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어머니와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이별하면 어떡하지?' 그 순간 어떤 감정을 갖게 될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아마 후회가 가장 클 것 같습니다. 그 말은 그때까지 기회가 있었지만 적극 노력하지 않았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후회는 대개 기회를 놓치고 드는 감정일 테니까요. 반대로 기회가 있어도 행동하지 못했다면 그럴만한 이유도 있을 겁니다. 손바닥이 부딪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요. 단순히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제 안에 어떤 이유 때문에 화해하지 못하는 거겠죠.
기억 속 어머니를 대표하는 한 단어는 '상처'입니다. 남편에게 이해받지 못했고, 시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주변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자식을 먼저 보내고, 늘 돈에 쪼들리는 삶이었고 이 모든 것들이 당신에게는 상처로 남았을 것 같습니다. 그 상처를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못했고, 이해받지도 못했습니다. 심지어 자식인 저 조차도 어머니의 상처와 고통을 인정하고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상처 이면에는 아마도 늘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과 당신이 겪은 아픔을 자식에게 전하고 싶지 않은 각오도 있었을 것입니다.
당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했기에 더 자식들에게 애착을 넘어 집착해 왔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식이 원하는 걸 다 해주고 싶은 게 부모입니다. 특히 당신에게 상처가 많았다면 말이죠. 그래서인지 더 악착같이 살아내셨습니다. 상처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기예요.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현실에 더 답답했을 것 같습니다. 옆에서 지켜본 어머니는 늘 현실에 짓눌려 사는 것 같았습니다. 가난 때문이었죠. 아이들 육성회비 낼 몇 만 원 조차 없었던 적이 셀 수 없이 많았었으니까요.
그래도 어머니의 인생이 내리막으로만 이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시장 한구석 평상에서 장사를 시작해 번듯한 매장을 갖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작은 평수지만 당신 이름으로 된 집도 샀습니다. 좋았던 순간이었다고 떠올리는 기억들이 어쩌면 어머니에게도 좋았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정작 당신은 그 순간을 위해 더 큰 고통과 상처를 인내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 듭니다. 분명 그 과정이 단 한 번도 호락호락 찾아온 적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짐작할 수 없는 과정을 견뎌내고 얻은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순간도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기에 자식들에게 더 애착 갖는 것 같습니다. 물에 내놓은 자식 마냥요. 늘 마음을 졸이지만 당신 뜻대로 되지 않으니 더 애간장 탑니다. 또 머리가 컸다고 귓등으로 듣는 걸 보면 더 서운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자식이 원망스러웠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감정들이 한데 섞이면서 잔소리 횟수와 강도가 더 커지지 않았나 싶고요. 당연히 저와 부딪히는 횟수도 늘면서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도 잦아졌던 것 같습니다.
"부정적인 사건이 어떤 사람과 관련되어 있을 때 그 한 번의 경험이 수백 번의 긍정적인 경험과 맞먹을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다음에 어떤 친구나 사람에게 화나는 일이 생기면 충동이 이끄는 대로 분노를 쏟아내기 전에 그 사람과 지금까지 얼마나 즐거운 일이 많았는지 의식적으로 떠올려보세요."
<어느 날 내 안의 아이가 정말 괜찮냐고 물었다> 슈테파니 슈탈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가 말도 꺼내기 전부터 감정의 날을 세우게 됐습니다. 분명 내 생각과 반하는 말을 할 거고, 당신의 말에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할 것이 보이기 때문이었죠. 타협점을 찾기보다 당신의 뜻에 따라야 결론이 났던 일이 더 많았습니다. 저도 제 의견을 굽히지 않으면 결국 어긋났고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습니다. 어떤 의도인지는 잘 알지만, 그걸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에게도 문제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부모 자식이 전에 한 사람의 인격으로 존중받고 싶은 것도 솔직한 감정입니다.
어머니와 저 사이에는 좋았던 기억보다 좋지 않았던 순간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탓에 늘 어긋났습니다. 좋은 기억이 더 많았다면 저도 지금보다 더 여유로웠을 겁니다. 반대로 당신에 대한 피해의식이 더 크다고 느끼기에 건건이 트집을 잡는 게 아닐까 싶고요. 중요한 건 기억 속 사건들은 이미 일어난 일들입니다. 다시 되돌릴 수 없죠. 남은 건 그 기억을 대하는 태도만 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때를 부정하고 회피하고 반감만 갖는다면 어머니와 거리도 좁히지 못합니다. 계속 평행선만 유지하겠죠.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분명 당신도 그만큼 다가올 거로 믿습니다. 어머니가 먼저 다가오길 바라지도, 그럴 일도 쉽게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당신이 살아온 시간만큼 감정의 산도 견고할 테니까요. 그 산을 당신이 먼저 넘어올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먼저 그 시간과 감정을 인정해 주는 게 더 빠르다는 게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답을 알면서도 아는 대로 하지 못하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선뜻 행동하지 못하는 건 '불안'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계속 어긋났던 기억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 같아 불안합니다. 또 내 말을 부정당할 까 걱정됩니다. 매번 인정보다 걱정이 앞선 잔소리와 반대가 두렵습니다. 뭘 해도 당신 성에 안 차고 어떤 말에도 수긍하지 않으니 애초에 시도조차 않는 게 당연하다 여깁니다. 한편으로 부모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저도 자식 키워보니 조금씩 짐작이 됩니다. 부모 자식 관계는 어쩔 수 없는 그 무엇이 가로막고 있다는 걸 점차 깨닫고 있죠.
더 큰 문제는 이 불안 때문에 결국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앞서 상상한 대로, '이대로 어머니와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이별하면 어떡하지?'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저도 물론 이런 결론을 바라지 않습니다. 원하는 결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압니다. 어떤 게 답인지도 잘 알고요. 아는 대로 행동하면 불안도 사라지고 후회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몰라서 못하는 건 이해받지만, 알면서도 하지 않는 건 용서받기 어려울 겁니다. 그 결과 불안과 후회가 남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저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