인간관계에서도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먹으면서 변화가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변하는 생활 수준, 소득, 가치관, 취향 등에 따라서 말이죠. 어릴 적 맹목적으로 만나던 친구도 어느 때부터 거리감이 생기는 건 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극히 당연합니다. 저마다 생활 습관과 하는 일 만나는 사람이 제각각이기에 어울리는 사람도 달라집니다. 목적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관계도 있다면, 달라진 가치관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는 관계도 있기 마련이죠. 한 마디로 영원한 관계는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혼자서 잘 사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어릴 때부터 관계의 중요성을 배우고 경험하며 자랐습니다.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죠. 나를 이끌어 준 관계 덕분에 신분 상승을 경험하기도 하고, 나에게 해를 입힌 관계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죠. 그러니 누가 나에게 이익을 주고 해를 입힐지는 미리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관계든 겪어보기 전에는 좋은지 나쁜지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관계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주변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만들고, 내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질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불안하기 때문에 더 관계 집착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건 없이 베푸는 것도 일종의 불안에서 오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관계의 기본은 '기브 앤 테이크'라고 정의하기 때문이죠. 정의한 대로 행동할 때 자연스럽게 이익도 얻죠. 상대의 의도를 곡해하지 않는 효과를 보면서요. 어쩌면 이런 계산(?) 된 행동이 관계를 유리하게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요?
연식이 오래된 차를 바꾸는 건 당연합니다. 소모품을 제때 교체하면 어느 정도는 잔고장 없이 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도 기계인지라 분명 수명이 다 할 때 옵니다. 인간관계가 기계는 아니지만 어느 때가 되면 자동차를 바꾸듯 관계에도 변화가 오기 마련입니다. 단순히 잔고장과 취향 때문에 차를 바꾸는 것과는 다르기는 하지만요. 새로운 사람을 찾는 건 어쩌면 본능에 가깝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을 찾는 것이죠. 이를 통해 보다 더 넓은 관계를 형성하며 나에게 유리한 인생을 살게 되겠죠.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관계에서 오는 불안을 이겨내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선택일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삶은 정체되고 심하면 외딴섬에 갇히는 것과 같은 처지가 되고 말 테니까요. 내가 있어야 주변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도 본능입니다. 어쩌면 이기적인 사람이 주변 사람도 더 잘 챙길 것입니다. 나를 위할 줄 아는 사람이 타인에게도 관대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반대로 나를 챙길 줄 모르면 타인에게도 관대하지 못합니다. 내가 없으면 타인에게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까요.
살다 보면 사람의 빈자리는 생기기 마련입니다. 톱니의 빈자리를 채워야 맞물려 돌아가듯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아무나 섣불리 들일 수 없습니다. 나이 들수록 내 주변 관계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남에 신중을 기할수록 관계의 질 또한 좋아질 것입니다. 중년 이후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은 신중히 접근할 필요 있습니다. 나에게 사람이 중요하듯, 상대방에게도 사람이 중요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신중해질 때 그 사람의 가치 또한 귀해질 것입니다.
중년 이후 삶의 질은 관계의 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그때 따져봐야 할 게 나의 가치관과 취향, 성향, 태도 등 다방면이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내게 온다는 건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오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가는 것도 나의 삶 전체가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게 오는 사람도, 내가 갈 때도 보다 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신중하고 촘촘하게 엮으면 관계에서 오는 불안도 점차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