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서를 읽는 이유는 그 사람 가진 걸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책만 읽는다고 그 사람의 성과가 내 것이 될 수 없으니까요. 문제는 이런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사이 자신을 그들과 일체화시킨다는 겁니다. 마치 성과를 이룬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겁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직장인에서 1인 기업가로 거듭난 이들을 보고 나도 1인 기업가가 된 착각에 빠졌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부업을 하는 이들을 보고 저도 그들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별다른 성과 없이 시도만 했거나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말은 변화가 필요하면 과정을 건너뛸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할 줄 아는 게 없고 매사에 불만만 있는 무능력한 직장인이자 가장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바랐던 게 성격을 변화시키고 싶었습니다. 부정이 아닌 긍정적인 사람으로 말이죠.
9살 존은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형과 차고에서 실험 중이었습니다. 잠깐의 부주의로 기름에 불이 옮겨 붙었고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얼굴은 알아보기 어려웠고 피부는 녹아내렸습니다. 손과 발에는 심각한 장애를 남겼습니다. 9살 소년에게 치료 과정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를 지켜보는 가족도 괴로웠습니다. 매일 고통 속에 힘겨워하는 존을 지켜본 엄마가 존에게 말했습니다.
"존 이대로 죽는 게 낫겠니?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래도 돼. 그건 누구의 선택도 아닌 네 선택 이야."
존은 치료를 선택했고, 수차례 수술을 견뎌냅니다. 수술 이후 수개월 재활치료로 이어졌습니다. 180도 달라진 외모와 장애는 존에겐 또 다른 장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존은 남들과 똑같이 학교에 다녔고, 졸업과 진학을 통해 자기 만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에게 화상이 남긴 상처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었습니다. 9살 이후 그의 삶에 굴곡은 있었지만 적어도 삶을 포기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남들과 외모만 다를 뿐 그가 하지 못할 건 없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두 자녀를 키우며 여전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새 생명의 탄생은 축복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줄리는 뱃속에서부터 그녀의 조부모로부터 존재를 부정당했습니다. 줄리의 부모는 뱃속의 그녀를 지키기 위해 가족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합니다. 베트남 정부의 눈을 피해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겨우 밀항에 성공합니다. 미국에 안착 후 세상에 나온 줄리에게 또 다른 시련이 기다렸습니다. 줄리는 2살 무렵 시력을 잃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하버드 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공부했고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봉사 활동도 이어왔습니다. 장애를 인정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건 장애가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오히려 장애였습니다. 비록 그녀는 40대에 찾아온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보여준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존 오리어리의 《온 파이어》를 2019년에 읽었습니다. 마흔넷, 9살 존에 비하면 가진 게 너무 많았습니다. 못할 게 없는 건장한 신체를 가졌습니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외모도, 아내와 두 딸을 키우며 안정된 직장도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살아온 시간 돌아봤습니다. 한심했습니다. 9살 존처럼 사고를 당해야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걸까요? 한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적어도 9살 존과 같은 사고는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지금 내 상황을 더없이 감사해야 했습니다. 매사 불만과 부정적인 생각 같은 건 사치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질 게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는 올바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과정을 건너뛰고 마치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착각을 내려놓았습니다. 내가 바라는 나를 위해 하나씩 노력해 보기로 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줄리의 이야기는 저를 머뭇거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핑계 대는 걸 그녀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앞이 보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저는 스스로에게 관대했습니다. 주변 탓만 하면서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올 거라는 뜬구름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과정 없이 결과만 바랐습니다. 그런 삶이 만족스러울 리 없었습니다. 어쩌면 스스로 가능성의 한계를 정했던 겁니다. 한계에서 걷어내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직장에 다니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탐색했습니다. 탐색으로 그치지 않고 시도로 이어졌습니다. 스마트스토어를 열었습니다. 강연을 했습니다. 재능도 팔았습니다.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글도 썼습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습니다. 강연을 위해 스피치도 배웠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건 계속 시도했습니다. 앞이 보이니 못할 게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믿었던 겁니다. 시도해 보니 할 줄 아는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생겼습니다. 다 잘하고 모두 원하는 성과가 났던 건 아닙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적어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 수 있었고 하고 싶은 일도 찾았으니까요.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서 성공한 모습에만 시선이 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룬 근사한 성공에 저 또한 현혹됐었습니다. 정말로 시선을 둬야 할 곳은 그들의 실패와 이를 이겨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은 9살 존과 태어나면서 환영받지 못했고 2살에 두 눈을 잃은 줄리는 절망에서 시작했습니다. 상황에 굴하기보다 자신을 긍정했습니다. 할 수 없다고 단정 짓기보다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저만치 앞서 출발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충분히 더 거리를 벌리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장애가 없으면서도 장애가 있는 이들보다 더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겁니다. 생각을 고쳐먹고 행동에도 변화를 줬습니다. 부정보다 긍정해 보기로 했습니다. 긍정하기 시작하면서 태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할 수 없는 건 없다. 하지 않을 뿐이다. 하려고 하면 못 할 게 없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으로 나뉠 뿐이다. 나는 하는 사람이다. 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한다.'
《온 파이어》- 존 오리어리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해도》 - 줄리 입 윌리엄스
《길위에서 하버드까지》- 리즈 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