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없이는 성장도 없다. 실패 없는 성공 없듯이 말이다. 실패했을 때 중요한 건 다음 단계로 나아갈지 멈출지이다. 실패가 실패가 되는 건 그 자리에 멈췄을 때다. 당연한 말이지만 실패가 실패가 되지 않으려면 다시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좌절도 마찬가지다. 좌절도 일종의 실패이다. 좌절을 경험하면 포기하는 수도 생긴다. 반대로 좌절을 경험해도 다시 한번 더 시도해 볼 수도 있다. 좌절은 실패와는 다르다. 실패 안에 좌절이 있다. 좌절했을 때 다시 일어서면 실패까지 안 갈 수도 있다. 좌절은 성공에 닿기 위해 넘어야 할 수많은 언덕 중 하나이다. 언덕을 오르내릴수록 몸에 근육이 생기는 법이다. 좌절을 겪어도 다시 일어서면 우리 마음에도 일종의 근육이 생긴다. 어떤 역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쉽게 꺾이지 않을 딴딴한 마음 근육이다.
연말 보너스를 받은 김에 헬스장 1년 회원권을 끊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일주일에 3~4일은 꾸준히 다녔다. PT도 받았다. 운동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몸에도 근육이 제법 붙었다. 이전에도 3년 넘게 꾸준히 운동을 했었다. 그때는 생각만큼 효과를 못 봤었다. 아마도 음식 관리를 안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운동을 해도 체중에 변화가 없었던 이유다. 이번에는 달랐다. 운동과 식단 관리를 꾸준히 이어갔다. 덕분에 체지방은 줄이고 근육량을 늘렸다. 근육 운동과 달리기를 병행했다. 폐활량을 늘려야 운동 강도를 높여도 몸이 버틸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1년 동안 달리기도 꾸준히 했다. 이듬해에는 헬스장을 다니지 못했다. 대신 달리기를 시작했다. 실내 러닝머신 위에서만 달리다가 실외에서 달리는 건 또 달랐다. 얼마 달리지 못하고 지칠 줄 알았다. 걱정과 달리 처음치고는 제법 장거리를 달렸다. 지난 1년 사이 몸에 붙은 근육 덕분이었다. 3킬로미터를 거뜬히 뛰었다. 곳곳에 자리한 근육이 달릴 때 제 역할을 해준 것 같다. 그런 근육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3킬로미터를 달리지 못했을 것이다. 내 몸을 단련했던 1년이라는 시간이 쉽게 포기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어 주었다.
내 몸 상태에 따라 조금씩 무게를 늘렸다. 무게를 늘릴 때면 좌절이 따라왔다. 익숙한 무게만 들면 근육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량을 늘릴 때 근육이 상처를 입고 음식을 통해 상처가 회복되면서 근육량도 자연히 늘게 된다. 이 과정을 반복해야 근사한 근육을 얻게 된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늘어난 무게를 정해놓은 회수대로 채우려면 힘이 달린다. 힘이 들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이걸 왜 하고 있지'이다. 안 하면 힘들 일도 없는데 굳이 왜 이러고 있나 싶다. 이런 생각으로 기구를 들면 횟수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나에게 관대해지는 거다. 그래봤자 남는 건 좌절뿐이다. 좌절을 반복할수록 운동은 귀찮아진다. 반대로 자신에게 엄격하면 억지로라도 개수를 채우게 된다. 성취감이 따라온다. 운동이 재미있어진다. 근육은 덤이다. 좌절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떼어낼 수 있는 그림자이다.
헬스장에 다녔던 1년 동안 좌절과 극복을 반복했다. 그 결과가 8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갖게 했다. 달릴수록 달릴 수 있는 거리는 늘어난다. 물론 달리는 중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수시로 생긴다. 그 순간을 이겨내면 끝까지 완주할 것이고, 포기하면 좌절을 맛보고 멈추게 될 것이다. 멈추었다고 실패가 아니다. 다시 안 달리면 모를까 그럼에도 계속 달린다면 멈춘 게 아니다. 과정일 뿐이다. 달리기에서 실패는 더는 달리지 않겠다고 포기하는 것이다. 시험에 한 번 떨어졌다고 다시는 응시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한 번에 붙으면 좋겠지만, 떨어져도 붙을 때까지 반복하면 결국에는 합격할 수 있다. 물론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근육을 키우든 달리기를 하든 좌절은 늘 따라다닌다. 좌절은 어쩌면 음식 맛을 살리는 조미료와 같다. 알맞은 양념이 음식 맛을 살려주듯, 적당한 좌절은 계속할 동기 부여가 된다. 성공이 빛나는 건 실패 때문이다. 노력이 값진 건 좌절 때문이다.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좌절에도 굴하지 않는 마음이 결국에는 성공이라는 열매를 맺게 한다. 실패와 좌절은 우리를 단련시킨다. 성공했을 때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자만하지 않게 말이다. 반대로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없었다면 잔 바람에도 쉽게 무너지고 성공에 쉽게 도취될 수 있다. 결국 스스로 자멸하고 말 것이다. 내 몸을 곧게 세워주는 건 골고루 자리한 근육 덕분이다. 근육이 부족할수록 몸은 무너지는 법이다. 좌절이라는 시련은 성공을 위한 잔근육을 키워준다. 그러니 좌절을 많이 경험할수록 근육이 붙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반대로 포기하지 않으면 좌절도 좌절이 아닌 거다. 그저 한 번 스치는 바람일 뿐이다. 바람은 스쳐가기 때문에 바람이라고 한다.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어제 150명 앞에서 강연했다. 첫 경험이었다. 준비한 대로 최선을 다했다.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그럴 수도 없다. 다만 단 한 명이라도 만족해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어제가 그랬다. 한 명을 만족시킨 강연이었다. 그 한 명 뒤에는 150명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어제 150명을 만족시킨 단 한 명을 위한 강연을 해냈다. 누구는 말할 것이다. 한 명밖에 안 와서 어떡하냐고. 한 명이라도 왔고, 그 한 명을 만족시켰다면 그걸로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몇 주 간의 준비는 한 명을 위한 강연이 되었다. 분명 이 경험은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 한 명이건 백 명이건 숫자 이전에 준비했던 대로 해내는 경험이 더 값지기 때문이다. 이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앞으로 겪을 좌절과 실패에도 나를 버텨줄 딴딴한 근육이 되어줄 것이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이 좌절의 반대편에 묻혀 있다는 것을 배운다."
-토니 로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