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하다 보면 배우 남궁 민의 연기력을 능가할 연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전날 밤 아내와 살림살이가 날아다니는 전쟁을 치렀어도, 출근해서 방긋 웃어 보여야 한다. 오전 업무 보고에서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들었도, 오후에 만나는 고객에게는 미소를 잃지 않아야 한다. 거래처 갑질에 뚜껑이 열려도 사장님과의 회식에는 간 쓸개 빼고 달려가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수시로 감정의 가면을 바꿔 쓰는 능력을 가졌다. 내 감정보다 타인이 원하는 감정으로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능숙할수록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평가받는다. 누구나 이런 태도를 가지면 좋겠지만,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 기계처럼 반응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자판기처럼 반응하는 직원이 있다. 감정을 잘 못 숨긴다. 대개는 부하직원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반응하는 게 보통이다. 이들은 설명 중에도 수시로 감정을 드러낸다. 다 듣고 나면 충분히 이해될 내용인데도 감정부터 내지르고 본다. 그러니 쉬운 말로 늘 수가 읽힌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가는 사람이다. 이들에게는 가면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반대로 택배상자 같은 직원도 있다. 포장을 뜯기 전까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쉬운 표현으로 능구렁이가 따로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수를 읽히기보다 읽어내는 사람이다. 다음 수가 읽히지 않으니 대처도 쉽지 않다. 반응을 짐작해 준비해도 허점을 파고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런 부류는 대개 조직의 우두머리인 경우가 많다. 그만큼 자기감정을 조정할 수 있기에 그 자리까지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허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만의 반전 매력일 수 있다.
건설현장은 다양한 민원이 접수된다. 소음, 먼지, 보행불편, 차량 정체 심지어 공사를 왜 하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다. 불편을 해소해야 하는 민원이 있다면 억하심정으로 민원 같지 않은 민원을 넣는 사람도 있다. 내용이 어떠하든 민원인에게는 항상 친절해야 한다. 만약 감정대로 대응했다가는 호미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가 생기기도 한다. 건설현장에 오래 근무하다 보니 나름의 요령도 생겼다. 어떤 민원인이건 꼬리를 내리는 게 첫 번째다. 시작부터 바짝 엎드리면 민원인도 적당히 끝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대부분의 민원인은 원치 않는 불편을 겪어야 하는데서 감정이 상해 있다. 감정이 상한채 제기하는 민원의 해법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현장 소장의 대응능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한편으로 건설회사 입장에서도 무시해도 그만인 민원도 있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주민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다양한 상황에 적합한 가면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경력이 쌓이니 다양한 가면을 쓸 수 있다. 직장 안에서, 거래처 응대, 민원인 상대 등 다양한 상황에 맞는 가면을 챙겨 다닌다. 같은 업무를 반복하다 보니 가면을 쓰는 데도 매뉴얼이 있다. 그동안의 경험이 알맞게 대처할 능력을 갖게 했다. 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가면을 연극을 할 수 있지만, 가족에게는 아직 서툴다. 어쩌면 가족끼리도 가면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면 서운하고 속상해하는 일이 더 많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별다른 주의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고백하면 4년 전까지는 아이들에게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었다. 밖에서 뺨 맞고 아이들에게 화풀이하는 꼴이었다. 오히려 반대로 행동했어야 했다. 직장에서 만신창이가 되어도 가족에게는 감정 전염을 시켜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때는 그걸 몰랐었다. 다행히 속도는 더디지만 차츰 감정을 분리하는 연습을 해오고 있다. 적어도 3년 전부터는 집에서는 항상 같은 감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내 감정에 따라 아이들을 대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떤 태도를 보여주든 평정심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노력한 덕분인지 요즘은 내 감정 때문에 가족들과 부딪치는 일은 없다. 사춘기 큰딸을 감정적으로 대했다면 상상하기 싫은 상황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길 천만다행이다.
여기까지 장황하게 썼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제부터다. 유일하게 가면을 쓰지 못하는 대상이 한 명 있다. 어머니이다. 두 달 전에도 어머니의 말 때문에 감정이 상한 일이 있었다. 보통의 아들이면 부모님의 이해하거나 대화로 풀고 말았을 일이다. 나는 이해도 안 되고 대화를 할 마음도 안 생긴다. 어떤 가면을 쓰고 어머니를 대해야 할지 감이 안 온다. 가면을 쓰고 대화한 들 나중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또다시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 같다. 솔직한 심정은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모든 게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표현으로 퉁쳐지는 게 마뜩잖다. 한편으로 70년 넘게 살아온 태도와 말투를 이제 와서 고치길 바라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거다. 내가 불만이 있다고 말한 들 그런 태도와 말투가 쉽게 바뀔 리 만무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군말 안 하고 받아들이는 거다. 결론은 냈지만 행동으로 옮기까지는 여전히 장애물이 많다. 나도 소심한 성격이라 상대방을 품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부모님이어서 더 어렵다. 남들에게는 쉬운 일을 나에게만 어려운 건지 잘 모르겠다.
직장생활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상황을 위해 가면을 쓴다. 이때는 감정을 최대한 뺀다. 기계처럼 반응해야 내 감정을 지킬 수 있다. 감정이 있는 동물이라 상대방의 반응에 나 또한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상처받는 게 두려워 누구에게나 똑같이 기계처럼 반응할 수 없다. 특히 가족에게는 말이다. 가족이기에 상처도 감수해야 할 때가 있다. 가족이기에 기계처럼 대할 수도 있어야 한다. 처세가 뛰어난 사람처럼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가면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니면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기꺼이 값을 치르고 싶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난제다. 언제쯤 속 시원한 답을 손에 쥘 수 있을까? 그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