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과 나의 연결고리, 학원 셔틀

by 김형준


독서모임 끝난 시간이 9시였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중랑구에서 일산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고 알려줍니다.

내부순환도로를 빠져나와 강변북로에 올랐습니다. 큰딸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영어 학원이 11시에 끝나는 데 데리러 와 줄 수 있어?'

가는 길이니 태우러 가겠다고 문자 남겼죠.


평일에 11시까지 학원에 있는 게 안쓰럽습니다. 저는 고1 때 어땠는지 되돌아봤습니다. 입학 후 곧바로 당구를 배웠습니다. 친구들은 수업 끝나면 학원이 아닌 당구장에서 다시 모였습니다. 보통 8시 넘어 당구장에서 나왔습니다. 집까지 버스로 1시간 거리이니 도착하면 9시가 넘었죠. 매일 그런 건 아니었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였죠. 당구장에 다니는 걸 몰랐던 부모님은 세 끼 밥은 꼬박 챙겨주셨습니다. 따뜻한 밥 먹으면서 공부 대신 당구를 즐겼네요.


고1부터 성적 관리해야 인 서울이 가능한 요즘입니다. 복잡해진 입시 제도로 고3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죠. 제3자인 부모보다 당사자들이 더 불안하고 막막할 겁니다. 그러니 일요일도 없이 학원으로 독서실로 뺑뺑이 돕니다.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경제적 지원과 끼니를 챙기는 거겠죠. 그리고 늦게 끝나는 날 태우러 가는 정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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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느라 애쓰는 큰딸을 위해 셔틀이라고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부모님이 마중 나온 적 없었죠. 당연히 학원이 아닌 당구장에 다녔으니 데리러 와달라고 말하지 못했죠. 제 딴에는 효도였습니다. 하루 종일 일했을 부모님이 늦게까지 자식 뒷바라지하지 않게 말이죠. 어쭙잖은 변명인 거 잘 압니다.


고1 딸은 분명한 목표가 있어서 공부에 열심히입니다. 다행입니다. 고1 때 저를 닮지 않아서요. 저보다 더 공부에 진심인 것 또한 다행입니다. 뭘 해도 될 녀석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졸업장만 겨우 딴 제가 딸의 공부를 봐줄 실력은 되지 않습니다. 손과 발로 도움을 줄 뿐이죠. 이것도 정성이라면 정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심양면 정성을 다하다 보면 분명 바라는 결과를 얻을 것으로 믿습니다.


부모의 보살핌은 세대를 달리하며 그 모습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넉넉하지 못했던 제 부모님은 새 끼 다 챙겨주시는 데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자라는 동안 결단코 끼니를 거른 적 없었습니다. 그 덕분에 사람답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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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람답게 자란 덕분에 제 자식을 정성껏 보살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구장 다닌 게 파출소 끌려간 덕분에 걸렸지만,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그때 부모님의 넉넉한 마음이 제 자식을 대하는 넉넉한 태도를 갖게 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11시 넘어 다니는 게 피곤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공부에 진심인 큰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더 커서 지금을 돌아볼 때쯤 저에게 감사해 주면 고마울 따름이죠.


자녀에게 물질적인 지원도 분명 필요합니다. 그보다 매일 조금씩 보이게 보이지 않게 마음을 표현하면 조 깊은 곳에 조금씩 정이 쌓일 겁니다. 그 정에 덩치가 커질수록 가족애도 더 돈독해지겠죠. 눈에 보이고 덩치가 큰 걸 주는 것 만이 사랑은 아닐 겁니다. 소소해도 매일 꾸준히 애정을 표현하는 게 진정한 사랑이겠죠. 그런 사랑이라면 시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지 않을 것입니다.




https://youtu.be/uU8awOB1Muw?si=lhMK4sCm6BcoBq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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